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석 ‘방출 충격’, ML 성공 확률 0%에 도전하는 사람들 [김대호의 야구생각]
  • 김대호 기자
  • 입력: 2025.08.12 00:00 / 수정: 2025.08.12 00:00
고교졸업 뒤 ML 진출해 성공사례 한 명도 없어
허황된 '아메리칸 드림'에서 깨어나야

이 자신만만한 모습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심준석이 2023년 1월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한 뒤 활짝 웃고 있다. 하지만 그는 2025년 8월 5일 미국 무대에서 완전히 방출됐다. /피츠버그 파이리츠 SNS
이 자신만만한 모습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심준석이 2023년 1월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한 뒤 활짝 웃고 있다. 하지만 그는 2025년 8월 5일 미국 무대에서 완전히 방출됐다. /피츠버그 파이리츠 SNS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2012년 가을 일본 이와테현 하나마키 히가시 고등학교 3학년 오타니 쇼헤이는 메이저리그 진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시속 160km의 속구를 거침없이 던져대는 이 야심만만한 까까머리 고교생의 고집을 아무도 꺾지 못했다. 닛폰햄 파이터스는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 오타니를 1차 지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삼고초려가 시작됐다. 오타니에게 30페이지 분량의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가면 위험하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오타니의 마음을 돌린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한국의 사례였다. 닛폰햄은 2006년 이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진출한 선수들의 현황을 오타니에게 보여줬다. 이 기간 21명의 한국 선수가 미국행 비행기를 탔는데 단 한 명도 메이저리그를 밟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광주일고 3학년 투수 김성준이 텍사스 레인저스와 입단 계약을 맺은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리코스포츠에이전시
광주일고 3학년 투수 김성준이 텍사스 레인저스와 입단 계약을 맺은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심준석이 5일 미국 마이애미 말린스 산하 루키리그 FCL 말린스에서 방출됐다는 소식은 야구계에 큰 충격을 줬다. 심준석은 불과 2년 전인 2023년 1월 계약금 75만 달러에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입단한 대형 투수다. 덕수고 시절 ‘제2의 박찬호’로 불렸으며 동기생 김서현(서울고·한화)과 윤영철(충암고·KIA)을 압도했다. "3년 안에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르겠다"고 큰소리친 게 엊그제 같은데 2년 반 만에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윤진 덕수고 감독이 당시 심준석의 미국행을 극구 만류했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지금까지 고등학교 졸업 뒤 미국 프로 구단과 계약한 선수는 모두 57명이다. 이 가운데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른 선수는 7명이다. 야수는 추신수 최지만 박효준 배지환 등 4명이며, 투수는 백차승 봉중근 류제국 등 3명이다. 투수로 좁혀 살펴보면 이들 3명도 메이저리그에서 공은 던졌지만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간 백차승은 메이저에서 4시즌 동안 16승을 거뒀다. 그나마 성과라 할 만하지만 병역 기피와 국적 변경 등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봉중근은 7승 1세이브 2홀드 4패가 통산 성적이며, 류제국은 단 1승을 올린 게 전부다. 일반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류제국이 2006년 메이저리그에서 투구한 이후 지금까지 20년째 고졸 출신 메이저리그 투수는 없다.

이게 엄연한 현실인데도 아까운 청춘들이 미국으로 가고 있다. 현재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 꿈을 키우고 있는 투수는 2명이다. 워싱턴 내셔널스 산하 더블A에서 뛰고 있는 최현일과 LA 다저스 산하 싱글A에 소속돼 있는 장현석이다. 최현일은 얼마 전 트리플A에서 더블A로 강등돼 위기를 맞고 있으며, 장현석은 부상과 고질적 제구력 불안에 성장이 더디다. 2025년에도 광주일고 투수 김성준이 텍사스 레인저스와 120만 달러에 계약했으며, 장충고 투수 문서준도 미국행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번 해 고교 최대어로 꼽히는 북일고 투수 박준현이 미국 진출 의지를 접고 국내에 남기로 결정한 것이 눈에 띈다.

2025년 고교 투수 랭킹 1위로 꼽히는 북일고 박준현. 전 삼성 라이온즈 박석민 아들로 잘 알려진 박준현은 메이저리그 여러 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국내 무대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한화 이글스
2025년 고교 투수 랭킹 1위로 꼽히는 북일고 박준현. 전 삼성 라이온즈 박석민 아들로 잘 알려진 박준현은 메이저리그 여러 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국내 무대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한화 이글스

이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꾸며 미국으로 가는 이유는 그 여정이 얼마나 험난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최고였으니 미국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도착과 함께 부서진다. 코치는 자신에게 조언은커녕 눈길 한 번 안준다.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던지는 또래 투수들이 즐비하다. 조급해진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부상이 닥친다. 다독여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좌절한다. 마냥 기다려 주지 않는다. 선수는 얼마든지 있다. 대략 만 23세까지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하면 짐을 싸야 한다.

그 뒤론 방황이다. 한국으로 돌아와도 2년 동안 국내 구단과 계약할 수 없다. 군대도 다녀와야 한다. 그렇게 유니폼을 벗는 게 대다수다. KBO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이대호 류현진은 이구동성으로 KBO리그를 먼저 경험하라고 조언한다. 류현진은 "무조건 뜯어 말리겠다"고 잘라 말했다. 몸과 정신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7년간 마이너 생활을 한 추신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무인도에 혼자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오타니가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을 선택하지 않은 게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 선수들과 학부모들도 잘 살폈으면 한다. 아까운 인재들이 사그라드는 게 너무도 서글프다.

daeho902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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