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12·3 비상계엄 당시 내란 중요 임무에 종사한 혐의로 기소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재판이 시작됐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중형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가 심리하는 만큼 앞으로 한 전 총리 판결을 관통한 논리가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 전 장관이 계엄 전후에 보인 행적이 계엄을 묵인하거나 동조했는지, 즉 '부작위의 작위 의무 위반' 판단이 핵심 쟁점이다.
박 전 장관 사건을 심리하는 이진관 재판부는 지난 21일 한 전 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에서 12·3 계엄을 '내란'으로 정의하고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 전 총리의 혐의를 두고 "사전에 모의하거나 실행행위를 지휘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면서도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총리의 의무와 책임을 끝내 외면하고, 오히려 그 일원으로서 가담하기로 선택했다. 범죄사실이 드러난 뒤에야 반성을 표명한 것으로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적극적 가담 여부'가 아닌, 내란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이를 그대로 용인한 채 국무위원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작위'를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의 핵심 기준으로 본 것이다. 판결문에는 "부작위로 인한 법익침해가 작위에 의한 법익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범죄의 실행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고도 적시됐다.
법조계에서는 같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장관 재판에서도 이 같은 법리가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전 장관 변호인 측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박 전 장관이 적극적으로 말렸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변호인 측은 "(비상계엄 선포 당일) CCTV 영상에는 박 전 장관이 한 전 총리에게 윤 전 대통령을 다시 설득해 보라는 취지로 손짓하는 모습이 확인된다"라며 "박 전 장관 요청에 따라 한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 설득을 위해 집무실에 들어간 것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재판부가 한 전 총리 사건에서 '부작위에 의한 책임'을 인정한 만큼, 박 전 장관이 비상계엄을 저지하려 했다는 정황을 강조하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전 총리의 판결문에는 박 전 장관에게 불리한 구체적 행위도 적시돼 있다. 판결문에는 박 전 장관이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18분 윤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마치고 비상계엄 선포를 위해 자리를 뜨자 국무위원 참석자 명단을 정리했고, 약 20분 뒤인 10시 39분에는 "참석자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에게 직접 말한 것으로 적시됐다.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요건을 외형적으로 갖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가담한 행위로도 판단될 여지가 있다.

박 전 장관이 한 전 총리와 달리 국무회의 이후에도 계엄 관련 조처를 취한 것을 놓고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에게 계엄사령부의 출국 금지 요청에 대비해 담당자를 대기시키도록 했고, 법무부 실·국장 회의를 소집해 합동수사본부로 검사 파견을 검토하도록 했다고 본다. 계엄 포고령 위반자 수용을 대비해 교정본부장에게 구치소 수용 현황 점검과 수용 공간 마련을 지시했다고도 파악했다. 이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와 동시에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따를 의무가 없는 불법 명령을 내린 직권남용 권리방해행사죄에 해당한다는 게 특검팀 시각이다.
박 전 장관 측은 26일 열린 1차 공판에서도 이같은 쟁점을 놓고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비상계엄 이후의 업무 하달은 시국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이었으며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조치 당시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만류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는 주장이다. 이어 선포 당시 비상계엄의 구체적 내용이나 실행 계획은 알지 못했고, 비상 상황에서 장관으로서 소속 공무원들과 혼란 방지 방안을 검토했을 뿐이라는 논리를 강조했다.
다음 공판은 내달 9일 예정됐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과 김 여사 등 11명의 증인을 채택했으며, 내달 열리는 공판에서는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 배상업 전 출입국본부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예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