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응급실 의료진이 진료 절차를 성실히 이행했다면 결과와 무관하게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의료진의 사법 부담을 줄여야 응급환자 수용성을 높일 수 있고 수 년째 이어진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응급실 뺑뺑이란 환자가 위급한 상태인데도 한 번에 적절한 병원에서 이송되지 못하고 구급차에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상황을 말한다. 2년에 걸친 의정갈등으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더욱 심화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병원까지 2시간 넘게 이송한 환자는 의정 갈등 전인 2023년 상반기 1656건에서 올해 상반기 3877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47곳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환자 수도 2023년 1분기 47만7557명에서 2024년 4분기 24만4771명으로 40% 가량 감소했다. 응급실 수용능력이 크게 줄어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도 2차 병원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응급의학계는 응급실 뺑뺑이가 지속되는 이유로 "응급 처치에 최선을 다했지만 의료진이 법적 책임에서 면책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12일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린 '응급의료체계 소생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단 한 건의 실수로도 형·민사상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에선 현장 의료진이 소극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은 각 응급실의 수용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은 최종치료가 아닌 응급치료를 위한 곳이어야 한다"며 "최선을 다한 응급처치에 면책이 이뤄진다면 환자 수용성도 높아질 것"이라며 1986년 미국에서 제정된 엠탈라(EMTALA)법을 소개했다. "미국은 응급환자 진료 의무와 의료기관 책임을 규정한 엠탈라법 제정을 거치면서 '응급 처치가 적절히 이뤄졌을 경우 중대한 과실이나 고의 위법 행위가 아니면 의료진을 보호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형성했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응급실 과밀화를 초래하는 경증환자 문제도 지적했다. "연간 1000만 명의 환자가 응급실을 방문하지만 실제로 입원이 필요하거나 응급한 수술이 필요했던 환자들은 100~150만명 안팎"이라면서다. 그는 "본인이 경증인 줄도 알고 응급실이 아닌 작은 병원으로 갈 의향도 있는데 갈 데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경증환자를 하위 의료기관으로 유도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이용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도 과제"라고 말했다.
김찬규 응급의학과 전공의도 "엠탈라법은 응급 상황인 환자들의 보험 유부나 지불 능력과 관계없이 적절한 응급처지를 보장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라며 "의사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 아님에도 진료 절차를 성실히 준수한 의료진이 소송 책임을 벗어날 수 있어 의사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자도 의료인 처벌이 아니라 적절한 의료 서비스 제공을 보장 받길 원할 것"이라며 "의료사고 면책법보다는 기본응급 제공법, 기본 응급 의료법으로 명명해 접근하면 정책 수용성이 커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