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다영 기자] 헌법재판소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가 늦어지면서 갖가지 해석이 나왔다, 100쪽이 넘는 결정문을 보면 결론 자체에 대한 이견보다는 절차적 문제 해소와 통합의 메시지 제시를 위한 고뇌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고 노무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결정문과 비교했을 때 결정문의 분량도 훨씬 늘었고, 특히 '결론' 부분이 대폭 길어졌다. 재판관들 사이 온도차를 보인 형사소송법 준용과 관련해서는 보충의견을 남기며 각각의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재판관들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마지막까지 완벽을 기하기 위해 상당 시간을 할애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관들은 전원일치로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하기로 합의한 이후 당초 결정문에서 결론 부분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탄핵심판 전담 태스크포스(TF) 소속 헌법연구관에게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헌재는 114쪽 분량 중 결정문 결론에 약 3900자 분량, 5쪽을 할애했다. 통상 헌재는 결론과 주문을 4~5줄 정도 분량으로 간략하게 밝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950자가량,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110자가량 결정문에 결론을 할애한 것과 비교해도 확연한 차이다.
특히 재판관들은 결론에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를 담자는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이후 국민들 사이 여론이 극단으로 갈리는 상황에서 헌재가 통합과 협치를 위한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고려해 헌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제1항)'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해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 그러므로 피청구인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로 끝나는 결론을 작성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헌법 정신'이 강조된 모습이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전 단계 과정을 이해하는 듯 언급한 대목도 '통합'의 맥락으로 풀이된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하여 이를 어떻게든 타개하여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라며 '계엄 선포 및 그에 수반한 조치들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피청구인이 가지게 된 이러한 인식과 책임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적었다. 다만 충분히 다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도 계엄이라는 위헌·위법한 행위를 택해 파면이 불가피하다는 취지다.
평의가 길어진 데는 형사소송법상 전문법칙 적용 문제를 두고 재판관들 사이 토론이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결정문에서도 4명의 재판관이 낸 보충의견(결론에 동의하지만 이유를 보충할 필요가 있을 때 내는 의견)이 있었다.
전문법칙이란 재판부가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보고받은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원칙적으로 부정하고, 법률이 정한 요건을 충족할 때만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형사소송법 원칙이다.
윤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에서 형사소송법을 준용해 상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의 조서와 국회 회의록 등이 증거로 채택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형사소송과 탄핵심판은 다르다'며 형사소송법 조항을 완화해 탄핵심판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일부 재판관들이 남긴 보충의견을 보면 당시 재판관 사이 치열했던 토론 과정을 느낄 수 있다. 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결정문에 "앞으로는 전문법칙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남겼다. 반면 이미선·김형두 재판관은 "전문법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헌재가 다수의 증인을 채택해 증인신문을 진행해야 하므로 절차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며 탄핵심판에서는 법 조항을 더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썼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가 헌재법 제40조(형사소송법 준용) 규정 위반 논란을 평의에서 의논했고, 탄핵심판 이후 법원의 내란죄 관련 형사 판결이 충돌할 우려가 커진다는 우려도 의식했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다만 '12·3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위헌·위법이고 그 정도가 중대하다는 데에는 의견이 하나로 모여 8대0의 결론이 나왔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