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김해인 기자] 새로운 업무를 맡은 뒤 장시간 시간 외 근무에 시달린 공무원의 사망이 '공무상 질병'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숨진 공무원 A 씨의 배우자 B 씨가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순직유족 급여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지난해 10월 원고 승소 판결했다.
A 씨는 지난 2006년 지방교육행정 공무원으로 임용돼 2022년 1월부터 한 학교에서 행정실장으로 근무했다. 그러다 같은해 3월 우울증 진단을 받고 질병휴직해 입원치료를 받고, 같은해 7월 복직하며 도서관으로 발령받았다. A 씨는 복직 한 달 만인 8월 도서관 지하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 씨는 같은해 9월 A 씨의 사망 원인은 업무 스트레스에 따른 우울증 악화라고 주장하며 순직유족급여를 청구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는 2024년 "망인의 업무수행 내용 등을 고려할 때 사망에 이르게 할 만한 업무적 소인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승인했다. 이에 B 씨는 이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진료기록 감정촉탁 결과 등을 종합해 "망인은 공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악화돼 정상적인 인식능력과 행위선택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다"며 "망인의 사망과 공무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인사혁신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A 씨는 모 학교 행정실장으로 부임한 직후 2022년 1월경 44시간, 2022년 2월경 22시간의 시간 외 근무를 했고, 지인과 가족들에게 업무 관련 고충을 자주 토로했다.
A 씨는 우울증 상담 과정에서 '일요일에도 출근했고 어제도 관사에 남아 있었다', '실장 업무가 너무 힘들다', '행정실장 발령 후 업무가 안 해봤던 거라 너무 낯설고, 피해주기 싫어서 노력을 했는데 잘 안 됐다. 도움 받을 데도 시간도 없다' 등 업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재판부는 "2011~2017년경 지속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아와 기질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행정실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자살사고가 반복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며 "행정실장 업무를 하면서 우울증세가 급격히 악화해 입원치료까지 받은 점 등에 비춰보면 사망 원인이 오로지 개인적인 취약성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 씨에게는 가족 관련 스트레스 요인도 있었지만 공무상 질병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업무 외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업무상 부담 및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다른 요인과 중복해 작용함으로써 망인의 우울증이 재발하고 악화했다면 자살과 공무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했다.
hi@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