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종권 언론인] 단 3.5초만에 시속 200km를 넘긴다. 롤러코스터 ‘킹다 카(Kingda Ka)’ 이야기이다.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페라리보다 빠르다. 최고시속 315km인 페라리 F430의 제로백은 3.7초. 그야말로 쏜살같이 질주하는 페라리를 여유 있게 앞지르는 속도이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빨랐던 롤러코스터 킹다 카는 미국 뉴저지주에 위치한 식스플래그의 명물이다. 낙하 높이 127m인데 그냥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270도로 꽈배기까지 튼다. 중력가속도가 5G에 이른다. 지구 중력의 5배에 달하는 힘을 온 몸으로 받는 거다.
총 길이는 950m. 다행일 수도 아쉬울 수도 있는 절규와 비명의 주행은 28초 만에 끝난다. 최근 정국상황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하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이 아찔한 수직 낙하였다면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구속은 꽈배기 구간이다.
구치소를 오가며 탄핵 재판을 받는 모습과 내란 혐의 재판으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구속 취소라는 2차 낙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당하게 주먹을 불끈 쥐고 서울구치소를 걸어 나와 한남동 관저로 귀가하는 모습을 보며 어지럼증과 현기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겠다.
두 쪽으로 갈라진 민심은 환호와 분노가 교차하고 있다. 탄핵을 찬성하는 민심은 가슴이 두 번 덜컥 내려앉은 느낌이겠고, 탄핵을 반대하는 광장은 짜릿한 희열을 만끽하는 모습이다. 그러면 윤 대통령 본인은 어떨까. 맨 먼저 맨 앞에 올라탄 상황이 아닌가.
사실 롤러코스터에서 가장 속도감을 느끼는 쪽은 맨 뒷자리라고 한다. 앞자리는 차츰 가속되지만 뒷자리는 정점을 지나면서 곧바로 곤두박질치는 거다. 전방을 바라보는 앞자리는 시각효과에 따른 두려움이 더 크겠지만 속도감에 구토하는 쪽은 역시 뒷자리이다.
롤러코스터는 중간에서 내릴 수 없다. 한번 타면 멈출 때까지 붙잡혀 있는 거다. 이때 되뇌는 것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자기 위안이겠다. 사실 빠를수록 빨리 지나가는 것 아니겠나. 어렵고 힘든 순간도, 찬란한 영광의 순간도 이 또한 지나간다는 명구는 고대 페르시아 지방의 우화에서 비롯됐다고도 하고 이스라엘 국기 ‘다윗의 별’의 주인공인 다윗과 솔로몬에 얽힌 이야기라고도 한다.
어느 날 다윗 왕이 반지 세공사에게 "나의 격에 맞는 반지를 만들되 전쟁에서 이겼을 때도 절망에 낙심할 때도 자신을 돌이켜 볼 글귀를 새기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에 반지 장인이 고심하자 훗날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글귀를 제안했다는 거다.
영화 ‘반지의 제왕’ 중 절대 반지에 새겨진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모든 반지를 가둔다"는 권력지향형 의지와는 품격을 달리하지 않나.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에 절대 반지의 뜻이 담겼다면 구속 취소된 지금의 마음엔 다윗 반지의 글귀가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 말이다. 구속 취소돼 풀려난 윤 대통령은 "구치소에서 배운 점이 많았다"고 했다. 무엇을 배웠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지난 2005년 신 건 전 국정원장이 구속됐을 때 특별 면회를 온 지인들에게 한 말이 있다.
구치소나 감옥에 갇히면 세 가지가 극단적으로 달라진다는 거다. 첫째가 종교라고 했다. 신앙심이 깊고 헌금이나 연보에도 충실했던 이들은 자신이 충심을 바쳤던 신을 원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정성을 다했는데 이게 뭐냐고 반발한다는 거다.
반대로 ‘나일론 신앙’의 경우 더욱 굳건하게 신을 찾더라 했다. 둘째는 가족이라는 거다. 평소 끈끈하지 못한 가정의 경우 해체의 길로 접어들더라 말했다. 당시 정부의 고위직 공무원이 구속됐는데 가족이 캐나다로 떠나버렸다. 구치소 도서실에서 전화를 걸어 주는데 받지 않아 연결이 불발됐다는 거다.
구치소 측은 사정을 알지만 알려 줄 수는 없었다. 혹여 수감자가 절망에 빠져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거다. 반면 가족 간의 정이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경우도 있다. 셋째는 건강이라고 했다. 평소 매일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를 멀리하게 돼 건강이 좋아진다는 거다.
반면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속을 끓이다 건강을 상한다는 거다. 과연 윤 대통령은 어느 쪽일지 모르겠다. 갇혀 있을 때는 신이든 미신이든 회의적이었다가 풀려난 지금은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열심히 기도 혹은 치성을 들인 결과 풀려났다고 여길 수도 있고. 가정은 김건희 여사가 비록 면회를 가지 않았지만 윤 대통령이 풀려난 후 한남동에서 김치찌개로 회포를 달랬다고 하니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건강도 좋아졌을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처음 일주일은 신체가 금단증상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52일이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않겠나. 문제는 현재의 롤러코스터가 언제 끝날지 안전하기는 한 것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됐어도 사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지난 2023년 6월 스웨덴의 그뢰나 룬드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 ‘제트라인’이 부분 탈선해 1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쳤다. 최고 시속은 겨우 90km였다. 우리나라도 2022년 9월 추석연휴에 용인의 에버랜드에서 롤러코스터가 작동을 멈춰 30여명이 지상 25m 공중에 고립됐다가 구조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지금 원하든 원하지 않든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세금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내고서 말이다. 롤러코스터의 추진기와 레일과 설계를 맡은 선출직들과 임명직 고위 공직자, 검사와 판사들 모두 시민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지 않나.
시민들은 주유산천하는 ‘청룡열차’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적절한 짜릿함과 동승한 사람과의 유대감에 더 중점을 두었을 수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급강하하며 안전도 확신할 수 없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상황임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구토를 참아야 하는 것일까.
중력가속도에 정신이 혼미해지면 앞이 캄캄한 블랙아웃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놓치는 것이 있다. 이 어드벤처에서도 수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롤러코스터 레일을 비틀고 덜컹거림을 주면서 탑승자들이 눈을 감고 비명을 지르게 하는 거다. 그보다 수리와 보완이 필요한 구간을 방치해 볼트 너트가 풀린 상태에서 질주하도록 하는 거다. 위험은 짜릿함을 유발한다고 호도하면서 말이다.
부실한 어드벤처는 2023년 12월 이미 예고됐다. 대통령이 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1심은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취임한 이후 정부측 변호인이 바뀌고 2심은 "징계절차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렇게 정부가 패소한 경우 법무부는 상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상고를 포기해 버린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대법원 최종 심판 없이 부당한 징계를 받은 것으로 처리됐다. 이번에 서울중앙지법이 구속취소를 인용한 상황에서 검찰은 당연히 즉시 항고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동안 수십년 동안 구속 기소를 날(日)로 계산해온 관례를 때(時)로 돌연 바꾸면 사법체계에 갑작스런 변화가 생기므로 상급 법원에 판단을 구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검찰은 인권과 피고인의 법익을 앞세워 항고를 포기해 윤 대통령이 풀려나게 했다. 여기에 의문이 있다. 윤 대통령 측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적부심) 대신 체포적부심을 신청할 때 구속기간 산정과 관련한 형사법적 맹점을 몰랐을까. 구속적부심이 진행될 동안은 구속기간 산정에 제외되지만 체포적부심은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더불어 체포적부심을 신청한 경우가 거의 없는 상황이 아닌가. 심우정 검찰총장 또한 이를 전혀 몰랐을까. 전국 고검장 회의를 열고 기소를 검토한다는 이유로 시간을 끌어 결과적으로 9시간 이상 늦게 기소한 것 말이다. 법원이 관례를 무시했다면 상급심의 판단을 구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이를 인권 측면에서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충격에 빠진 국민에 사과와 함께 그동안 날짜를 잘못 산정해 기소된 피고인들이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도 밝혀야 하지 않나. 킹다 카 롤러코스터와 부대시설은 지난 2월 28일 폭파 방식으로 최종 해체됐다. 낡고 시대 트렌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익성도 떨어지고 말이다.
우리도 이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로 구성된 롤러코스터를 해체할 때가 됐다. 이런 형태의 스릴과 어지럼증은 바라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기득권 정치와 선민의식에 빠진 사법은 이런저런 분칠과 덧칠로 시민을 현혹할 것이 분명하다. 시민의 단호한 거부가 필요한데 과연 어떨까. 모 국회의원 말마따나 1년만 지나면 잊어버릴까. 정말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