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선은양 기자]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 봉쇄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찰 수뇌부가 첫 공판에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의 1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윤승영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과 목현태 전 국회경비대장의 사건도 병합돼 함께 열렸다.
재판부는 네 사람 모두 비상계엄 당시 국회 외곽 봉쇄, 주요 인사 체포조 편성 등 유사한 혐의로 기소된 만큼 병합해 심리하기로 했다.
정식 공판 기일은 공판 준비 기일과 달리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있어 네 사람 모두 법정에 출석했다. 혈액암 투병으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조 청장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구속 수감 중인 김 전 청장도 정장 차림으로 재판정에 나왔다.
검찰은 약 1시간 10분 여 동안 모두진술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들이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공모해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대한민국 전역에 선포했다"며 "경찰관 3670명을 동원해 국회,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점거·출입 통제하거나 체포·구금·압수·수색하는 등의 방법으로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하는 폭동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반면 네 사람은 당시 상황을 폭동으로 인정하기 어렵고 비상계엄 선포에 공모·가담하지 않았으며 위법성 인식이 없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조 청장 측은 "조 전 청장은 평상시 또는 계엄 상황에 준해 치안 유지 직무를 수행했을 뿐 국헌문란이나 내란 목적은 없었다"며 "특히 이 사건 계엄은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수준의 폭동이 아니었고 낮은 단계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또 "포고령 발표 이후 계엄사령관 지시에 따라 일시 통제를 강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포고령에 따른 것으로 위법하다는 인식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 전 청장 측도 "윤 대통령과 공모한 사실이 없으며 당시 투입된 인원만으로는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을 일으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윤 전 조정관 측은 "공소장이 약 110페이지 중 윤 전 조정관이 등장하는 페이지는 한 페이지조차 되지 않는다"며 "비상계엄이라는 제약적인 상황에서 위법성을 인식 못 하고 신속 처리 보고라는 경찰 본연 업무를 수행했을 뿐인데 내란에 가담했다는 공소제기는 너무나도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다.
목 전 대장 측은 "목 전 대장은 집에 있다가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TV로 알게 될 정도로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며 "폭동에 대한 고의나 국헌문란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건강상 이유로 재판 출석이 어렵다는 조 청장 측 요청에 따라 조 청장이 나오지 않더라도 '기일 외 증거조사'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기일 외 증거조사 방식은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채 진행된 증인 신문에 대해 서증으로 증거조사한다.
재판부는 오는 31일 오전 10시에 다음 공판을 열고 국회 봉쇄와 관련한 증인 3명을 신문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날부터 종일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은 비상계엄 선포 3시간 30분 전 대통령 안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을 만나 계엄 내용을 지시받고 국회 봉쇄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비상계엄 당일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하고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주요 인사 체포조 운영에 가담한 혐의도 있다.
윤 전 조정관은 체포조 편성을 위한 경찰 인력이 필요하다는 방첩사의 요청을 받아 이를 상부에 보고하고 경찰 인력을 파견 준비시킨 혐의를 받는다.
목 전 대장의 경우 당시 국회경비대장으로서 대원들에게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민간인들의 국회 출입을 금지한 혐의가 있다.
두 사람은 지난달 28일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 봉쇄와 체포조 지원에 가담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