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준영 기자] 최근 대구 쌍둥이 산모가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경기도까지 이동하다 쌍둥이 1명이 숨지는 등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지속되고 있지만 국민들이 요구하는 응급환자에 대한 병원 수용 의무는 외면받고 있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월말 대구에 머물던 쌍둥이 산모가 조산 징후를 보였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4시간을 길에서 헤매다 경기도 성남까지 이동하면서 아이 한 명이 사망하고 남은 아이도 뇌손상을 입었다. 응급실 뺑뺑이로 국민들이 사망하거나 길에서 분만하는 사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국민들이 요구하는 병원의 응급환자 수용 의무 법제화를 방치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으로 실시한 보건의료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은 응급실 뺑뺑이 문제 해결 방안으로 '중증 응급환자 즉각 수용 의무 강화'(29.5%)'를 가장 많이 원했다. '중증 응급환자 수술·시술 가능 인력 확충'(26.4%), '실시간 병상·환자 진료정보시스템 구축'(19.9%)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수용 의무를 담은 법안은 국회에 표류하고 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지난 2월 발의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응급환자가 2개 이상 병원으로부터 수용 곤란 통보를 받은 경우 등에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지자체장이 해당 환자를 우선 수용해 진료할 의무가 있는 병원을 지정하는 내용이다. 또한 수용의무 병원으로 지정된 병원 의사가 해당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죽거나 다친 경우 그 의료행위가 불가피했고 중대 과실이 없으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해 의사 법적 부담 완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2년 전 지자체에 참고해 만들라고 보낸 '응급실 수용곤란 고지 관리 표준 지침(표준지침)'에 병원 수용 의무를 뒀는데, 현재 진행중인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에는 수용 의무를 두지 않았다.
응급 상황 시 수용 의무는 표준지침을 만들 때 환자들이 응급실 뺑뺑이를 막기 위한 핵심 조치로 요구했던 내용이다. 표준 지침은 2019년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수용을 거부해 사망한 동희(5세) 군과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2022년 12월 시행된 응급의료법 개정안(동희법) 후속 조치다. 2019년 10월 양산부산대병원은 편도제거 수술을 한 동희 군에게 2차 병원에 가서 치료하라며 퇴원을 요구했다. 동희군은 2차 병원으로 옮긴지 이틀째 심정지가 왔다. 구급차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수술한 양산부산대병원에 2차례 수용을 요청했지만 다른 환자가 있다며 거부당했다. 병원을 찾아 헤매다 다른 권역응급의료센터에 도착했지만 동희 군은 의식을 찾지 못하고 5개월 투병하다 목숨을 잃었다.
검찰 수사 결과 양산부산대병원 전문의가 동희 군 편도 제거 수술 중 출혈 부위에 과도하게 소작술을 하고도 이를 은폐하고 응급상황 대처법 설명 없이 퇴원시키면서 관련 진료기록를 작성하지 않고 허위기재한 사실, 동희군이 찾은 2차 병원에서 미신고 대리 당직 의사가 응급 치료하지 않고 119 구급대에 이송만 지시하면서 진료기록을 작성하지 않은 사실, 편도 제거 수술을 한 양산부산대병원에 근무하던 전공의가 응급환자 접수 못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동희군에 대한 119센터 응급의료 수용을 기피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15일 부산지법 서부지원 민사1부는 동희 군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정당한 이유 없이 응급실 수용을 거부한 양산부산대병원과 대리 당직 의사를 배치하고 제대로 된 처치 없이 119구급차에 환자를 태운 2차 병원 모두 불법행위가 인정된다며 유족에게 4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1심 판결했다.
동희군 어머니 김소희씨는 "동희처럼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하는 국민이 더이상 없도록 정부와 여당은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병원 수용 의무를 담아야 한다"며 "복지부 시범사업에 수용 의무를 뺀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쌍둥이 분만 사고가 발생한 대구시에 소재한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은 "응급 환자에 대한 수용 의무를 담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며 "특히 법에 수용 의무를 담아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지자체 지침은 법적 근거와 제재가 없어 효과가 없다"고 언급했다.
의료계에서는 수용 의무에 부담을 갖고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응급환자가 사망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법적 처벌을 면제해도 의무 수용하기는 부담이 된다"며 "응급실 미수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중환자실, 의사 등 최종치료 인프라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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