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소문 고가, 철거 필수 ‘가설벤트’ 없었다…"그동안 버틴 게 다행"
  • 이다빈, 김태연, 이예리 기자
  • 입력: 2026.05.27 20:50 / 수정: 2026.05.27 20:50
8개월간 지지대 없이 철거…안이한 대처 도마
"붕괴 위험 큰 교량 철거, 지지대 설치는 필수"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 구조물 붕괴 사고 발생 이튿날인 27일 무너진 구조물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새롬 기자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 구조물 붕괴 사고 발생 이튿날인 27일 무너진 구조물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이다빈·김태연·이예리 기자] 붕괴된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과정에서 임시 지지대인 '가설 벤트'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는 교량 아래 철도가 지나가는 등 예외적 상황이라 지지대 설치가 불필요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 원인으로 추정되는 슬라브(다리 최상단의 콘크리트판) 절단 작업이 적어도 2주간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지지대 없이 공사를 이어간 것으로 확인되면서 예고된 인재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27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공사는 지난해 9월부터 본격 시작됐다.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까지 철도구간 외 철거 공사를, 지난 3월부터 이달까지 철도구간 철거 공사를 마무리한 뒤 신설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공정률은 88.49% 수준이었다. 지난 11일부터 사고가 발생한 26일까지 약 2주간은 새벽 1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슬라브(S8~S9) 등 절단 작업이 진행됐다.

문제는 철거 과정에서 임시 지지대인 가설 벤트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이다. 서소문 고가의 경우 교각과 교각 사이에 거더(건설 구조물을 떠받치는 보)를 받치고 있는 상태라 임시 지지대를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관계자는 "벤트는 밑에 지탱하는 구조가 없을 때 설치하는 임시 기둥"이라며 "서소문 고가 교량의 거더는 양쪽이 이미 받쳐진 상태이기 때문에 지지대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 거더가 오래돼 가운데 부분이 부러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낙하 위험성이 있는 교량 철거 시 벤트를 설치하는 것은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따르면 자재나 부재의 낙하나 붕괴 등 위험이 있을 경우 △출입금지구역 설정 △자재 또는 가설시설이 휘어지거나 변형 방지를 위한 보강재 부착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한 엔지니어링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벤트를 무조건 설치하고 지지한 후에 철거해야 한다"며 "교각을 절단하면 낙하의 위험이 있으니 기본적으로 받침 역할을 하는 지지대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지대를 설치할 상황이 되지 않으니 임시 지지대 없이 특별공법을 갖고 있는 업체가 공사에 들어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 구조물 붕괴 사고 발생 이튿날인 27일 무너진 구조물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새롬 기자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 구조물 붕괴 사고 발생 이튿날인 27일 무너진 구조물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새롬 기자

최명기 한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공사 과정에서 붕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균열 등이 일어난 부분을 받쳐주는 지지대가 필요한데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며 "이미 약해진 부분에 사람이 올라가다보니 무게가 가중되며 무너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서로 연결된 무거운 거더들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가장 끝에 있던 마지막 거더가 붕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서로 지탱해주던 거더가 절단되자 통상 40톤에 달하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주저앉았고, 지지대마저 없자 결국 그대로 무너졌다는 분석이다. 슬라브 절단 2주가 지나도록 지지대 없이 버틴 게 다행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시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사고 약 12시간 전인 새벽 2시30분께 슬라브 절단을 하던 중 2.9㎝ 단차가 발생하면서 고가 한쪽이 주저앉아 공사를 중단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오후 2시께 서울시 관계자와 현장소장, 감리단장 등 9명이 안전점검을 하던 중 공중비계와 거더 일부가 무너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재욱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상판이 무거워서 들 수 없으니 거더들을 하나씩 분절하는 과정에서 작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기 무게를 견디지 못한 제일 외곽의 취약한 거더가 무너진 것"이라며 "노후화가 진행돼 스스로 버틸 수 없는 상태인데 거더끼리 연결된 것을 절단하다 보니 주저앉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철도가 지나는 마지막 구간이라 거더 설계 조건도 달랐기 때문에 해체 방식의 차이를 간과한 부분도 있다"며 "철도 측과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타워 이동식 크레인으로 거더를 미리 잡아둔 상태에서 해체하는 안정적인 방식을 검토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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