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정인지 기자] 광주에서 귀가하던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23)의 휴대전화를 불에 태우고 자취방에 있던 물품을 폐기한 현직 경찰관 아버지가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친족특례'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장윤기의 범행 동기를 규명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를 폐기했는데도 친족이란 이유만으로 증거인멸 처벌이 불가능해지자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법 제155조는 타인의 형사 사건 증거를 인멸·은닉·위조·변조한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친족이나 동거 가족의 경우 친족특례로 처벌하지 않는다. 이 조항은 국가가 부모나 배우자, 자녀 등 피의자 가족에게 증거 확보를 강요하기 어렵다는 취지에서 지난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유지됐다.
◆ 해외도 친족 면책 인정하지만 수사기관 종사자는 '예외'
해외에서도 친족 면책을 인정하는 국가가 적지 않지만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일본은 친족의 증거인멸에 법원이 사건의 중대성과 행위자의 지위 등을 고려해 형 면제 여부를 판단한다.
독일은 친족 면책을 인정하면서도 경찰·검사·판사 등 형사 절차나 집행에 관여하는 공무원에게는 별도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프랑스는 친족이 범인을 숨겨주는 행위에는 면책을 인정하지만, 증거인멸에는 예외를 두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 중국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범인 은닉이나 증거인멸을 면책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이번 장윤기 사건을 계기로 친족특례 적용 범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수사기관 종사자가 개입한 사건에는 예외를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친족 간 증거인멸을 예외로 두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일반적이지만 우리나라는 면책 범위가 넓은 편"이라며 "실체적 진실 발견을 심각하게 저해할 때는 일정한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친족특례는 부모가 자녀를 신고하거나 증거를 보전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기대 가능성' 원칙에 기반한 제도"라면서도 "수사기관 종사자가 개입한 사건이나 중대범죄 등은 입법적으로 예외를 둘 필요가 있는지 논의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가 중대할수록 부모의 증거인멸 가능성이 커져 범죄 중대성을 기준으로 예외를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다만 현재는 친족 범위가 넓은 만큼 부모·자녀 등 2촌 이내로 범위를 좁히거나 수사기관 종사자에 대한 별도 규정을 두는 방안은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지난 1일 SNS에서 "가족을 감싸고자 하는 혈연적 본성을 사법적으로 고려한 규정"이라면서도 "개선할 부분은 없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경찰 부실 수사 및 사건 은폐가 문제…"사후 징계는 답 아냐"
경찰은 지난 2020년부터 '사건 문의 금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담당 수사관에게 수사 중인 사건을 문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징계 처분한다. 지난 2024년부터는 '수사정보 유출 방지 종합대책'을 세우고 수사정보 유출 행위자를 수사 의뢰하고 있다. 업무 배제는 물론, 수사부서 퇴출 조치도 취하고 있다.
다만 경찰 대책은 사후 징계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경찰의 친족 관련 사건 수사 과정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건의 핵심은 친족특례가 아니라 경찰의 부실수사와 조직적 사건 은폐 의혹"이라며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답이어야지, 사후 징계는 해답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경찰청은 이날 "형법상 친족특례로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더라도 감찰조사 결과 비위 사실이 확인되면 국가공무원법과 경찰공무원 징계령에 따라 징계 조치할 방침"이라며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된 문제점을 분석해 경찰관 친족 사건 처리의 투명성을 높일 추가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장윤기는 지난 5월5일 0시10분께 광주 광산구에서 여고생을 성폭행할 목적으로 납치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흉기로 살해했다. 검찰은 보완수사를 거쳐 장윤기의 혐의를 살인에서 성폭력처벌법상 강간 등 살인으로 변경해 기소했다.
장윤기의 부친인 장모 경감은 사건 발생 사흘 뒤인 지난 5월8일 아들의 자취방에서 사람 형상의 성인용품(리얼돌)을 해체해 폐기했다. 리얼돌은 가슴과 목 부위가 날카로운 물건으로 훼손된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장 경감은 장윤기의 신상이 공개된 뒤 구형 휴대전화 등 소지품도 불에 태워 없앤 것으로 드러났다. 장 경감은 당시 장윤기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선 경찰서 비수사 부서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휴직 중이다.
경찰은 장윤기 사건 봐주기 수사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광주경찰청 지휘라인을 배제한 '광주 광산경찰서 살인사건 관련 진상규명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특별수사팀은 광주경찰청 지휘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한 뒤 최종 수사 결과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게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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