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남의 땅에 사과나무를 심어 사과를 얻었더라도 재물손괴나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은 횡령·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2014년 경기도 시흥에 있는 땅 주인 B 씨의 허락없이 사과나무 40 그루를 심어 사과 80개를 수확했다. 이를 알게 된 B 씨가 토지 사용과 사과나무 재배를 중단하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사과 160개를 추가로 수확하자 형사 사건으로 확대됐다.
1심은 A 씨는 절도 혐의를 인정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공소장을 변경해 사과나무 재물손괴와 사과 횡령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다. 2심은 절도죄는 무죄로 본 반면 재물손괴와 횡령죄를 인정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를 뒤집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재물의 소유자와 관리자 사이에 법적인 위탁·신임 관계가 있어야 한다. 대법원은 A 씨가 B 씨에게 토지 점유·사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것만으로는 이같은 관계가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물손괴는 남의 재물을 훼손하거나 은닉해 효용을 침해했을 때 성립한다. 대법원은 사과나무를 심어 사과를 수확한 행위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사과나무의 효용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 효용을 누리지 못 했을 뿐이어서 재물손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B 씨는 상속으로 토지를 물려받은 뒤 14년이 지나서야 토지와 사과나무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A 씨는 그동안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 사과나무를 키워온 점도 감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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