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한국 남자골프-해외 진출 방식 새바람
국내 남자골프는 해외 투어 진출과 관련해 오랜 기간 비교적 단순한 패턴을 보여왔다. KPGA투어에서 활동하며 기량을 쌓은 뒤 일본의 JGTO나 PGA 2부투어, 혹은 퀄리파잉 스쿨을 거쳐 최종적으로 PGA투어에 입성하는 방식이었다.
이 경로는 이미 충분히 검증됐다. 실제로 다수의 성공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맏형인 최경주를 비롯해 배상문, 김시우, 임성재 등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계 최고 무대에 입성했다. 이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한민국 골프의 경쟁력을 알리는 동시에 개인의 목표 또한 성취해 냈다. 이 때문에 한국 골프에 있어 해외 진출의 최종 목적지는 곧 PGA투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올 시즌 들어 국제 무대에서의 한국 남자골프는 종래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전개되고 있다. 비슷한 세대의 선수들이 서로 다른 투어에 각자의 방식으로 도전장을 던진 뒤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PGA투어에는 김성현과 이승택, 그리고 DP월드투어에는 이정환이 그 주인공들이다.
우선 이들은 상급 투어에 진입하는 방식부터 서로 달랐다. 김성현은 2020년 KPGA선수권, 2021년 JPGA선수권 등 한·일 양국의 메이저 대회를 석권한 뒤 미국 진출을 결행했다. 퀄리파잉 스쿨을 통해 2022년 콘페리투어에 입성했고, 단 1년 만에 PGA투어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2년간 활동했으나 시드 유지에는 실패했고, 다시 콘페리투어를 거쳐 올 시즌 투어에 복귀했다.

이승택 역시 콘페리투어 성적을 통해 PGA투어에 입성했다는 점에서는 김성현과 같지만 과정은 달랐다. 국내 투어 제네시스 포인트 상위자 혜택으로 Q스쿨 1차전을 면제받은 뒤 2차전과 최종전을 통과했고, 지난해 콘페리투어를 당당히 14위로 마무리하며 세계 최고 무대에 설 자격을 획득했다.
이정환의 경우는 결이 다르다. 그는 지난해 KPGA와 DP월드투어가 공동 인증한 제네시스 챔피언십 우승을 통해 올해 DP월드투어 풀시드를 확보했다. 제한적 출전이 아닌, 풀시드 자격으로 유럽 무대에 입성한 것이다.
결국 양대 투어에서 이들의 올 시즌 활약 여부는 한국 남자골프가 과연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 무대에 안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될 전망이다.
#김성현-다시 올라온 선수의 안정감
시즌 초반 흐름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김성현과 이승택은 PGA투어에서 각각 4개 대회를 소화했다. 김성현은 개막전 소니오픈을 시작으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파머스 인슈어런스, WM피닉스오픈까지 네 차례 모두 컷을 통과했다. 특히 앞선 두 차례 대회에서는 공동 13위와 공동 18위를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안정감을 보였다. 김성현은 루키가 아니다. 실패와 복귀를 모두 경험했다. 투어 환경에 대한 학습이 끝났고, 무엇이 부족했는지도 몸으로 체득했다. 이러한 경험이 시즌 초반 안정된 경기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 시즌 그의 관건은 폭발력보다 안정성이다. 컷 통과를 꾸준히 이어가며 중위권 포인트를 유지한다면 빠른 시간 내 안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승택-루키에게 주어진 현실적 과제
반면 이승택은 전형적인 루키다. 콘페리투어와는 차원이 다른 경쟁 강도, 낯선 코스, 이동 부담까지 모든 것이 새롭다. 시즌 초반 투어의 ‘매운맛’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 첫 3개 대회 연속 컷 탈락이라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러나 WM피닉스오픈에서 턱걸이로 컷을 통과한 뒤 공동 48위를 기록하며 데뷔 네 번째 대회 만에 첫 상금과 포인트를 획득했다.
이승택에게 2026시즌은 도전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깝다. 컷을 통과하고 하위권 포인트라도 쌓는 과정 자체가 성공이다. 시즌 종료 시점에 다음 시즌 출전권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이정환-새로운 경로를 개척하는 도전자
이정환 역시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투어에 합류한 그는 현재까지 7개 대회에 출전해 6차례 컷을 통과했다. 데뷔전이었던 네드뱅크 골프 챌린지에서 공동 23위를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고, 두바이 인비테이셔널에서도 공동 33위에 오르는 등 안정적인 적응 과정을 밟고 있다.
그동안 DP월드투어는 KPGA 출신 선수들이 간헐적으로 도전했던 무대였다. 그러나 이정환처럼 확실한 풀시드를 확보한 사례는 드물었다. 그의 시즌은 개인 커리어 확장을 넘어 한국 골프의 새로운 경로 실험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시급한 것은 우승이 아니라 정착이다. 컷 통과를 반복하고 톱30, 톱20을 쌓아 투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단계에 도달한다면 그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결국 세 선수의 시즌은 단순한 개인 성적표를 넘어선다. 김성현은 실패 이후 다시 돌아와 성공할 수 있다는 현실적 희망을 보여주는 존재다. 이승택은 국내 투어와 PGA투어 협력 프로그램이 얼마나 실질적 연결고리로 기능하는지를 증명할 시험에 들었다. 그리고 이정환은 선배들이 넘지 못했던 ‘유럽 정착’의 벽을 돌파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만약 이들의 도전이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로 이어진다면, 한국 남자골프의 해외 진출 지도는 한층 입체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미국이라는 단일 목표를 넘어, 복귀와 재도전, 그리고 유럽이라는 또 하나의 무대까지 선택지가 넓어지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2026시즌은 한국 남자골프가 세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고 확장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