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작업 일환으로 삼성물산 가치를 저평가하려 했다는 정황 증거가 1일 법정에서 제시됐다. /이동률 기자 |
전 삼성증권 기업금융팀장 마지막 증인신문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작업 일환으로 삼성물산 가치를 저평가하려 했다는 정황을 법정에서 공개했다. 삼성물산 가치를 "'down'(다운) 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이메일이다.
검찰은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관계자 11명의 속행 공판에서 당시 삼성증권 직원 이모 씨의 이메일을 공개했다.
2015년 5월 이 씨가 같은 회사 기업금융팀장이었던 한모 씨에게 보낸 메일에는 '안진이 제일모직 가치는 17·18조로 맞췄는데 삼성물산 가치를 3조 다운시키지 못하고 있다. 잠시 뒤 미팅에서 확정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안진은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이다. 삼성 측은 합병을 앞두고 안진에 삼성물산의 기업 평가를 의뢰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최대 주주였던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 비율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물산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의심한다. 이를 위해 안진에 삼성물산 가치를 낮게 평가한 보고서를 생산하도록 압박했다는 것이다.
이날 검찰은 증인으로 출석한 한 씨에게 "제일모직에 의뢰받은양 '맞춰놨다', '삼성물산 3조 다운' 등의 표현을 사용한 건 부적절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앞서 한 씨는 '두 계열사 합병 관련 업무를 객관적·중립적으로 처리해왔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메일 내용은 제일모직 가치를 부풀리는 취지로 읽힌다는 지적이었다.
한 씨는 "저렇게 표현한 건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상황을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검찰은 "안진이 삼성물산 가치 평가를 3조 낮춰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으로만 해석된다"며 "제일모직은 17·18조로 맞췄으니 잘된 거고, 삼성물산 가치는 3조 더 다운시켜야 한다는 식으로 (평가를 의뢰한) 회계법인에 숫자까지 거론하는 일이 있냐"라고 캐물었다. 한 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한 것이라고 거듭 일관했다.
검찰의 추궁에 변호인은 '메일 자체가 이 씨가 보낸 건데 한 씨에게 묻는 건 부적절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검찰은 "(변호인 이의가) 진짜 부적절하다. 변호사님, 이건 아니다"라며 받아쳐 법정에 소란이 일기도 했다.
재판부는 한 씨가 메일 수신자인 점을 들어 검찰 신문을 이어가도록 지휘했다. 다시 시작된 신문에서 검찰은 제일모직이 또 다른 회계법인 삼정 KPMG에 의뢰해 받은 합병 비율 검토보고서 초안을 안진에 제공했다는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다. 그러면서 "상대 회사의 평가보고서를 참고하게 하는 건 객관적이라 볼 수 있냐"고 물었다. 한 씨는 "공유되지 않았으면 더 좋은 상황이겠지만 그런 보고서는 협의용으로 공유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유됐더라도 각 회계법인은 독립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검찰은 문제의 메일을 다시 언급하며 "(자료를 받은) 안진이 제일모직 가치를 17·18조로 맞춰놨다거나 삼성물산 가치를 다운시켜야 한다는 건 단순 공유가 아니다. 증인 말과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한 씨는 "(메일을) 왜 저렇게 썼는지 모르겠지만 3조 정도 '갭'(gap)이 있다고 말하는 상황이지 무조건 맞춰야 한다는 목적은 없었다. 저희가 어떤 목적을 갖고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자문하거나 그러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 부회장 등의 공판은 8일 오전 10시 이어진다. 다음 공판부터는 이날 제시된 메일을 작성한 이 씨가 증인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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