
AI(인공지능) 대전환 시대에 발맞춰 인터넷 종합 미디어 <더팩트>와 <개인정보보호법학회>가 손잡고 '인공지능 대전환시대 데이터법제의 발전'을 주제로 한 기획 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번 기획은 AI 혁신을 위한 필수 과제인 데이터의 활용과 보호 간 균형을 맞추는 정교한 법제도 정비의 중요성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AI 시대에 맞는 개인정보보호법 재설계의 필요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어낼 예정입니다.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되고, 활용되며, 보호돼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학문적 분석과 사회적 담론을 제공합니다.<편집자 주>
[더팩트 | 문광진 교수(국립목포대 법경찰학부, 개인정보보호법학회 재무이사)] 오늘날의 아동·청소년을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습럽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디지털기기를 접하고 있고, 온라인플랫폼이 제공하는 학습콘텐츠를 통해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는 교우관계나 문화생활도 디지털서비스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결과이지만,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 또는 사생활에 관한 정보가 스스로의 선택이나 제3자에 의하여 디지털공간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최근에는 부모가 자신의 자녀의 사진, 영상, 음성 등을 SNS에 게시하는 ‘셰어런팅(Sharenting)’이 문제가 되고도 있다. 그런데 정보주체 스스로가 자신에 관한 개인정보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기결정권의 문제를 넘어, 디지털공간에 노출되어 있는 개인정보가 각종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지난 2024년 8월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유포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SNS에 게시된 미성년자 피해자의 사진을 무단으로 수집하고 딥페이크를 활용하여 음란물을 합성하였다. AI를 비롯한 신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동·청소년의 인지능력이 그에 발 맞추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동·청소년은 성인과 비교하여 디지털공간에 노출되어 있는 개인정보나 자신의 특정한 행동 또는 발언이 향후에 가져올 결과나 파급효과에 대하여 충분하게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정보주체로서의 권리 행사에 미숙한 것은 물론이다.
인지능력과 사회경험이 부족한 아동·청소년은 법적으로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다. 우리 '민법'이 19세 미만의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 법률행위를 할 수 있도록 규정된 것이 대표적이다. 개인정보와 관련하여서는, '개인정보 보호법'은 2023년 일부개정을 통해 신설된 제22조의2가 개인정보처리자로 하여금 만 14세 미만 아동의 개인정보를 처리할 때 원칙적으로 그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아동에게 개인정보 처리와 관련한 사항의 고지 등을 할 때에는 이해하기 쉬운 양식과 명확하고 알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주요 각국의 개인정보 보호법제에서도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의 잊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제를 마련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우선, 유럽연합의 경우 GDPR 제17조가 정보주체의 잊힐 권리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고, 전문에서는 16세 미만에 해당하는 아동이 자신의 행동에 따른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이들의 잊힐 권리 행사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아동 온라인 프라이버시 보호법’의 이행을 위한 ‘연방규정집’ 제312.4조는 아동의 법정대리인인 부모가 웹사이트 또는 온라인서비스상 자녀에 관한 개인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게 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셰어런팅’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최근 ‘민법전’을 개정하여 친권의 범위에 자녀의 사생활을 명시하여 부모에게 자녀의 초상권을 비롯한 사생활 보호의무를 부과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잊힐 권리가 '개인정보 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언론중재법', '저작권법' 등을 통해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는 해당 정보의 형태 또는 게시유형, 게시주체, 권리 침해 여부 등에 따라 제한적으로 인정될 뿐이다. 잊힐 권리는 디지털공간에서의 망각을 통해 개인의 고통과 평가 하락을 덜어주어 인격권을 완성하는 수단이지만, 제3자의 표현의 자유, 알 권리, 영업의 자유 등과 충돌로 인해 더 이상의 법적 보장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자율규제적 차원의 노력을 촉구해 볼 수 있을 것이나, 아동·청소년에 대해서는 강력한 보장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하겠다. 디지털공간에서 공개되면 정보주체가 수치심이나 치욕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정보는 ‘디지털 주홍글씨’로 작용하게 된다. 신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발달이 완성되지 않고 사회경험도 부족한 아동·청소년에게는 SNS에 작성한 적절하지 못한 게시물이 향후 상급학교로 진학하거나 취업을 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설령 이러한 게시물의 존재가 향후 문제로 나타날 수 있음을 훗날 인지하더라도 직접 삭제 또는 검색에서 차단할 수 할 수 없다면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성인의 경우에는 현행법제 이상으로 잊힐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제3자의 정당한 권리에 우선한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아동·청소년에게는 이들의 건전한 인격 형성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정보나 콘텐츠에 대하여 잊힐 권리의 적용범위를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아동·청소년의 잊힐 권리 법제화는 AI를 비롯한 디지털기술 발전에 따라 각종 권리 침해의 위험에 점차 노출되고 있는 미래세대를 보호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고 할 것이다.

▶AI 대전환시대 공동 기획 칼럼 관련 시리즈
[기획 칼럼⑫] 인공지능 대전환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법'의 변화 필요성
[기획 칼럼⑪] AI 시대를 사는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기획 칼럼⑨] 고인의 사생활 vs 유족의 추억...법의 공백에 방치된 ‘디지털 유산’
[기획 칼럼⑧] AI 대전환과 개인정보 국외 이전, ‘신뢰 기반 체계 구축으로’
[기획 칼럼⑥] 개인정보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기획 칼럼⑤] 인공지능 시대, 정보보호와 개인정보보호의 균형 있는 발전 전략
[기획 칼럼④] 인공지능 시대에서의 ‘정당한 이익’ 가치
[기획 칼럼③] 공개된 정보 활용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AI 학습데이터 물꼬를 터야
[기획 칼럼②] 인공지능 시대, 혁신 막는 '개인정보보호원칙' 이대로 좋은가
[기획 칼럼①] 인공지능 대전환시대, 개인정보 보호법의 재설계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