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축구는 본래 ‘아름다운 게임(The Beautiful Game)’이다. 수만 명이 운집한 경기장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골망을 흔드는 순간의 전율은 우리네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최고의 청량제였다. 하지만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불과 50일 앞둔 지금, 대한민국 축구는 국민에게 즐거움이 아닌 스트레스와 고통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법원이 내린 판결은 그 고통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차갑게 증명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3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징계 요구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위르겐 클린스만과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드러난 절차적 부당함과 27건에 달하는 위법·부당 업무 처리가 사법부의 판단으로 확정된 것이다. 법원은 협회의 독단적 운영이 시스템을 얼마나 무력화했는지를 분명히 짚었다.
현대 축구의 철학적 토대를 세운 요한 크루이프는 "축구는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다. 즐거움이 없는 축구는 영혼이 없는 몸과 같다"고 말했다. 승리도 중요하고 월드컵 성적도 소중하지만, 그 과정이 정당하지 못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그 승리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 축구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전술이나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라, 무너진 행정 시스템을 바로잡고 팬들과 다시 소통할 수 있는 ‘정직한 리더십’이다.
공자는 일찍이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 하여,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고 경계했다. 이는 오늘날의 스포츠 행정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만고의 진리다. 축구협회가 법원의 판결을 두고 ‘이행 강제성이 없다’거나 ‘재량권의 문제’라며 법리적 해석 뒤에 숨으려 한다면, 이는 팬들의 마지막 신뢰마저 저버리는 일이다. 신뢰가 무너진 리더십 아래에서 선수들이 온전히 경기에 집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법원은 판결을 통해 징계 요구가 정당함을 선포하면서도, 그 집행의 공은 다시 협회로 넘겼다. 이는 협회 스스로가 잘못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일을 저지른 사람이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몽규 회장과 집행부는 이번 판결을 겸허히 수용하고, 낡은 독단과 관습에서 벗어나 돌아선 팬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혁신적 조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단순히 월드컵을 무사히 치르는 것만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월드컵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 진정 팬들을 위한 길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축구의 진정한 힘은 90분간의 경기 결과가 아니라, 그 경기를 기다리는 설렘과 끝난 뒤의 개운한 감동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축구를 다시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협회는 행정의 투명성을 회복하고, 감독과 선수들은 오직 그라운드에서의 열정에만 집중하며, 팬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태극전사들을 응원할 수 있는 ‘축구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50일 뒤 북중미 하늘 아래서 우리가 마주할 장면이 냉소가 아닌 환희가 되기를, 축구가 다시 우리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축구는 고단한 삶에 지친 서민들의 유일한 낙이자 온 국민을 하나로 묶는 마법이었다. 월드컵 개막까지 남은 50일은 누군가를 심판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진심 어린 사과와 쇄신을 통해 팬들의 마음을 돌려놓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는 법정의 판결문이 아니라, 팬들의 신뢰를 다시 얻으려는 협회의 진정성 있는 행보에서 시작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