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 후 회사 권유로 조기 복직…법원 "산재 인정"
  • 선은양 기자
  • 입력: 2026.09.13 09:00 / 수정: 2026.09.13 09:00
"결산 업무만 해달라" 요청에 복직…질병 악화 뒤 사망
법원 "기존 질환 악화에 영향"…유족급여·장례비 지급해야"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건강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채 회사 요청으로 복직했다가 사망한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새롬 기자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건강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채 회사 요청으로 복직했다가 사망한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선은양 기자]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건강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채 회사 요청으로 복직했다가 사망한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양순주 부장판사)는 A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례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 씨의 배우자 B 씨는 한 회사의 총무팀 부장으로 근무하던 중 2021년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퇴원 당시 왼쪽 눈의 시력이 약 50% 회복되는 데 그쳤고, 근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 혼자 걷지도 못했다.

B 씨는 2022년 회사 상무에게 건강 문제로 복직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는 담당 직원의 퇴사로 결산 업무가 촉박하다며 복직을 요청했다. B 씨가 사장에게 건강 회복에 최소 3개월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지만 회사는 결산 업무만큼은 처리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결국 B 씨는 건강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채 복직했다. 그러나 인력 충원이 이뤄지지 않아 당초 요청받은 결산 업무뿐 아니라 총무팀의 모든 업무를 도맡게 됐다. 사장에게 업무상 질책을 받고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후 B 씨는 기존에 앓던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돼 입원 치료를 받았고, 증상이 악화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다가 사망했다. 사망진단서상 직접 사인은 '자발성 뇌내출혈'이었다.

A 씨는 남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며 유족급여와 장례비를 청구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2024년 9월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법원은 질병의 주원인이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겹쳐 질병을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 씨가 뇌출혈 후 약 12주간 경과 관찰이 필요했지만 회사 요청에 따라 약 10주 만에 복직한 점에 주목했다. 복직 이후에도 과중한 업무와 사장의 질책 등으로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스트레스는 고인이 기존에 앓고 있던 뇌출혈을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악화시키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업무상 스트레스가 궤양성 대장염을 악화시켜 항응고제를 끊으면서 뇌출혈을 일으켰다고 본다면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도 봤다.

고인은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돼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도 노트북으로 업무를 수행해 치료에 전념할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설령 스트레스와 궤양성 대장염 사이에 의학적·자연과학적 인과관계가 명백히 증명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규범적 관점에서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ye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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