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김아름 기자] 1999년 5월 20일 대구 효목동의 한 골목길에서 잔혹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 남성이 길을 지나던 김태완군(당시 6세)에게 황산을 뿌리고 달아난 것. 김군은 온몸에 3도 화상을 입고 시력을 잃은 채 고통스러워하다 사건 발생 49일 뒤인 7월 8일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인면수심의 범인은 지금까지도 잡히지 않고 있다. 사회적인 관심이 줄어든 사이 이 사건의 공소시효도 7월 7일로 끝났다. <더팩트>는 황산테러로 소중한 아들을 잃은 故김태완군의 어머니 박정숙씨의 현재 심경을 들었다.
◆공소시효가 끝났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절대로 끝나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 해도 내게 이 사건은 영원하다.
9월 16일 고소인 신분으로 첫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 이모씨는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현재 공소시효 90일 연장을 신청한 상태다. 국민들은 시효가 90일 미뤄져 곧 사건이 해결되리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공소시효 재정신청을 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해 아직 공소시효가 끝난 게 아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재정신청에 재판부는 어떤 입장이었나. 증거자료는 뭘 제출했나
재판부가 재정신청을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태완이 사건이 워낙 중요하다보니 최대한 신경쓰겠다고 말하더라.
경찰의 부실한 초동 수사로 사건 해결을 제대로 하지 못해 15년을 고통받은 점에 대해선 미안하다고 말했다.
과거 방영된 PD수첩과 추척 60분 보도 내용, 경찰이 무시하고 넘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참고 자료를 주로 냈다.
하지만 재판부가 이를 읽더니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태완이를 처음 발견했을 때 상황을 묻고는 법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하더라.
그러나 만약 범인을 처벌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해달라고 했다.
지금 분위기로는 태완이 사건이 올해를 넘길 듯 싶다.
◆공소시효 정지가 확정됐을 심정은
지금도 그 당시 상황을 잊을 수 없다. 7월 4일 금요일 오후 5시 넘어 재정신청이 떨어졌다.고소가 기각 당해 재정신청을 해야 하는데 7월 7일이 공소시효 만료일이었다.
당일 재정신청을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공소시효가 끝난 것이었다. 그런데 급하게 낸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가까스로 공소시효를 하루 앞두고 정지시킬 수 있었다.
재정신청을 하러 법원을 뛰어다닐 때 형사나 법정에서 전부 ‘무리다’, ‘힘들다’고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태완이가 하늘에거 도왔다고 생각한다.
법원 앞에서 시위 할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멍했다.태완이 아빠는 마음이 아팠다고 하더라.
만약 재판부가 재정신청을 허가하지 않아 공소시효가 끝났다면 절망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거다.
◆재수사 요청 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나
재작년 11월 28일 검찰에 재수사 요청을 했을 때 경찰에 수사 지시를 했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이 모든 수사자료를 갖고 있어 우리는 지시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동부서 담당 형사에게 사건과 용의자 무혐의에 대한 의문점을 얘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7월 3일 검찰에 가서 기소 유무를 물었더니 아직 수사 보고가 올라오지 않아 할 게 없다고 답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 경찰에 물어보니 전화로 보고했다고 둘러대더라.
전화 보고 내용은 태완이 진술 분석 결과다. 이게 90쪽 분량인데 당시 내가 태완이에게 유도질문을 했다고 했으나 사실이 아니라는 전문가 의견이 담긴 내용이다.
경찰이 이런 중요한 증거를 별 거 아니라며 전화 보고했다니 황당하다. 화가 나 항의했더니 그제서야 경찰이 검찰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경찰의 책임이 크다. 태완이 사건은 지난해 10월~ 11월까지도 사건번호가 없었다. 경찰이 이 사건을 상해치사로 치부해 처리하지 않은 탓이다.
◆사건 이후 유력 용의자 이모씨를 본 적 있나?
이씨는 사건 이후 가게를 팔려다 잘 안되자 몇 달 뒤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이사를 갔다.
그 뒤 2~3년에 한 번씩 동네에 나타나 볼 수 있었다. 내 눈에만 띈 것도 4번이다. 사건 현장 주변 안경점에 와서 안경을 맞추고 가는데 왜 그렇게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웃 말로는 사건이 발생 뒤 이씨 행동이 이상하다고 하더라.
◆경찰 수사의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부실한 초동수사다.
당시 경찰은 수사 본부를 이씨 가게에 설치했다. 그는 경찰에게 직접 '우리 집에서 수사 회의를 하라'며 장소까지 제공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는 상황에 왜 하필 그 사람 집에서 9일 이상 수사 회의를 했는지 모르겠다.
이씨가 수사 진행 상황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점은 지금도 의문이다.
그리고 황산 묻은 신발은 사건 발생 4개월이 지난 9월에야 제출됐다.
그런데 당시 경찰은 갈색 구두에서 나온 황산 반응이 옷과 신발이 뭉친 것이라 증거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황산이 상대적으로 적게 묻은 옷은 6월에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경찰은 공소시효를 며칠 앞두고 수사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경찰의 재수사도 믿기 어렵다.
재판부의 현명하고 정확한 판단을 기다릴 뿐이다.
◆태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진실을 밝힌다고 태완이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다만 그 어린 것이 왜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는지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나. 엄마는 절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미안하기도 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태완이에게 ‘다시 골목길로 가보자’며 당시 기억을 수십 번 물어본 게 마음에 걸린다. 가슴이 먹먹하다.
세월은 덧없이 흐른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1999년 당시 태완이를 맘 한 켠에 품고 산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해, 태완아. 오늘도 나는 이 말을 하늘 높이 목청껏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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