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4일 파면되면서 정부가 강하게 추진해 온 의료정책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2월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과대학 학생·의사단체와 정부 사이 갈등이 1년 넘게 제자리 걸음인 상황이다.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 2026년 의대 모집정원 결정 등 해결이 시급한 문제가 산적해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정부 정책 전환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과 당장은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 '의대 증원'에 의사단체 반발…1년 넘는 '의정갈등'
정부는 지난해 2월 "무너지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려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언제 어디서나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게 하겠다"며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공정 보상 4대 개혁과제로 구성된 필수의료 패키지를 추진했다. '5년 간 의대생 2000명 증원'은 의료인력 확충 방안으로, 지역·필수의료를 강화하고 초고령 사회에서 의료수요를 충족할 충분한 의사 수를 확보하겠다는 명분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수술 여력은 크게 줄었고, 분초를 다투는 환자들이 먼 거리 병원을 찾아다니는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늘었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으로 의대교육은 파행에 이르렀다. 결국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은 '총선용', '졸속 행정' 비판을 받으며 윤 전 대통령 국정지지율에 악영향을 줬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9월 6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평가 이유 1위로 의대 정원 확대(17%)가 꼽혔다. 12·3 비상계엄 포고령에 '미복귀 전공의 처단' 문구가 담기면서 의정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의정갈등 해소 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교육부는 지난달 7일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2026년도 모집인원을 2024년 수준인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의협,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사단체가 추천한 전문가들이 참여해 필요한 의사 수를 추계·심의하는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 설치 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추계위는 2027년부터 의대정원을 논의하게 된다. 사실상 '매년 2000명 증원' 정책은 철회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의정갈등은 1년 넘게 해결 국면을 맞지 못하고 있다. 상당 수 의대생들은 유급·제적을 불사하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의협은 의대생 제적이 현실화할 경우 투쟁에 돌입할 방침이다. 전공의 복귀율도 저조하다. 복지부는 지난달 11일 "2025년 3월 수련을 재개한 전공의 임용 대상자는 총 1672명으로, 지난해 3월 임용 대상자(1만3531명)의 12.4% 수준"이라고 밝혔다.
◆ 의료계 "정책 변화 모멘텀" vs "당장은 영향 없어"
윤 전 대통령 탄핵 인용은 의정갈등의 변수가 될 수 있을까. 보건의료계와 환자단체에서는 정부 정책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와 당장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엇갈렸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탄핵으로 불합리와 초헌법적으로 의료정책을 밀어붙였던 '원인'이 제거된 셈"이라며 "탄핵소추 이후 교육부에서 '모집인원 3058명' 결정이 나왔던 것처럼 정부가 전향적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개원의 A씨도 "적어도 의대증원은 더 밀어붙이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약속한 '전원 복귀'가 아니라고 다시 2000명을 증원하겠다는 얘긴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관측했다.
송기민 한양대 보건학과 교수는 "의정갈등은 정부가 필수·지역의료 강화라는 원칙대로 추진하면서도 환자, 국민, 의료인 등이 입은 피해를 책임져야 해소될 수 있는 것"이라며 "대통령 탄핵은 '필수의료 분야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방향성이 틀렸다거나 의료정책 실패를 책임진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미숙하게 정책을 추진해 혼란을 야기한 정부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원칙에서 벗어나거나 대책은 내놓지 않고 '의사 달래기'로만 문제를 풀려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대표도 "정권 유지 또는 교체라는 정치적 상황 변화보다 애초에 '의대 증원' 정책이 갈등의 시발점이 된 만큼, 의정갈등 해소는 탄핵 여부보다는 정부가 의사단체의 요구를 얼마나 수용하느냐가 변수"라고 봤다. 안 대표는 "의료개혁특위는 계속 운영되고 있고, 의대 증원에 대해 정부가 더 물러설 게 없는 상황"이라며 "2026년 모집인원이 아니라 모집정원을 3058명으로 못박는 정도가 전공의·의대생 복귀 명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