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다빈 기자] 김건희 여사 연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정교유착 의혹'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의혹의 정점인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총재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모두 구속되자 종교계는 "종교의 자유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 수사는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 사이에서 기준을 세우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건 배경에는 '참부모의 뜻이 실현되는 나라'
통일교와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국민의힘까지 얽힌 정교유착 의혹은 윤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22년 대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검팀은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공소장에 '참부모(한 총재) 뜻이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한 총재의 '정교일치' 이념을 이 사건의 배경으로 제시했다.
김건희 여사의 공소장에도 한 총재가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통일교 정책을 정부 정책으로 수용하고 통일교와 우호적 관계를 맺을 대선 후보를 물색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특검팀은 한 총재가 정교일치 실현을 위해 전략적으로 윤 전 대통령 부부에게 접근한 것으로 봤다. 윤 전 대통령에겐 권 의원을 통해, 김 여사에게는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금품을 제공하고 윤석열 정부와의 교류를 확장해 나갔다고 파악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 전 본부장은 권 의원에게 1억 원을 건네며 "오늘 드린 것은 후보님을 위해 요긴하게 써달라"는 문자를 직접 보냈다. 윤 전 본부장은 대선 직후인 2022년 3월22일 권 의원과 함께 윤 전 대통령을 만났고, 아프리카 원조 등 통일교의 각종 사업을 청탁했다. 당시 당선인이었던 윤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이룰 수 있도록 하자"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전 씨를 통해 김 여사에게 6220만 원 상당의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총 2000만 원 상당의 샤넬백 2개 등을 선물하고 통일교 현안 해결을 청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통일교 측이 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권 의원의 당 대표 당선을 지원하고자 신도들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당원 가입을 추진한 정황도 포착됐다. /국회=남윤호 기자
통일교 측이 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권 의원의 당 대표 당선을 지원하고자 신도들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당원 가입을 추진한 정황도 포착됐다.
결국 한 총재는 지난달 23일 정치자금법 위반과 청탁금지법 위반, 증거인멸 교사,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특검팀 수사를 받는 종교 지도자 중 신병을 확보한 첫 사례다.
다만 한 총재 구속을 전후로 특검팀에 대한 반발도 거세다. 한 총재는 같은 달 8일과 11일, 15일 세 차례에 걸친 특검팀의 출석 요구에 건강상의 이유로 모두 불출석 했다가 권 의원의 구속이 유력해지자 17일 자진 출석 형식으로 특검팀 조사를 받았다.
한 총재는 구속 후 두차례 조사를 받았으나 세번째 조사부터는 불응하고 있다. 재통보된 4일 조사에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앞으로 조사에 일절 응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의 구속기간은 오는 12일로 만료되기 때문에 그 전에 기소해야 하는 특검팀으로서는 발걸음이 바빠졌다.
◆국민의힘 및 해외인사까지 "종교탄압" 반발
한 총재를 향한 특검팀 수사에 통일교 측은 "종교 탄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통일교는 한 총재의 구속에 "국제적으로 존경 받는 종교 지도자에 대한 특검의 무리한 조치"라며 "국제적 종교 지도자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규탄한다. 강제 절차가 아닌 인도적 배려와 합리적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특검 수사를 종교탄압으로 규정했다. 장동혁 대표는 한 총재 구속 후 "헌법상 명백히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는 대한민국에서 특정 종교를 향해 정치적 공세를 하고, 탄압하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인사가 여론전에 나서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인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부 장관은 SNS에 "한국에서 종교 지도자 한학자 총재를 대상으로 한 법적 조치는 매우 우려스럽다"라며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한국이 지지해야 할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기시다 정부가 통일교 해산 명령을 청구하자 "일본에 해가 될 것"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다만 통일교 내부에서는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교단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교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과 청탁 등을 중심으로 '정치유착 의혹'을 겨냥한 특검팀의 수사가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의 결탁 구조를 드러내고 정교분리 원칙 위배 여부를 분명히 판가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예원 기자
대한민국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정교분리의 원칙도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20조에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갖는다', '국교는 인정되지 않으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돼 있다.
지난 8월28일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이 발표한 '정교분리원칙에 대한 헌법적 연구' 보고서'는 "정교분리는 국가의 종교 중립뿐만 아니라 종교의 정치 중립까지 포괄하는 상호 분리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교의 정치참여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만, 그 영향력이 과도해 정치권력을 구조적으로 장악하거나 공적 권위에 종교적 권위를 결합시키는 경우 예외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며 "이러한 제한은 종교의 자유 부정이 아니라 민주주의 질서와 종교의 자율성을 상호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또 "종교인의 정치 참여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에 속하는 영역으로 헌법상 보호 받아야 한다"면서도 "종교집단의 조직적 정치개입은 종교권력이 정치권력으로 전이되는 헌정질서상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통일교 측은 이번 사건이 윤영호 전 본부장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법원이 통일교의 거점인 경기도 가평 천정궁과 서울 용산구 통일교 한국본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고 한 총재, 권 의원의 구속은 물론 구속적부심까지 기각한 것은 사법부가 일단 혐의가 소명된다는 1차적 판단을 한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통일교 창시 71년 이래 사상 첫 교단 최고지도자 구속이라는 판단에 무게감이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