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의결권 위탁운용사에…"스튜어드십 무력화 우려"
  • 이준영 기자
  • 입력: 2026.03.08 00:00 / 수정: 2026.03.08 00:00
정부, 위탁운용사 직접 의결권 행사 검토
독립적 수탁자 책임 가능할까 우려 제기
정부가 국민연금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위탁운용사가 보유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시범사업 추진 뜻을 밝히면서 6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관치금융 논란을 벗고 수탁자 책임활동을 강화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 노후자산인 국민연금 의결권을 민간운용사에 넘기면 독립적 역할이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진은 2023년 1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 찾은 시민. /뉴시스
정부가 국민연금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위탁운용사가 보유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시범사업 추진 뜻을 밝히면서 6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관치금융 논란을 벗고 수탁자 책임활동을 강화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 노후자산인 국민연금 의결권을 민간운용사에 넘기면 독립적 역할이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진은 2023년 1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 찾은 시민. /뉴시스

[더팩트ㅣ이준영 기자] 정부가 국민연금 자금 위탁운용사가 보유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관치금융 논란을 벗고 수탁자 책임활동을 강화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 노후자산인 국민연금 의결권을 민간운용사에 넘기면 독립적 역할이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5일 열린 2026년 제2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내주식 위탁 운용의 수탁자 책임활동 활성화 방안'을 보고받고 논의했다. 위탁운용 방식을 기존 ‘투자일임’ 방식에서 ‘단독펀드’ 방식으로 변경해 국민연금이 직접 투자한 기업이라도 위탁운용사가 보유한 지분에 대해서는 위탁운용사가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수탁자 책임활동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현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직접 투자한 기업은 위탁운용사 지분까지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기금운용본부가 직접 투자하지 않은 기업만 위탁운용사가 의결권을 행사한다. 지난해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의결권 행사 기업 599곳 중 342곳은 직접 행사, 257곳은 위탁운용사가 행사하고 있다.

정부는 기금위 의결을 거쳐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수탁자 책임활동 여건 등을 고려해 책임투자형 위탁운용 방식 중 일부 역량 있는 운용사를 대상으로 시범 추진하고, 평가를 거쳐 향후 추진 방향을 검토해 나갈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시범사업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방안 마련 후 기금위 의결을 거쳐야 하기에 시범사업이 확정된 것이 아니다"며 "어떠한 운용사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할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연금 의결권을 위탁운용사에 넘기는 추진 방향을 두고 반대 의견이 거세다. 지난 5일 기금위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근로자 대표 외에도 반대 의견이 제기됐다. 기금위는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며 정부 위원 6명, 사용자 대표 3명, 근로자 대표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전문가 2명으로 이뤄져있다.

위탁운용사가 대기업 계열사이거나 대기업 고객사인 상황에서 독립적인 수탁자 책임을 할 수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갈현숙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자산운용사는 수탁자 책임활동이 취약하고 대기업으로부터 독립성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의결권을 넘기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의결권을 국민연금이 행사하지 않고 민간운용사에 넘기면 국민들 노후자금으로 모은 연기금이 공공성이 부족한 곳으로 투자되거나 이를 관리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 중인 국내 기관투자자 중 연기금, 자산운용사, 보험사, 증권사, 은행 등 72개 기관 대상으로 수탁자 책임 활동 보고서(또는 SC 이행보고서) 발간 현황을 분석한 결과, 분석 기간(2018년~2025년 11월) SC 이행보고서를 발간한 기관은 연평균 약 10개에 그쳤다. 2016년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투자대상회사를 잘 점검하고 우려사항이 발견되면 투자대상회사와 적극 대화하는 등 주주활동을 통해 수탁자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도록 한 제도다.

국민연금과 민간 기관투자자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도 차이가 있다. 2024년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은 12.6%였지만, 민간 기관투자자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은 4.59%였다.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민간 기관투자자 반대 행사 비율은 7.12%였다.

6일 국민연금 의결권을 위탁운용사에 넘기는 추진 방향을 두고 반대 의견이 거세다. 지난 5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근로자 대표 외에도 반대 의견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1월 26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는 모습. /임영무 기자
6일 국민연금 의결권을 위탁운용사에 넘기는 추진 방향을 두고 반대 의견이 거세다. 지난 5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근로자 대표 외에도 반대 의견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1월 26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는 모습. /임영무 기자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내역 공시도 미흡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충실한 의결권 행사를 강조하며, 의결권 행사 적정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내용과 사유를 함께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금융감독원이 밝힌 '2024년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 현황 점검결과' 자산운용사는 투자자가 투자 판단에 참고할 수 있도록 의결권 행사·불행사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할 필요가 있지만 2024년 4월1일부터 2025년 3월31일까지 의결권 행사 내역을 거래소에 공시한 273개 자산운용사 가운데 72개사(26.4%)가 의결권 안건 절반 이상에 대해 ‘주주총회 영향 미미’, ‘주주권 침해 없음’ 등 형식적으로 기재했다. 또 자산운용사는 투자자가 의결권 행사 여부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의결권 행사 근거가 되는 내부 지침을 공시해야 하는데도 273개사 중 57개사(20.9%)는 법규 나열 수준으로 기본정책만 공시하고 안건별 행사 근거가 규정된 세부지침은 공시하지 않았다.

기금위에 근로자 대표로 참여하는 민주노총은 "주요운용사의 상당수가 재벌의 계열사이거나 거대 금융지주회사의 지배하에 있다. 더욱이 자산운용사들은 수백조원에 달하는 대기업의 퇴직연금 등 자산을 운용하기 위해 영업을 하고 있어 독립적인 주주권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기업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스투어드십 코드도 무력화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위탁운용사가 운용하는 책임투자형 편드는 투자를 개시하는 의사결정 단계에서만 ESG요소를 기계적으로 고려해 주식을 매수할 뿐, 투자 후에는 피투자기업 내부에서 횡령, 배임, 산업안전 위반, 부당노동행위, 중대재해 사망사고 등 심각한 ESG 훼손이 발생해도 개입하고 관여하는 적극적 주주활동은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위탁운용사 간에 찬반 의견이 갈리거나 책임 회피로 기권할 경우 국민연금 의결권 지분이 분산돼 스튜어스십 코드가 무력화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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