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변호사 4만명 시대. 사무실조차 마련하지 못해 송달 장소로 사물함을 빌려 쓰는 이른바 '사물함 변호사'까지 등장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개업 변호사의 중위소득은 약 3000만원 수준. 고소득 전문직으로 인식돼 온 변호사 업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변호사 과잉 공급이 수임 경쟁을 심화시키면서 국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순열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지난 7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대학 재정 논리에 따라 15년간 변호사 수 감축 문제가 방치되면서 결국 국민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라며 "올해부터 신규 변호사 배출 수를 1500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회장은 변호사 과잉 공급의 원인으로 대학의 재정 유지 논리를 꼽았다. 결원 보충제 등으로 사실상 로스쿨 입학 규모가 확대되면서 대학들이 등록금 수입 유지를 위해 정원 축소가 어려운 구조가 됐다는 지적이다. 결국 변호사 배출 규모가 대학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이 됐다는 설명이다.
조 회장은 "2009년 로스쿨 제도 도입 당시 정부는 연 1000명 수준이던 신규 변호사 배출 규모를 1500명으로 확대하는 대신 법무사·노무사 등 유사 직역을 통폐합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러나 이후 약 17년간 이 같은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초 대학이 약속했던 정원만큼 뽑은 후 양질의 교육을 시켜야 한다"라며 "합격률이 저조하거나 정상적인 교육이 어려운 대학은 통폐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법무부에 따르면 변호사시험 합격자는 2012년 1451명에서 2025년 1744명으로 증가했으며, 2021년 이후 6년째 17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학계에서는 연간 적정 신규 변호사 수를 약 1200명 수준으로 보고 있다.
경희대 김종호·남재영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변호사 1인당 민사 본안 사건 수는 2012년 73.1건에서 지난해 22.4건으로 급감했다. 연구팀은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단기적으로 1200명, 중장기적으로는 600~900명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변호사 공급 과잉으로 일부 개업 변호사들은 사무실 유지조차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조 회장은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건을 선별하기보다 수임 자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며 "패소 가능성이 높은 사건까지 수임하거나 과장된 기대를 유도해 사건을 유치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탄식했다.
과도한 수임 경쟁에 따른 폐단은 고스란히 국민 피해로 이어졌다. 전관예우가 있는 것처럼 기대를 조성하거나, 이른바 '네트워크 로펌'처럼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사건을 대량으로 유치하는 구조가 확산되면서다.
조 회장은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대책 없이 변호사 수를 늘리면서 여러 민원이 급증하고, 결국 변호사 징계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정부가 수요·공급 원리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은 형사 사건 성공보수 제도 정상화도 임기 내 주요 과제로 꼽았다. 조 회장은 "전체 사건의 90%는 고액 수임료를 전제로 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라며 "서민과 약자 입장에서는 높은 착수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분할 지급이나 성과보수 형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형사 성공보수 제도 금지 이후 착수금은 오히려 상승하고 변호사 접근성은 낮아지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법조계는 지난달 한 항소심 재판부가 형사 사건 성공보수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면서 11년간 유지돼 온 대법원 판례가 바뀔지 주목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5년 성공보수를 인정할 경우 부당한 영향력 행사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로 판단했다. 조 회장은 "현실을 직시하고 있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당연히 이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서울변회는 최근 AI 확산에 따른 부작용에 대응하고 있다. AI로 생성된 가짜 판례가 법정에서 인용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다. 조 회장은 "변호사가 최종 점검 없이 AI판례를 활용할 경우 변호사 윤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는 만큼 신속히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가짜 판례를 걸러내지 못한 채 법원에 제출돼 판결에까지 반영되는 사례가 단 한 건이라도 발생할 경우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