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해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심판 선고까지 122일간 헌법재판소는 각종 사건사고로 바람 잘 날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4일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했다. 국회 탄핵소추 직후 사건이 접수된 지 111일, 변론 종결 이후 38일 만이다.
탄핵심판이 헌재 역사상 최장 평의 기록을 경신하며 그간 헌재는 갖가지 수난을 겪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헌법재판관 협박과 헌재를 둘러싼 폭동 사태도 이어졌다.
◆ "유혈사태 각오해"…도 넘는 재판관 협박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 14일부터 전날 오후 5시까지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총 313만여개의 글이 게시됐다.
게시판에는 "탄핵 각하 기각 안하면 국민혁명으로 유혈사태 난다", "사기탄핵 각하하라", "인용되면 너희도 끝장이다. 유혈사태 각오하라" 등 험악한 글이 난무했다.
특히 헌법재판관 개개인을 향한 협박·명예훼손성 글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일부 게시자들은 특정 재판관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탄핵 인용으로 을사오적에 이름을 올리지 마라", "당신도 내란 매국 세력의 부역자냐"고 적었다.
특정 헌법재판관을 향한 위협도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았다. 재판관의 가족 정보나 자택 주소까지 공개하는 게시물도 있었다.
일부는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파트 앞에서 한달 넘게 집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달 24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 사건에서 유일하게 인용 의견을 낸 정계선 재판관의 자택으로 지목된 곳에서 '1인 시위'라며 경찰 신고 없이 사퇴 촉구 시위를 벌였다.
지난달 24일 기준 경찰이 수사 중인 헌재 재판관 협박 사건은 7건이며, 경찰은 이 중 4명을 특정해 1명을 조사했다.
◆ 헌재 도면 공유에 '국민 저항권' 주장…극우세력 폭동 모의
윤 대통령의 일부 지지자들이 헌법재판소를 노려 폭동을 모의하는 정황도 드러났다.
한 네티즌은 '한복 입고 관광객인 척 하면 헌재에 진입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헌재 정문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복대여점 지도와 예약 인증 사진도 첨부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헌재 내부 구조를 알 수 있는 평면도와 사진 등을 공유한 사례도 있었다.
탄핵이 인용되면 '국민 저항권'을 발동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들은 "헬멧, 빠따, 벽돌이 필요하다", "경찰 현행범으로 체포하려면 케이블 타이 있으면 되나" 등 극단적인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
이에 경찰은 이날 경찰력 100% 동원이 가능한 갑호비상을 발령했다. 전날에는 헌재 차단 구간을 기존 100m에서 150m 구간까지 확장해 '진공상태'로 만들었다.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는 "헌재를 비롯한 주요시설 안전 확보와 재판관 등 주요인사 신변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선고 당일 인파 운집이 예상되는 만큼 인파 관리와 질서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는 인파 밀집에 대비해 전날 오후 4시부터 3호선 안국역에서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하고 있다.
◆ "탄핵 각하" vs "주저없이 파면"…압박 수위 높인 정치권
정치권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압박이 가해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2월 28일 헌재에 탄핵심판 각하를 요청하는 공개 탄원서를 발표했다. 이어 지난달 12일에는 국민의힘 의원 82명이 2차 공개 탄원서를 제출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일 김세의 가로세로연구소 대표, 오상종 자유대한호국단 단장과 함께 178만1768명의 서명이 담긴 탄핵 반대 탄원서를 냈다.
김기현, 나경원, 윤상현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40여명은 지난달 17일 헌재에 단체로 항의 방문했다. 이들은 헌재 앞에서 윤 대통령의 최소한 방어권 보장을 촉구하고, 헌재 사무처장을 면담했다.
의원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일제 치하 때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하다"며 "무죄추정원칙과 형사소송법 준용 원칙, 방어권 보장원칙, 전문증거 배제 원칙을 짓밟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헌재의 윤 대통령 파면 결정을 촉구하며 헌재를 거듭 압박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복귀는 제2의 계엄을 의미한다"며 "국민은 저항할 것이고, 그 저항으로 인한 유혈 사태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고 주장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광화문 민주당 천막당사에서 "내란수괴 윤석열 파면을 입증하는 증거들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며 "헌법수호자 헌재가 헌법파괴범 윤석열을 주저 없이 파면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헌재가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불복 분위기도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사태 추이에 따라 헌재의 수난이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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