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는 출석해 적극적으로 임하면서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조사는 계속 불응하고 있다. 발언권이 보장된 헌재 심판정에서는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는 여론전을 벌이고 앞으로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수사기관의 조사는 최대한 회피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21일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했다. 먼저 탄핵 소추안이 발의됐던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출석하지 않았던 헌재 심판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주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비상입법기구 예산안을 편성하라는 지시를 담은 문서를 전달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를 본 뜬 비상입법기구는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도 유일하게 질문했던 핵심 쟁점이다. 그러면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작성했다는 듯한 여지를 남겼다. 최 장관은 계엄 당일 윤 대통령과 면담한 뒤 참고하라며 접어서준 문서를 현장에 있던 대통령실 관계자가 전해줬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의 김용현 전 장관 공소장에 등장한 '도끼나 총을 써서라도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 혐의도 부정했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과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이 검찰에서 진술하는 등 여러 증거가 제시됐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방해하기 위해 계엄군을 투입했다는 의혹도 부인했고 위헌 논란이 있는 포고령은 실행 의사가 없었고 작성도 김용현 전 장관이 했다고 발을 뺐다. 홍장원 전 국정원1차장 등을 비롯해 다수가 증언하고 물증도 나온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체포 지시도 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자신에게 제기되는 의혹에는 방어선을 치면서 부정선거 의혹으로 역공했다. 부정선거론은 애초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담화문에는 없었지만 탄핵심판에 이르러 쟁점화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계엄을 선포하기 이전에 여러 가지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에 의문이 드는 게 많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극우 유투버 등 지지세력을 움직이기에 가장 적합한 이슈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에는 철저히 무시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공수처는 이날 헌재 심판 종료시간에 맞춰 강제구인이나 현장조사를 하기 위해 서울구치소를 찾았지만 피의자를 만나지도 못했다. 윤 대통령은 변론기일 종료 뒤 국군서울지구병원을 방문했다가 조사가 불가능한 오후 9시가 넘어서야 구치소로 복귀했다. 공수처는 전날도 강제구인을 시도했지만 윤 대통령 변호인단이 접견을 이유로 시간을 끌면서 결국 무산됐다. 윤 대통령은 첫 조사인 지난 15일 신원 확인조차 거부하는 등 공수처 조서의 재판에서 증거능력을 없애려는 치밀함을 보였다.
늦어도 오는 28일까지는 검찰에 사건을 송부해야 하는 공수처는 이제 시간에 쫓기는 처지가 됐다. 윤 대통령 강제구인을 계속 시도하겠지만 현장조사도 염두에 둔다는 입장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계속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임할 경우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최악에는 윤 대통령 조사 없어 검찰에 사건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검찰은 사건 조기 이첩을 위해 공수처에 협의를 요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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