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대한민국 영상의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의학계 거목 한만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8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의학계 등에 따르면 서울대학교병원장을 역임한 한 명예교수는 이날 오전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1934년 10월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과 피터 벤트 브리검 병원에서 3년간 연수를 거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고인은 서울대 의대 영상의학과 국제화를 도모하며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혈관 조영술과 중재적 방사선학 분야 등 새로운 영상기술을 적극 보급했다.
전산화 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단층 영상 기법 발전에 따른 단면 해부학 지식 필요성을 예측해 세계 최초로 사체를 이용한 단면 해부학 교과서인 '인체 단면 해부학'을 국내외에 출간했다. 1999년에는 '중재적 방사선학' 영문판을 펴냈다.
고인은 방사선 영상진단 외에 혈관조영술 등 다양한 비수술적 방법으로 실제 환자를 치료하는 새로운 학문 분야인 '행동적 방사선 과학(Active Radiology)' 도입을 주장하며 오늘날 중재적 방사선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교육 연구 진료 열정으로 1982년 서울대병원 교육연구부장과 1986년 제2 진료부원장을 거쳐 1993년 서울대병원장에 선임돼 서울대병원 발전에 이바지했다. 퇴임 후에도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로서 미래 의학 연구의 주역이 될 의대생들의 연구 능력을 함양했다.
창의적 연구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한만청 연구기금'을 설립해 매년 수여해오고 있다. 고인은 혈관중재영상의학계 세계적 권위자로서 한국인 최초 미국영상의학전문의학회 명예 펠로우, 세계 최대·최고 방사선학회인 북미영상의학회 종신 명예회원으로 추대됐다.
유럽, 일본 등 7개 국제·해외 방사선학회 명예회원을 역임했다. 고인은 1998년 대한의용생체공학회 의공학상과 1998년 대한의학회 분쉬의학상, 2001년 함춘대상-학술연구부문, 2022년 아시아오세아니아방사선의학회 Gold Medal 등 상을 받았다.
영상의학에 중재적 시술 개념을 도입하고 학회의 국제화에 이바지한 점을 인정받아 2014년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국내 영상의학 선진화·국제화를 위해 헌신하고 의학전문학회 발전·변화를 이끄는 데 이바지한 공로로 2018년 대한의학회 의학공헌상(2018)을 받았다.
고인은 독립운동가, 언론인이었던 월봉 한기악 선생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8세에 아버지를, 17세에 어머니를 각각 여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틀 후 한국전쟁을 맞았다. 형들의 징집으로 소년가장이 된 고인은 거동이 불편했던 할머니 등과 한강 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한국전쟁을 몸소 겪었던 고인에게 64세이던 1998년에 세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암 선고였다. 14cm 간암이 발견돼 수술받았으나 폐암으로 전이돼 수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와 평소 약을 멀리했던 생활 습관 덕에 항암제가 특효를 발휘해 기적적으로 완치됐다. 이후 투병기를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라는 책으로 펴내는 등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료 신뢰 구축과 건강한 삶의 가치를 몸소 실천했다.
고인은 의학자이자 교수로서 미래지향적인 사고로 조직을 발전시킨 것뿐 아니라 후학을 가르치는 큰 스승으로 평생을 일관하는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삶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더 단단해졌고, 그 경험을 많은 이에게 실천으로 보여주며 희망과 용기를 건넸다.
유족으로는 아내 김봉애 씨, 딸 숙현·금현·지현 씨, 사위 조규완(이화산업㈜ 회장)·백상익(풍원산업㈜ 대표)·장재훈(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오는 10일 오전 7시에 발인한다.
bell@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