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인공지능) 대전환 시대에 발맞춰 인터넷 종합 미디어 <더팩트>와 <개인정보보호법학회>가 손잡고 '인공지능 대전환시대 데이터법제의 발전'을 주제로 한 기획 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번 기획은 AI 혁신을 위한 필수 과제인 데이터의 활용과 보호 간 균형을 맞추는 정교한 법제도 정비의 중요성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AI 시대에 맞는 개인정보보호법 재설계의 필요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어낼 예정입니다.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되고, 활용되며, 보호돼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학문적 분석과 사회적 담론을 제공합니다.<편집자 주>
[더팩트 | 김도승 전북대 로스쿨 교수] 인공지능 혁명은 지금 우리 사회의 생존과 경쟁력을 좌우할 중대한 전환점에 와 있다. 미국과 중국의 초거대 자본과 인재는 이미 세계 인공지능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다. 정부가 수십조 원의 예산 투입을 선언했으나, 글로벌 빅테크의 한 해 투자에도 견주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고의 AI 인재들은 오래전부터 해외로 발길을 돌렸고, ‘유능할수록 떠나는’ 현실이 굳어지면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은 양질의 데이터를 중심으로 혁신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갖추고 국가와 사회 전 영역의 다양한 정보를 일찍이 디지털화하여 축적해 두었다. 그러나 데이터를 규율하는 제도는 혁신을 견인할 활용도, 정보주체 권리의 실질적 보호도 아닌 어설픈 타협에 머물러 있다. 재원도 인력도 부족한 우리가 데이터 생태계 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 3대 강국’은 허망한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가장 큰 장애요인은 급변한 인공지능 환경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법제도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여전히 ‘사전동의’라는 단일 축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개발 과정에서 데이터의 목적을 사전에 특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무용하다.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할 때마다 일일이 구체적인 동의를 다시 받는 구조는 현실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몇 차례 개정을 통해 동의 이외의 개인정보 처리 근거 규정을 도입하였지만 적용 범위와 기준이 불명확하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기에 변화된 기술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형식논리에 매여 개인정보 보호법을 과도하게 엄격하게 해석한 법원 판례까지 나타났다. 이로 인해 정보주체의 권리는 오히려 형식적인 동의 절차 속에서 유명무실해지고, 기업들은 합리적인 데이터 활용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현실은 스타트업 기업들에게는 한층 더 가혹하게 다가와, 잠재적 혁신의 싹을 꺾어버린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위상 강화도 절실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2020년 장관급 중앙행정기관으로 승격했으나,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막중한 과제를 감당하기에는 조직과 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 인공지능 혁신에 기여할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활용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얻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그 임무의 최일선에 있다.
신뢰를 저버리는 기업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위원회의 권한과 조직을 강화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인공지능 환경하에서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간 균형점을 찾는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문제해결형 지원 조직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대전환의 거센 물결 앞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의 재설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시대적 과제이다. 단순히 국민의 권리를 약화시키고 활용을 확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보주체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고안된 제도적 장치들이 인공지능 환경에서 형식화되어 실효성을 상실한 현실을 개선하고, 실질적 권리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균형점을 찾자는 것이다. 변변한 빅테크 기업 하나 없이 산업적 역량을 상실한 채 그저 법률을 무기 삼아 과징금 규제에만 의존하는 유럽식 투쟁이 인공지능 강국을 지향하는 우리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낡은 법제의 재설계를 통해 데이터 생태계가 활기를 되찾는다면, 부족한 재원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고 이미 해외로 떠난 전문인력도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정부와 기업의 몫이 아니다. 국민,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응원해야 하며, 혁신 기업들 또한 인공지능 혁신으로 창출된 가치를 독점하지 말고 국민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인공지능 대전환은 단순한 위기와 기회를 넘어,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시험대다.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불과 3년, 길어야 5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그 시한을 넘기면 글로벌 AI 질서는 고착화되고, 우리는 영원한 추격자로 남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재설계를 통해 권리와 혁신을 동시에 보장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며, 세계 인공지능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AI 대전환시대 공동 기획 칼럼 관련 시리즈
[기획 칼럼⑫] 인공지능 대전환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법'의 변화 필요성
[기획 칼럼⑪] AI 시대를 사는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기획 칼럼⑩] 아동·청소년의 권리 보호, 잊힐 권리의 보장으로부터
[기획 칼럼⑨] 고인의 사생활 vs 유족의 추억...법의 공백에 방치된 ‘디지털 유산’
[기획 칼럼⑧] AI 대전환과 개인정보 국외 이전, ‘신뢰 기반 체계 구축으로’
[기획 칼럼⑥] 개인정보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기획 칼럼⑤] 인공지능 시대, 정보보호와 개인정보보호의 균형 있는 발전 전략
[기획 칼럼④] 인공지능 시대에서의 ‘정당한 이익’ 가치
[기획 칼럼③] 공개된 정보 활용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AI 학습데이터 물꼬를 터야
[기획 칼럼②] 인공지능 시대, 혁신 막는 '개인정보보호원칙' 이대로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