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받을 수 없는 검사, 애타는 피해자…뒤죽박죽 형사사법체계

  • 설상미 기자
  • 입력: 2026.11.03 00:00 / 수정: 2026.11.03 00:00
"5분 될 일이 보름"…재판 지연 우려
수사·기소 분리 한 달…현장 혼선 계속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서울중앙검찰청 청사에서 인사발령을 받은 직원들이 청사를 떠나고 있다. /박상민 기자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서울중앙검찰청 청사에서 인사발령을 받은 직원들이 청사를 떠나고 있다. /박상민 기자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수사·기소 분리를 골자로 한 새 형사사법체계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사건 송치 이후 피해자가 추가 증거를 제출할 곳조차 찾지 못하는 등 현장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검사가 직접 받은 자료의 증거능력을 두고도 법조계 해석이 엇갈리면서 재판 지연과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소청 내에서는 사건 송치 이후 피해자 등이 추가로 확보한 증거자료의 제출을 놓고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재경 공소청의 한 검사는 "특히 형사부에서 피해자들이 사건 송치 이후 제출 못한 자료가 있는데 어디다 내야 하냐는 문의가 계속해 빗발친다"며 "증거로 내달라고 공소청에 가져오면 경찰에 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이미 사건 송치했으니 못 받는다고 하고 돌려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검사의 자료 수집은 허용하면서도 증거 사용은 제한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245조의13 1항은 검사가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거나 공소를 유지하기 위해 사건관계인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같은 조 제3항은 이 과정에서 취득한 진술과 자료를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쟁점은 공소제기 이후 검사가 피해자에게 직접 받은 자료에도 증거사용 금지 규정이 적용되는지다. 해당 조항은 형사소송법의 '수사의 장'에 포함돼 있지만, 제1항에는 '공소유지에 필요한 때'라는 문구도 명시돼 있다. 법조계에서는 수사 단계에만 적용돼 공판검사가 직접 받은 자료는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견해와, 공소제기 이후에도 적용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 출신 양홍석 변호사는 "공소 제기 이후에 검사가 피해자나 사건 관계인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는 증거로 쓸 수 있을 것 같다"며 "검사들이 사실관계 관련된 규정을 조금 엄격하게 해석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 공소청에서 통일된 기준을 가지면 된다"며 공소청이 공판 단계의 증거 제출 기준을 정해 일관되게 적용한다면 법원도 증거능력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사건이 법원에 넘어온 이상 수사 절차는 종료됐다"라며 "검사의 증거신청이 부적법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증거능력을 둘러싼 법조계의 해석이 엇갈리면서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경찰과 공소청 양쪽에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지금 상황에서는 경찰과 공소청 둘 다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비공개 현판 교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박상민 기자
지난달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비공개 현판 교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박상민 기자

혼선은 사건관계인의 증거 제출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통신자료 기록 등 과거 검찰이 직접 처리하던 간단한 사실 확인까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해야 하면서 사건 처리 기간이 길어졌다는 불만도 나온다.

안미현 대전지방공소청 천안지청 부부장검사는 지난 2일 페이스북에서 야간 주거침입 절도 사건을 송치받은 A 검사가 범행 당시 일몰 시각을 확인할 자료가 없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한 사례를 소개했다. 야간 범행이 입증되지 않으면 벌금형이 없는 야간주거침입절도죄 대신 벌금형이 가능한 절도죄와 주거침입죄가 적용될 수 있어서다.

과거에는 검사가 직접 일몰 시각을 검색해 수사보고서를 작성하면 됐지만, 이제는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한 뒤 협의요청과 검사의 의견제시, 경찰의 최종 이행결과 통보까지 거쳐야 한다. 안 검사는 "그까짓거 검색해서 결과를 기록에 첨부하는데 5분도 안 걸린다"며 "5분이면 될 일이 15일이 되는 마법이 펼쳐졌다"고 꼬집었다.

공소청 내에서는 자료 확보를 위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법원을 통해 조회하는 등 기관 간 '핑퐁'으로 불필요한 절차와 시간만 늘어났다는 불만이 나온다. 경찰과 법원의 업무 부담까지 커진 반면, 정작 실체적 진실 규명과 피해자 보호는 오히려 어려워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계속되는 혼선에 법무부와 공소청은 관련 법리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내부 지침만으로는 법원의 판단을 구속할 수 없어 법률 개정이나 대법원의 판단을 통해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재경 공소청 검사는 "경찰에서 자료를 받고 빨리 보내도록 하는 협의는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되는 상황"이라며 "증거능력 같은 경우도 법원에서 인정했다가 상급심에서 파기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snow@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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