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간단한 서면 작성이나 계약서 초안 작성·검토는 AI가 웬만한 어쏘(저연차) 변호사보다 낫습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변호사 업무 환경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준비서면 초안 작성과 판례 검색, 계약서 검토 등 반복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로펌 인력 구조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허위 판례 인용 등 'AI 환각' 부작용도 현실화하고 있다. 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는 가이드라인 마련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과거 변호사들이 장시간 매달려야 했던 준비서면 초안 작성은 이제 AI를 통해 단 몇 분 만에 해결되고, 판례 검색과 계약서 검토 등 방대하고 반복적인 업무 역시 AI가 상당 부분 수행하며 변호사 인력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로펌계에서는 변호사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인력 운용 방식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중대형 로펌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AI가 작성한 서면이든, 어쏘 변호사가 작성한 서면이든 결국 그 내용이 맞는지 한 번 더 확인해야 한다"라며 "업무 효율 면에서는 AI가 훨씬 나아서 최근 어쏘 변호사 한 명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AI 활용이 늘고 민사 재판도 영상재판이 확대되면서 신입 변호사를 뽑지 않게 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며 "우리 로펌만 해도 AI 영향으로 신입 채용 계획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흐름은 법률 AI 서비스 이용자 증가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7월 법률 AI 서비스 '슈퍼로이어'를 출시한 로앤컴퍼니는 출시 19개월 만에 회원 수 2만 9000명을 확보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법률 리서치 △법률 서면 초안 작성 △문서 분석 및 요약 △문서·사건 기반 대화 등 법률 업무 전반을 지원한다. 로앤컴퍼니에 따르면 이용자의 94%는 '업무 효율이 향상됐다'고 응답했다. 업무 효율 역시 약 1.7배 향상됐고, 출시 6개월 만에 변호사 업무 시간 약 230만 시간이 절감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AI 활용이 확산되면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사실처럼 제시하는 이른바 'AI 환각(hallucination)'이 소송 자료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경찰이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를 활용해 불송치 결정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존재하지 않는 법리를 인용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가 작성한 불송치 결정문에는 "일시적이거나 단편적인 언행만으로는 아동의 정신 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반복성·지속성 및 구체적인 피해 정황이 인정돼야 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대법원과 서울북부지법 판례를 인용한 것처럼 기재됐다. 그러나 이 문장은 실제 판결문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AI 환각에 따른 허위 인용 사례가 잇따르자 법조계에서도 제도적 대응 마련에 나섰다.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는 AI 활용 가이드라인 논의에 들어간다. 지난달 '리걸 AI 가이드라인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1차 회의를 열었다. 변호사들이 소송 과정에서 AI를 사용할 경우 준수해야 할 기준과 책임 범위를 구체화하겠다는 취지다. 미국, 캐나다 등 해외 변호사협회의 준칙을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는 기준을 검토할 예정이다.
대한변협 반형걸 AI가이드라인 소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월 출범해 1차 회의를 진행했고, 2월 말 2차 회의에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우선 가이드라인 형태로 방향을 제시하되, 필요할 경우 변호사 윤리 규정에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논의를 거쳐 제재나 책임 규정까지 포함할지 여부도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역시 지난해 10월부터 'AI 활용 허위 주장·증거 제출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해 운영 중이다. AI 환각 현상에 따른 허위 법령이나 판례 인용 등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법령 개선을 통한 소송당사자 등에 의무와 제재 부과, 기존 소송법상의 제도를 이용한 대응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TF를 운영하며 종합적인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아직 내부 논의 단계"라며 "논의 결과가 나오는대로 입법이 필요한 경우에는 법무부를 비롯한 정부 및 국회 등과 적극 소통해 합리적인 입법안을 도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