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지역 거주 환자들이 서울로 원정 진료를 가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이 연간 4조원을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방 의료서비스 불신과 실제 의료 인력, 인프라 격차가 그 원인이다. 정부는 지역 의료 중심축인 국립대학병원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지난 17일 발행한 '지역 환자 유출로 인한 비용과 지역 국립대학병원에 대한 국민 인식' 보고서를 보면 지방 거주 환자가 지역 국립대병원 대신 서울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면서 추가로 드는 연 비용은 최대 4조6270억원으로 추산됐다. 진료비 차이와 환자·가족 기회비용까지 반영한 비용이다. 교통비와 숙박비만 따지면 4121억원, 진료비 차이가 없다고 해도 3조2854억원 더 들었다.
'원정 진료'를 택하는 이유는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불신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보고서에서 '지방 거주민의 국립대학병원 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방(비수도권)의 의료서비스 수준에 대해 59.6%가 미흡하다(매우 미흡 10.6%, 미흡 49.0%)고 평가했다. 지역 의료기관 역량과 전문성에 대해서도 양호하다(15.2%)는 의견보다 미흡하다(38.1%)는 의견이 더 높았다. 46.8%는 '보통'이라고 응답했다.
지역 의료 역량이 수도권보다 떨어진다는 사실은 다양한 지표를 통해 확인된다. 국립중앙의료원의 '2022년 공공보건의료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응급실을 1시간 내 이용한 비율은 서울이 90.3%, 인천 86.7%, 경기가 77.6%였다. 반면 전남은 51.7%, 경북 53.4%, 강원은 55.8%에 그쳤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HIRA 지역보건의료진단 기초연구'에선 심혈관질환 전문의 수도권 쏠림이 지적됐다. 발생 직후 치료 여부가 생사를 가르는 심혈관질환은 필수 의료 중에서도 핵심 분야다. 심평원에 따르면 심혈관 전문의가 근무하는 전국 262개 의료기관 중 103곳이 서울·경기에, 전문의 전체 1564명 중 절반 가까운 763명이 서울(448명)과 경기(315명)에 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심혈관질환 전문의 1인당 월간 수술실적은 서울 0.7건, 전북 도농(기관 수 16곳, 의사 수 5명) 2.2건으로 의사 수가 적은 지역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필수의료 수요에 비해 인력이 부족한 지역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지역 간 의료격차 대책 마련이 시급한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 대선 공약에는 국립대병원 지원 또는 역량 강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진 않았다. 다만 '필수·지역·공공의료를 살리기'에 '국립대병원 중심의 권역책임의료기관 통합적 관리체계 일원화 추진'이 언급돼있다. 2019년부터 운영하는 권역책임의료기관 제도를 계승·발전시키려는 취지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10월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하며 수도권 대형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지역에서 중증·응급 진료를 완결할 수 있도록 국립대병원 등 권역책임의료기관을 수도권 대형병원(빅5) 수준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올해는 시도별 17개 권역책임의료기관의 중증·고난도 진료 관련 인프라를 첨단화하기 위해 국비 812억원을 투입한다.
여당 중심으로 국립대병원을 교육부 소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법안도 추진되고 있다. 국립대병원 정부 지원이 진료보다는 교육과 연구에 집중돼 진료 역량 강화에 한계가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1월 발의한 '국립대학병원 설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국립대병원 관리·감독 부처를 보건복지부로 변경하고, 대학병원에 대한 사업 및 운영 지원 근거를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