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바야흐로 본격적인 ‘셰플로이(Scheffler+McIlroy)’ 시대다. 시대를 대표하며 세계 골프를 양분하고 있는 두 거인이 올해 마스터스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스코어는 단 1타 차. 숫자만 보면 숨 막히는 접전이었지만, 이 승부의 본질은 단순한 결과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로리 맥길로이는 36홀까지 6타 차 선두라는 압도적인 초반 흐름을 바탕으로 3, 4라운드의 위기를 극복하고 최종합계 12언더파로 12일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17년 만에 마스터스를 제패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던 그는 올해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하며 잭 니클러스(1965~66년), 닉 팔도(1989~90년), 타이거 우즈(2001~02년)에 이어 역대 네 번째 2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반면 스코티 셰플러는 출발이 늦었다. 올시즌 들어 느닷없이 찾아온 초반 부진 징크스를 떨치지 못한 채 2라운드까지 이븐파에 그치며 선두와 크게 벌어졌지만, 주말 이틀 동안 무려 11타를 줄이며 단독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특히 3, 4라운드 노보기 플레이는 1942년 이후 84년 만의 기록이었고, 2라운드 후반부터 따지면 무려 39홀 연속 보기 없는 경기를 펼치며 압도적인 경기력을 과시했다.
결국 이번 마스터스는 ‘초반 몰아친 매킬로이’와 ‘후반 폭발한 셰플러’가 만들어낸 1타 차 승부로 정리된다. 그러나 이 스코어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이번 대회는 두 거인의 정면 충돌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간대의 지배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맥길로이의 내면 싸움이었다. 그는 상대보다 먼저 자신과 싸워야 했다. 2라운드를 6타차 선두라는 역대급 격차로 마무리 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소위 '그 분이 오셨다'는 의미의 ‘in the zone’, ‘flow’를 언급할 만큼 완벽한 경기력을 보였지만, 오거스타는 결코 쉽게 승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54홀이 끝났을 때 6타 차 리드는 바닷물에 씻긴 모래성 처럼 사라졌고,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2011년의 기억이 스쳐갔을 가능성이 크다. 4타 차 선두로 맞은 최종 라운드에서 10번홀 트리플 보기 등으로 무너져 공동 15위로 마감했던 그날, 그리고 이후 14년간 이어졌던 긴 침묵의 시간들.
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 또 다시 역전패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시선. 그 압박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것이었을 터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최종 라운드 전반 더블보기를 포함한 흔들림 속에서도 흐름은 끊기지 않았다. 오히려 나인이 끝나기 전 균형을 되찾았고, ‘아멘 코너’에서 2타를 더 줄이며 다시 주도권을 잡았다. 과거라면 무너졌을 상황에서, 그는 버텨냈다. 그것이 이번 우승의 본질이다.
셰플러 역시 인상적이었다. 12타 차 열세에서 시작해 1타 차까지 따라붙은 과정은 단순한 추격이 아니라, 지배력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 장면은 2022년 마스터스와 묘한 데자뷰다. 당시 셰플러는 이틀간 8언더파를 몰아치며 올해의 맥길로이 처럼 초반부터 우승을 굳혔고, 맥길로이는 역시 올해의 셰플러 처럼 처음 이틀간 2오버파로 부진하다 마지막 날 무려 8언더파를 몰아쳐 2위까지 치솟은 바 있다. 올해는 그 역할이 정확히 뒤바뀌었지만 데칼코마니처럼 흡사한 결과다.

이제 세계 골프는 분명한 양강 체제에 들어섰다.
비록 금년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에서 둘간의 정면 충돌은 없었을지언정 맥길로이와 셰플러가 보여준 각종 지표는 공포스러울 만치 압도적이다.
최근 5개 메이저 중 4개를 두 선수가 나눠 가졌다. 맥길로이는 마스터스를 2연패했고 셰플러는 지난해 PGA챔피언십과 디 오픈 챔피언이다. 또한 이들은 2022년 이후 열린 17개 메이저에서 12번이나 우승 또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점유율이 70%를 넘는다. 톱10 진입 역시 셰플러 13회, 매킬로이 11회로, 이들은 리더보드 첫 페이지의 단골손님들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 메이저 무대 자체를 지배하는 구조다.
셰플러는 준우승 후 가진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로리와 경쟁을 해왔고 이렇게 많은 대회에서 우승하려면 엄청난 회복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매킬로이에 대한 존중을 드러냈다. 또한 "로리는 최근 두 번의 마스터스를 우승했고 나는 작년에 메이저를 몇 개 가져갔다. 메이저 대회는 때때로 최고의 경기력을 끌어낸다"고 덧붙였다. 이는 서로의 존재가 서로를 메이저 대회에 최적화된 선수로 단련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두 선수의 관계는 단순한 라이벌이 아니라 서로를 더 강하게 만드는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의미다.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자는 6명, 마스터스 2연패는 4명, 메이저 6승을 달성한 유럽 선수는 단 2명. 이 세 그룹을 모두 관통하는 이름이 바로 맥길로이다.
그리고 셰플러는 또 다른 길에서 이미 역사를 쓰고 있다. 2022년 이후 4시즌 반도 채 안되는 기간에 20승, 세계랭킹 1위는 3년 가까운 장기 집권, 그리고 최근 두 시즌 연속 6승 이상이라는 기록은 타이거 우즈 이후 가장 강력한 지배력이다.
이번 마스터스는 끝이 아니고 본격적인 경쟁을 의미한다.
이제 한달 후 셰플러가 시즌 두번째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 타이틀 방어에 나설 때를 시작으로 매 메이저대회 마다 둘은 정면 승부를 펼칠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에 팬들의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지금은 ‘셰플로이 시대’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