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올 시즌 PGA투어 두 번째 시그니처 이벤트인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이 막을 내렸다. 지난해 LA 지역 대형 산불의 여파로 2년 만에 다시 리비에라CC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제이콥 브리지먼의 생애 첫 우승과 스코티 셰플러의 18경기 연속 톱10 기록 중단이라는 화제를 남겼다.
그러나 필자의 눈길을 더 사로잡은 것은 경기 결과가 아니라 대회의 위상이었다. 제네시스 대회가 이제는 PGA투어를 대표하는 간판급 대회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직접 참석해 호스트인 타이거 우즈와 함께 2030년까지 타이틀 스폰서 연장을 공식 발표했고, 대회 내내 리비에라의 역사와 기록, 서사가 조명됐다.
현재 PGA투어에는 2개의 한국 기업이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해 투어 발전과 함께 한국골프 및 문화의 우수성 등을 제고하고 있다. 이번 제네시스 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즈음해 현대차와 CJ그룹이 대회를 창설하고 발전시켜온 과정 등을 되짚어 본다.

1.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 전통을 흡수한 프리미엄 전략
제네시스 대회는 8개의 시그니처 이벤트 가운데 하나이며, 레전드 플레이어가 호스트를 맡는 세 대회 중 하나다.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더 메모리얼 토너먼트(잭 니클라우스가 호스트)와 함께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우승 상금 비율이 20%로 일반의 18% 보다 더 높고, 2라운드 후 컷을 적용(공동 50위 및 선두와 10타 이내)하는 등 차별화된 운영 방식을 유지한다. 메이저를 제외하면 최상위급 대회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렇듯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은 5개의 메이저(급) 대회를 제외하면 PGA투어 중 거의 최고의 대회임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현대차의 PGA 마케팅은 사실 10년 넘게 축적된 ‘빌드업’의 결과다. 출발은 2011년 하와이 시즌 개막전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였다. SBS가 중계권 확보 과정에서 떠안았던 대회에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하며 '현대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를 개최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5년간 대회를 지속해 온 현대차는 2017년 대전환을 꾀한다. 장소를 본토로 옮기고, 프리미엄 브랜드 ‘Genesis’를 전면에 배치했다. 노던 트러스트 오픈의 뒤를 이어 리비에라와 손을 잡으며 ‘Genesis Open’으로 새 출발했다. 이 대회는 1926년 LA오픈으로 시작해 닛산 오픈, 노던 트러스트 오픈을 거친 ‘100년 대회’다. 리비에라는 1973년 이후 50년 넘게 같은 코스에서 투어를 개최해온 상징적 장소다. 잭 니클라우스와 타이거 우즈가 프로 데뷔전을 치렀지만 우승은 하지 못한 코스라는 서사까지 더해진다.
2020년 타이거가 호스트를 맡으며 인비테이셔널로 승격됐고, 2022년 LIV골프의 출범에 따른 골프 지형의 대변화에 따라 2024년 시그니처 체제에 편입됐다. 전통과 서사를 흡수해 제네시스라는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명품 대회’로 완성한 것이다.

2. 더 CJ컵 – 문화를 싣고 본토 심장부로
더 CJ컵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회 중 하나인 바이런 넬슨 대회와 결합, ‘더 CJ컵 바이런 넬슨’이란 타이틀로 오는 2033년 까지 열린다. 2024년부터 10년간이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CJ컵은 ‘한국에서 개최되는 유일한 PGA투어’ 컨셉에서 ‘미국 전통 대회와의 결합’ 모델로 전략적 변화를 꾀해 성공한 케이스다.
CJ컵은 2017년 제주 나인브릿지에서 출범했다. 국내에서 개최된 최초 PGA투어 정규대회다. 국내 남자골프의 발전을 꾀하고 비비고 브랜드와 나인브릿지골프장의 세계화 등을 기치로 창설했고, 10년의 장기 계약에다 당시만해도 파격적인 1천만달러에 가까운 상금을 내걸었다. 컷오프가 없고 WGC시리즈인 HSBC챔피언스(중국 상해 개최)로 가는 길목이라 일정상의 이점도 안고 있어 단숨에 주목받는 1급 대회로 평가됐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제주를 찾았고, 한국 골프는 한단계 도약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저스틴 토머스와 브룩스 켑카 등 세계 랭킹 1위 선수들이 차례로 우승컵을 들어 올려 더욱 대회가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후 3년간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개최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2022년 LIV골프의 출범으로 PGA투어의 지형에 일대 변혁이 오면서 더 이상의 국내 개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시즌제의 변화로 일정이 10월에 머무를 수도 없었다. 시그니처로 가는 길은 여러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CJ는 이 같은 거대한 암초를 지혜롭게 헤쳐 냈다. 아예 대회를 본토로 옮기고 전통 대회와의 결합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전통과 권위를 등에 업고 CJ와 ‘K-푸드’의 색깔을 입힘으로써 관계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국내 선수들에게는 PGA투어로 향하는 통로를 제공하고 전 세계 갤러리들에게는 한국의 멋과 맛을 제대로 소비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 대회에서는 스코티 셰플러가 무려 31언더파를 몰아치며 우승해 더욱 대회가 풍성하게 치러졌다.
제네시스는 전통을 흡수해 프리미엄 전략에 승부를 걸었고 CJ는 골프에 문화를 얹어 본토를 공략했다. 두 전략은 서로 달랐지만 보완적이다. 제네시스가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다면, CJ는 실질적인 진출 통로를 넓혔다. 두 기업의 도전이 마케팅을 넘어 한국 골프의 외연을 넓히고 세계와 연결하는 단단한 교량이 됐다. 이를 통해 선수들은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받았고, 값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제 선수들이 결과로 입증해야 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