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승부’와 ‘승부치기’, 무엇이 더 야구의 본질을 해치나 [김대호의 야구생각]
  • 김대호 기자
  • 입력: 2025.06.24 00:00 / 수정: 2025.06.26 08:16
'무승부'는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 본질에 어긋나
KBO리그도 '승부치기' 도입해 박진감 높여야
무승부 경기 뒤 돌아서는 선수들. 두 팀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도 무승부 경기에 허탈하긴 마찬가지다. /뉴시스
'무승부' 경기 뒤 돌아서는 선수들. 두 팀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도 '무승부' 경기에 허탈하긴 마찬가지다. /뉴시스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무승부’는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의 기본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승부치기’는 야구의 순수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양립할 수 없는 두 명제 중 무엇이 정답일까. 무엇이 야구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고, 또 무엇이 야구의 본질을 지키는 것일까.

한국프로야구는 ‘무승부’를 선택했다. 연장 11회까지 승부가 나지 않으면 무승부로 처리한다. 그런데 무승부는 승률에서 제외된다. 승률로 순위를 정하는 프로야구에서 승률에 포함되지 않는 경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같은 무승부라도 승률이 높은 팀과 낮은 팀에 따라 그 비중이 다르다.

승률 5할 이상 팀은 무승부가 많은 쪽이 유리하고, 승률 5할 미만 팀은 무승부가 적은 쪽이 유리하다. 이 때문에 공평하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시즌 막판엔 각 팀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펼쳐진다.

2022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연장 10회초 승부치기에서 끝내기 3점 홈런을 날린 정은원이 기뻐하고 있다. 팬들도 열광하고 있다. /뉴시스
2022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연장 10회초 승부치기에서 끝내기 3점 홈런을 날린 정은원이 기뻐하고 있다. 팬들도 열광하고 있다. /뉴시스

메이저리그는 애당초 무승부가 없다. 밤을 새워서라도 끝장 승부를 낸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부터 ‘승부치기’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9회까지 승부가 나지 않으면 10회부터 주자를 2루에 두고 공격을 시작한다. 소모전을 줄이고 빨리 경기를 끝내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도 무승부의 비합리성을 인식하고 2008년 ‘끝장 승부제’를 도입했다. 그 해 9월 3일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잠실 경기는 연장 18회까지 혈전을 벌인 끝에 두산이 1-0으로 이겼다. 3일 오후 6시 31분에 시작된 경기는 5시간 51분 만인 4일 0시 22분에 끝났다. 이 경기 이후 도처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터졌고, 이듬해부터 무승부가 부활했다.

무승부는 팬들에게 허탈감을 준다. 11회까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되던 경기가 무승부로 막을 내리는 순간 팬들은 한숨을 내쉬며 엉덩이를 턴다. 무승부에 만족하는 팬은 없다. '무승부' 제도가 존재하는 한 연장 승부는 박진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23년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는 무승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야구에 무슨 망할 무승부냐. 지면 지고, 이기면 이기는 거지"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무승부 제도가 존재하는 한 연장 승부는 박진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팬들도 무승부 가능성이 커지면 썰물처럼 경기장을 빠져 나간다. /뉴시스
'무승부' 제도가 존재하는 한 연장 승부는 박진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팬들도 '무승부' 가능성이 커지면 썰물처럼 경기장을 빠져 나간다. /뉴시스

정용진 구단주의 의견이 반영된 건지 모르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24년부터 승부치기를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감독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시행이 백지화됐다. 10명의 감독 가운데 9명이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겉으론 야구의 본질을 해친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다.

승부치기에서 졌을 경우 받을 비난이 두려워서다. 매우 이율배반적이다. 감독들의 강한 요구로 이번 시즌부터 연장 12회가 연장 11회로 축소됐다. 투수들 체력 소모가 심하고 선수들 부상이 염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선수를 걱정하는 감독들이 승부치기는 반대한다.

2022년부터 연장 승부치기를 시행하고 있는 퓨처스리그는 10회에 끝난 경기가 80% 이상이다. 퓨처스리그뿐 아니라 올림픽과 WBC, 프리미어12 등 모든 국제대회에 승부치기가 적용된다. 우리나라 고교, 대학야구도 마찬가지다.

야구는 끝장 승부가 원칙이고 전통이다. 승패라는 결과를 얻어야 하는 게 스포츠의 본질이기도 하다. 승부치기를 거부하는 감독들 속내는 최소한 승률 하락은 하지 않겠다는 심리다. 하지만 팬들 입장에서 무승부만큼 허망한 경기가 없다. 무사에 주자가 2루에 있으면 다양한 작전을 펼칠 수 있다. 팬들에겐 또 다른 볼거리이고, 야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다. 승부치기라는 좋은 제도를 우리도 받아들일 때가 됐다. 그래서 의미 없는 ‘무승부’ 경기를 없애기 바란다.

daeho902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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