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인천=김아름 기자] 내 아이가 매일 오가는 거리에 선정적인 문구와 아찔한 옷차림의 여성들이 나와 있다면 어떨까.
정부에선 청소년 유해환경 차단을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이들 유흥업소는 법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학교와 주택가까지 침입해 영업 중이다. 학교 정문 200m로 제한하고 있는 학교보건법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다보니 아이들은 유흥업소의 선정적인 선간판과 성인 인쇄물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팩트>는 오는 19일 40억 아시아인들의 축제가 열리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둔 인천의 유흥가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10일과 11일 이틀 간 오후 시간대 인천시 계양구 경인교대역 주변 유흥업소와 모텔 밀집지역을 집중 취재했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려앉자 모텔과 방석집, 스텐드 바 등 유흥업소가 들어선 건물에 화려한 네온사인이 켜지며 어둠을 밝혔다. 이어 굳게 닫혔던 녹슨 철문이 하나둘 열리기 시작하며 밤 문화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길거리엔 '장소 선택 후 연락 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속옷만 입은 여성의 사진이 실린 전단지가 뿌려지기 시작했으며 건물마다 '아가씨 항시 대기', '스트립 쇼', '만져도 2만 5000원, 안 만져도 2만 5000원' 등 다소 선정적이고 얼굴 화끈한 문구들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일렬로 늘어선 단층 건물들에 붉은 조명이 들어오며 그 아래로 연령대를 가늠할 수 없는 여성들이 나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 여성들은 늘 있는 일인 양 지나가는 남녀노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짧은 치마 등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화장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호객 행위는커녕 심드렁한 표정으로 굳게 입을 다물고는 가게 앞을 지나가는 뭇 남성들을 훑어볼 뿐이었으며 앞을 지나치는 남성들 역시 술에 취해 주변을 기웃거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느 한 명 관심을 두거나 문턱을 넘지 않았다.
더욱이 이곳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초등학교 자녀의 손을 꼭 잡은 부모는 물론이고 20대 젊은 연인, 교복을 입은 학생, 주부 등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환경에 익숙한 듯 당황하거나 놀라는 기색 없이 빠른 걸음으로 앞을 지나칠 뿐이었다.

한 초등학교 남자 아이는 힘껏 자전거 페달을 밟고는 빠르게 현장을 지나쳐 갔다. 또 다른 여자 어린이 역시 작은 발로 종종걸음을 하며 이곳 앞을 지나쳤다.
낯 뜨거운 현장에서 황급히 자리를 옮기기는 성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20대 젊은 연인은 건물 앞 여성들을 보자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부리나케 현장을 피했다.
이들은 취재진에게 "학교 때문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데 아침에야 그렇다고 하지만 오후에 집으로 귀가할 때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며 "관심을 두지 않으면 상관없을 텐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노골적으로 쳐다볼 때면 지은 죄 없이 움추려 든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환경이 익숙한 듯 교복을 입은 한 고등학교 남학생은 버젓이 이 방석집 앞에 앉아 친구와 전화통화를 나누고 있었으며 또 다른 남학생 무리도 연신 웃어대며 현장 앞을 태연히 지나쳤다.
학교와 주택가 주변에 이러한 시설이 즐비하다 보니 이를 우려하는 주민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 주변에서 20년째 사는 주부 양수정(55) 씨는 "과거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없어졌지만 말도 안 된다. 성인이야 뭐 심각하게 생각 안 하고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학교 주변인 만큼 아이들도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간혹 이 앞을 지나칠 때 아이들을 볼 때면 늘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42) 씨도 "먹고 살기 위해 이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고 있지만, 어이가 없는 게 사실이다. 이곳 주변엔 주택은 물론이고 초등학교도 있는데 200m 안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당히 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버젓이 이런 게 운영되고 있다는 게 웃지 못할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주민 정모(54) 씨 역시 "규제가 학교 정문 200m 안에만 하지 않으면 되니 이걸 이용하는 업주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며 같은 목소리를 냈다.

지역 주민의 증언대로 이 지역 주변엔 약 400m 지점, 성인 걸음으로 불과 4분 정도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가 있었으며 근처엔 학원 등이 들어서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 곳 앞을 지나며 등·하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특히 현장에서 약 2분 정도 떨어진 곳엔 파출소 지구대가 있어 혹시 일대 순찰을 도는 모습을 볼 수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으나 취재진이 현장에 있던 2시간 동안 순찰차는 볼 수없었다. 그러나 해당 지구대는 취재진에게 "하루 20~30차례 순찰을 돈다"고 말했다.
이곳뿐 아니라 서울 도봉구 창동과 모란시장 골목 역시 단란주점과 방석집, 모텔 등 유흥업소가 버젓이 운영하면서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모란시장 골목 앞엔 모텔이 즐비해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이 매일 이 광경을 볼 수밖에 없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대학생 윤모(20) 씨는 "어렷을 적부터 모란시장 근처를 지나치며 학교들 다녔다.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 등을 볼 때면 민망할 떄가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호기심에 가끔 볼 때는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교 정문으로부터 직선거리로 50m 지점(절대정화구역)까지는 음주·가무가 허용되는 유흥업소와 모텔 등의 숙박시설, 당구장·PC방 등이 제한된다. 하지만 반경 200m 지점(상대정화구역)은 심의만 거치면 어떠한 업소건 들어서는데 제약이 없다.
특히 업소가 들어서려는 지점이 거주지역이 아닌 상업지역으로 분류돼 있으면 학교와 근접해 있어도 현행법으로 제한할 근거가 없는 상태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12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현재 교육청에서 할 수있는 방법은 법에 명시된 사항만 따르는 것 뿐"이라며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200m 지점 내에만 관리감독이 가능하며 학생들이 유해 전단지 등을 들고 다니는 것을 원천 봉쇄할 방안은 현재로써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또 200m 이내에서 발생하는 것들에 대해선 학교장의 책임도 있는 만큼 관련 학교장과 교사들이 나서서 주변 정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며 교육청에선 이러한 신고가 접수됐을 때 이를 대신 고발 조치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오후 7시께 부평구 문화의 거리에선 인천시 주최로 2014 인천아시안게임 대비 시민참여 붐 조성을 위한 '청소년 유해환경 범시민 정화 캠페인'이 진행됐다. 캠페인에서는 청소년 유해환경에 대한 보호 결의문 낭독과 시민과 함께하는 청소년 보호 구호제창, 청소년 활동지역인 부평 문화의거리, 테마거리 길거리 캠페인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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