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영화 '기생충' 현실판?…도심 한복판 건물 지하계단 열었더니
입력: 2024.12.03 14:00 / 수정: 2024.12.03 14:00

40~50대 추정 여성 2명 건물 지하서 몰래 숙식
상가 소유주들 '골머리'…퇴거불응 혐의 경찰 고소


3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용산구 모 건물 지하 2층 비상계단에서 40~50대로 추정되는 여성 2명이 지난 2년 동안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하린 인턴기자
3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용산구 모 건물 지하 2층 비상계단에서 40~50대로 추정되는 여성 2명이 지난 2년 동안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하린 인턴기자

[더팩트ㅣ이윤경 기자·이하린 인턴기자] 중년 여성 2명이 최소 2년 동안 도심 한복판 상가 건물 지하에서 무단으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온 것으로 드러났으나 끝내 퇴거를 거부해 경찰에 고소장까지 접수됐다.

3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용산구 모 건물 1층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정모 씨는 지난 2022년 8월 지하 계단에서 A 씨와 B 씨를 처음 목격했다. 정 씨는 엘리베이터가 너무 늦게 내려오자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계단 출입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누군가 문을 누르고 있는 힘이 느껴졌다. 이내 문이 열리자 40~50대로 추정되는 여성 2명이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정 씨는 처음엔 그들이 잠시 머물다 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하 2층으로 내려간 정 씨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하 2층에는 또 다른 비상계단이 있었고, 캐리어와 가방을 비롯해 각종 생활용품과 먹거리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정 씨는 "이후에도 A 씨와 B 씨를 자주 마주쳤다"며 "주로 엘리베이터 옆 계단을 이용해 또 다른 비상계단에 아예 살림을 차려놓고 살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전했다.

해당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6층짜리다. 각 층에는 교회와 카페, 음식점 등이 문을 열고 있으며, 원룸텔과 같은 주거시설도 있다. 오가는 손님 등으로 24시간 개방돼 있으며 층마다 무료로 화장실을 쓸 수도 있다. 영업 중인 상가와 와이파이도 연결 가능하다는 게 소유주들 주장이다.

비상계단에는 두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짐들이 가득했다. 약 180㎝ 높이의 철제 선반 위에는 생활용품 등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있었다. 선반 옆에는 대형 캐리어 3~4개와 가방 등이 담요로 뒤덮여있었다. 폭이 깊고 불도 켜지지 않아 무심코 지나치면 눈에 띄지 않았다.

상가 소유주들은 지하 2층 비상계단에 불법점유자에 대한 퇴거명령 공지를 부착하고 지난달 15일까지 짐을 비울 것을 요구했다. A 씨와 B 씨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퇴거불응 혐의로 고소했다. /독자 제공
상가 소유주들은 지하 2층 비상계단에 '불법점유자에 대한 퇴거명령' 공지를 부착하고 지난달 15일까지 짐을 비울 것을 요구했다. A 씨와 B 씨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퇴거불응 혐의로 고소했다. /독자 제공

A 씨와 B 씨는 건물 관리소장이 퇴근하는 오후 4시 이후에 들어온다고 한다. 신발을 벗고 담요로 덮여있는 짐들을 계단에 하나씩 풀고 나면 생활 가능한 방처럼 구색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이후 관리소장이 출근하는 오전 6시께 짐들을 정리한 뒤 나가기 때문에 다른 소유주들은 두 사람의 존재를 모르고 지냈다.

정 씨는 A 씨와 B 씨를 '멋쟁이'라고 불렀다. 정 씨는 "지하 1층의 가게가 문을 닫고 나면 외풍을 다 막아준다. 지하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며 "아낀 돈으로 선글라스를 끼고 목욕탕에 다니며 옷도 다 브랜드 옷을 입는다"고 했다.

정 씨는 경찰에 총 7차례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퇴거 조치를 내렸지만 이들은 당시에만 잠시 자취를 감췄다가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악순환이 반복되자 정 씨는 지쳐서 신고를 포기했다. 하지만 지난해 관리비 폭탄을 맞으면서 다른 상가 소유주들에게 알리고 공론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건물 2층 상가 소유주 김모 씨도 불편을 호소했다. 김 씨는 "건물에 계속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몰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임차인들이 관리비로 구입하는 물품은 물론이고 전기, 물 등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밤에 계단을 통해 지하로 가는 경우 깜짝 놀라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A 씨와 B 씨는 건물에 있는 교회 측 허락을 받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교회 측은 "건물이 서울역과 가까이 있어 저녁이나 밤이 되면 다양한 형태의 노숙인들이 빈 건물을 찾아온다"며 "허락한 적은 없지만 A씨와 B 씨 덕분에 다른 노숙인들을 막아주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한 적 있다"고 해명했다.

결국 정 씨 등은 지난 8일 지하 2층 비상계단에 '불법점유자에 대한 퇴거명령' 공지를 부착하고 지난달 15일까지 짐을 비울 것을 요구했다. A 씨와 B 씨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퇴거불응 혐의로 고소했다.

bsom1@tf.co.kr

underwater@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