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에도 36시간 연속 근무"…전공의들, 수련환경 개선 토로
  • 조채원 기자
  • 입력: 2025.03.10 15:35 / 수정: 2025.03.10 15:35
의협·국회 복지위, 의료현장 정상화 정책대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0일 국회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및 처우 개선을 주제로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대화’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 / 이새롬 기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0일 국회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및 처우 개선을 주제로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대화’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 /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세브란스 산부인과에서 전공의 수련 중 임신 사실을 알게 된 A씨. 초기부터 출산 수 일 전까지 임신하지 않은 다른 전공의들과 마찬가지로 야간 당직 근무를 포함해 36시간 연속 근무를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A씨의 동의를 구하는 어떤 명시적인 절차조차 없었다. 근로기준법 제 70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임산부와 18세 미만자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과 휴일에 근로시킬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74조에는 임신한 근로자에 대한 시간 외 근로가 금지돼 있다.

# 현행 전공의 특별법은 주 80시간 이하 근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사직한 내과 전공의 1년차 B씨의 '주 100시간'으로 짜여져 있었다. 평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정규 근무를, 주 2~3회 정도 당직 근무가 배정됐다. 평일 당직은 다음날 오후 5시까지 33시간, 주말 당직은 25시간 연속 근무. 매일 평균 3시간 정도의 초과 근무까지 합치면 주당 근무 시간은 120시간에 이른다.

전공의들이 열악한 수련환경과 부당한 근로 조건 개선이 시급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수련생이자 근로자인 이중적 지위 탓에 근로기준법과 전공의 특별법 어디에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다. 정당한 처우와 충분한 교육 기회가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국가차원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에도 입을 모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0일 국회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및 처우 개선을 주제로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대화' 토론회를 열었다.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1년이 넘은 의료대란을 조속히 해결하자는 취지다. 의협·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국회 입법조사처·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이 토론회에는 김택우 의협 회장,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 이관후 입법조사처장, 박주민 복지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발제를 맡은 박 위원장은 "2020년 전공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받는 평균 임금은 398만 원 정도"라며 "대학병원은 전문의 인력을 확충해 전공의들의 과중한 노동을 줄이고 적절한 수련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공의 특별법이 제정됐는데도 수련 환경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를 △수련환경평가위원회(수평위) 운영 방식 △ 처벌 조항의 부재 두 가지로 꼽았다. 기존 교수 10명, 전공의 2명으로 구성됐던 수평위는 전공의 권익 보호보다는 병원 입장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 특별법에는 사실상 처벌 조항이 전무하다, 특별법을 위반한 수련 병원에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는 수준"이라며 "수평위는 대한병원협회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기구로 재편하고, 전공의 추천 위원을 과반 이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수련 환경 개선 방향으로 "수면 부족과 피로 누적으로 판단력과 집중력이 저하돼 환자 위해 사건 발생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며 "수련 시간을 주당 80시간에서 64시간, 장기적으로 52시간으로까지 단축하고 연속 근무 시간을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이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기동훈 중앙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토론에서 "왜 전공의 수련을 국가가 지원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은 이번 사태에서 찾을 수 있다"며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이 사직한 것만으로 모든 대학병원이 엄청난 적자를 겪고 있고, 초과 사망률도 굉장히 높아졌다"고 짚었다. 기 교수는 "한국은 전공의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재정 지원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미국은 경우 메디케어(연방정부에서 운영하는 노령 인구를 위한 건강보험 제도)에서 2조, 메디케이드(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공동 지원하는 국민의료 보조제도) 7조 정도를 전공의 수련비용으로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전공의 인권 보호와 환자 안전 등을 목적으로 한 '전공의 특별법'은 19대 국회 때인 2015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으로는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전공의의 수련 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있다. 해당 법안에는 △ 주당 수련 시간 상한을 60시간 이내, 연속 수련 시간 상한은 24시간 이내로 변경 △ 응급 상황 시 연속 수련 시간을 30시간 이내로 단축 △ 지도 전문의를 교육 총괄, 연구 전담, 수련 지도 전담 등의 역할을 나누어 지정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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