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가 온라인 스캠(사기)의 온상으로 떠오르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캄보디아 내 스캠의 배후에는 다수의 중국계 범죄조직이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하고 물가가 저렴하며 부정부패로 단속이 느슨한 틈을 타 캄보디아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웬치'라고 불리는 스캠단지를 조성한 이들은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과 사이버사기,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은 물론, 폭행과 납치, 감금, 고문에 인신매매, 살인까지 저지르며 피해를 양산했다. <더팩트>는 현지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1970년대 '크메르 루주' 공산당 정권의 대량 학살을 일컫는 '킬링필드' 이후 이번엔 스캠에 멍든 캄보디아 상황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강주영·정인지 기자] # 18세 태국 소녀 리사는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서 일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캄보디아에 왔다. 방학 때 용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캄보디아에 도착한 리사는 10개월 동안 스캠단지에 감금됐다 올 초에야 풀려났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다리를 절뚝인 채였다. (2025년 국제앰네스티 보고서 '나는 누군가의 물건이었다')
26일 미국 국제개발처(USAID)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국제앰네스티 등에 따르면 현재 캄보디아 스캠단지에서 일하고 있는 강제노동자는 10만~15만명으로 추정된다.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태국, 베트남, 필리핀, 홍콩 등 아시아를 비롯해 미국, 러시아까지 세계 각국의 10~30대가 자발적으로 유입됐다.
◆ '고수익 알바' 명목으로 유인…구타에 죽어 나가기도
캄보디아 국경지대에 주로 조성된 스캠단지는 코로나19 시기인 지난 2022년을 전후로 급증했다. 스캠조직은 주로 SNS를 통해 '고수익 아르바이트' 명목으로 외국인을 유인했다. IT 지원·고객 상담·온라인 마케팅 직종을 가장했다.
달콤한 유혹에 속아 캄보디아로 온 이들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여권을 압수당했다. 이들은 스캠단지에 감금된 채 각종 범죄에 강제 동원됐다. 하루 16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감시를 당하며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투자 사기 등을 수행했다. 할당량를 채우지 못하면 노동시간이 연장되거나 전기 충격기, 아령 등으로 고문, 폭행을 당했다. 앰네스티 보고서는 "캄보디아 스캠단지가 현대판 노예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캄보디아에서 약 20년간 선교 활동 중인 장완익(61)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ICCH) 이사장은 "주변에서 '우리 사촌 동생이, 조카가 캄보디아에 돈 벌러 갔는데 소식이 없다', '내 동생 사진을 좀 봐달라'는 연락을 여러 번 받았다"며 "공항에서 납치당하거나 하는 일들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앰네스티 보고서에는 자살하거나 자살을 종용했다는 증언도 담겼다. 17세 태국 소년 A 군은 구타당한 뒤 건물에서 뛰어내리라는 협박을 받았다. 필리핀 부부는 살해 후 장기를 팔아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몸이 보라색이 될 때까지 구타당한 뒤 전기충격을 받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중국인 아동 1명이 사망한 경우도 있다. 탈출을 시도하면 폭행과 전기고문, 식량 제한 등이 이뤄졌다.
사실상 생지옥에 가깝지만, 철저한 경비로 캄보디아인들조차도 스캠단지 내부 사정은 잘 모르는 실정이다. 단지는 대체로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고, 담장 위로는 철창이 세워져 있다. 주변에는 무장한 조직원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
B(37) 씨는 "중국인들이 직접 카지노를 짓고 이용해왔지만 일반 캄보디아인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며 "경비가 굉장히 철저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밖에서는 모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들도 그들이 연락하고 공항에서 픽업한 것 같다"며 "밖에서 잡히면 숨길 수 없겠지만 안에 들어가서 나올 수가 없으니 그렇지 않겠냐"고 했다.
◆ 스캠단지 감금돼 강제노동…범죄 가담 피의자로 수사대상
스캠단지 내 강제노동자들은 노예처럼 부려졌으나 모두 범죄에 동원됐다. 더욱이 자발적으로 캄보디아에 간 이들이기에 피해자로 볼 것이냐, 범죄자로 볼 것이냐는 논란이다.

한국 경찰은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64명을 송환하고 59명을 구속해 수사 중이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DB) 및 입출금을 관리하는 CS팀, 로맨스 스캠팀, 검찰 사칭 전기통신금융사기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납품 사기팀 등으로 나눠 범행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충남경찰청에 송환된 이들이 몸담았던 스캠단지에서는 중국인 1명, 한국인 2명이 총책을 맡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정보원도 최근 캄보디아에서 송환된 이들을 두고 "피해자라기보다 대부분 범죄에 가담한 사람이라고 보는 게 객관적"이라고 했다. 국정원은 캄보디아에서 범죄에 가담한 한국인만 1000~2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캄보디아 경찰청이 지난 6~7월 검거한 3075명 중 57명은 한국인으로 드러났다.
스캠 외에 마약범죄에 연결됐다는 정황도 나왔다. 캄보디아 스캠단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한국인 대학생 박모(22) 씨 사건의 주범은 지난 2023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마약 사건 총책의 공범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장 이사장은 "몇 년 전부터 스캠범죄에 연루됐다고 의심될만한 일들이 벌어졌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등 심상치 않은 일들이 있었다"며 "여권 번호 등을 이용해서 확인해봐야 한다고 일러줬던 게 불과 몇 주 전인데, 소름 끼치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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