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첫 우승, 차범근 넘어 한국축구사 새 이정표 [박순규의 창]
  • 박순규 기자
  • 입력: 2025.05.23 00:00 / 수정: 2025.05.26 06:14
22일 2024~2025 UEFA 유로파리그 우승...토트넘 주장으로 생애 첫 프로 우승컵 획득
'전설' 차범근 넘어 손흥민 시대 '완성'

토트넘의 캡틴 손흥민이 22일 2024~2025 UEFA 유로파리그 우승으로 프로 입단 15년 만에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손흥민의 우승은 한국축구가 유럽 무대에서 이룬 상징적 승리이자 전설 차범근을 뛰어넘은 새 이정표로 평가된다./토트넘
토트넘의 '캡틴' 손흥민이 22일 2024~2025 UEFA 유로파리그 우승으로 프로 입단 15년 만에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손흥민의 우승은 한국축구가 유럽 무대에서 이룬 상징적 승리이자 전설 차범근을 뛰어넘은 새 이정표로 평가된다./토트넘
토트넘 캡틴 손흥민(가운데)이 22일 2024~2025 UEL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0으로 꺾고 생애 첫 프로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빌바오(스페인)=AP.뉴시스
토트넘 '캡틴' 손흥민(가운데)이 22일 2024~2025 UEL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0으로 꺾고 생애 첫 프로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빌바오(스페인)=AP.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손흥민은 강산이 한 번 반이나 바뀌는 15년의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우승 없이 달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5월 22일 새벽(한국시간), 스페인 빌바오의 산 마메스 바리아에서 펼쳐진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그 오랜 기다림 끝에 커리어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국 축구는 이날을 기점으로 또 하나의 찬란한 역사를 새겼다.

이번 우승은 단지 한 명의 선수가 트로피를 획득한 것을 넘어서, 한국 축구가 유럽 무대에서 이룬 상징적 승리이자, '전설' 차범근을 뛰어넘는 손흥민의 시대 교체 선언이라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로 실추된 대한민국 국격을 전 세계인을 상대로 조금이나마 회복하고,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고국의 팬들에게 위로의 선물을 안겼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경기 후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손흥민의 모습은 힘든 시기를 보내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됐다.

우승이 확정된 후 토트넘 동료인 로드리고 벤탄쿠르의 축하를 받고 있는 손흥민./빌바오=AP.뉴시스
우승이 확정된 후 토트넘 동료인 로드리고 벤탄쿠르의 축하를 받고 있는 손흥민./빌바오=AP.뉴시스

◆ '무관의 설움'에서 '우승의 영광'으로

손흥민은 2010년 10월 30일,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SV 소속으로 18세의 나이에 유럽 프로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레버쿠젠, 토트넘을 거치며 15시즌 동안 431경기 170골(2024년 기준)을 기록했다. 아시아 선수 최초의 EPL 득점왕(2021~2022 시즌, 23골), 프리미어리그에서 100골 이상을 기록한 유일한 아시아인이지만 그 빛나는 개인 커리어와는 달리, 우승컵만큼은 늘 먼 곳에 있었다.

그 손흥민이 32세가 된 해, 유로파리그 결승전 후반 22분 교체 투입, 23분간의 짧지만 치열한 투혼을 통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0으로 꺾고 소속팀 토트넘의 17년 만의 우승 트로피 획득에 기여했다. 눈물로 얼룩진 태극기를 허리에 두르고 주장으로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그 모습은, 말 그대로 한국 축구사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길이 기록될 것이다.

손흥민이 UEL 우승컵을 차지하면서 차범근 김동진 이호에 이어 한국인 네 번째 UEL 챔피언에 오르게 됐다. 사진은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 소속으로 두 차례 UEFA컵(UEL 전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차범근(오른쪽)./SPOTV
손흥민이 UEL 우승컵을 차지하면서 차범근 김동진 이호에 이어 한국인 네 번째 UEL 챔피언에 오르게 됐다. 사진은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 소속으로 두 차례 UEFA컵(UEL 전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차범근(오른쪽)./SPOTV

◆ 차범근을 넘은 손흥민, 한국 축구사의 ‘진짜 레전드’로

유럽에서 가장 먼저 트로피를 들어올린 한국인은 차범근 감독이다. 그는 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UEFA컵(현 UEL) 우승을 두 차례(1980, 1988) 경험하며 한국 축구의 유럽 진출 시대를 열었다. 또한 통산 98골로 아시아인 유럽리그 최다골 기록을 오래 유지했다.

그러나 손흥민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프리미어리그라는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핵심 주축 선수이자 주장으로 활약하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전례 없이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토트넘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불리며, "Heung-Min Son is Mr. Tottenham"이라는 영국 현지 팬들의 찬사를 받는 이유다. 토트넘은 우승 후 공식 홈페이지에 태극기를 몸에 두른 손흥민의 사진을 게재하며 '한국 최초로 팀을 메이저 트로피로 이끈 클럽 주장'이라고 소개했다.

차범근이 한국인 선수로서 유럽 초창기의 개척자라면, 손흥민은 세계 무대에서 정점에 선 '완성형 레전드'라 할 수 있다. 그의 우승이 단순한 ‘트로피 획득’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유다. 한국 축구가 유럽 무대에서 단발성의 돌풍이 아닌, 구조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알리는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지난 4월 11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UEL 8강 1차전에서 발을 다쳐 약 한 달 간 결장한 어려움을 딛고 결승전에 출전한 손흥민./런던=AP.뉴시스
지난 4월 11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UEL 8강 1차전에서 발을 다쳐 약 한 달 간 결장한 어려움을 딛고 결승전에 출전한 손흥민./런던=AP.뉴시스

◆ 위기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발걸음

더 감동적인 것은, 이 우승이 ‘완전무결한 시즌’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손흥민은 지난해 6월부터 전 연인의 사생활 폭로와 임신 협박 논란, 그리고 최근 발 부상으로 약 한 달 간 7경기를 결장하는 고통을 겪었다. 팀도 수차례 연패의 늪에 빠지며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그는 주장의 책임감으로 끝까지 팀을 이끌었고, 마침내 결승전 출전 후 우승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강한 자는 물과 같아서, 낮은 곳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노자의 말처럼 손흥민은 고통과 비난, 실패라는 낮은 곳을 지나 우승이라는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손흥민의 프로 첫 우승과 함께 17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는 토트넘 선수들./토트넘
손흥민의 프로 첫 우승과 함께 17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는 토트넘 선수들./토트넘

◆ 한국 축구의 미래, 손흥민의 그림자를 딛고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손흥민 이후, 누가 이 전설을 이어갈 것인가? 이강인, 김민재, 정우영, 배준호, 양민혁 등 유럽파들의 약진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손흥민이 이룩한 이 ‘정점의 기준’을 뛰어넘기 위해선 기량, 인품, 책임감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흥민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바로 끊임없는 인내와 성실함이다. 그는 뛰어난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을 믿고 끝까지 버티는 것"임을 증명했다.

◆ 국민에게 선사한 ‘희망의 우승’

손흥민이 우승컵을 들고 태극기를 두른 채 눈물을 흘린 그 장면은, 단지 축구 팬만의 감동이 아니었다. 팍팍한 삶을 견디고 있는 국민들에게도 용기와 위로를 전하는 순간이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평범하지만 진실된 메시지가, 손흥민의 커리어 첫 우승을 통해 더 깊이 와닿는다.

손흥민의 이번 유로파리그 우승은 그가 쌓아온 노력과 열정,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는 강한 정신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의 우승은 대한민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손흥민의 우승은 또한 차범근의 위업을 뛰어넘은 한국인 축구 선수의 쾌거다. 그리고 그것은 한 개인의 영광을 넘어, 대한민국 스포츠 전체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역사적 사건이다. '참는 것이 덕이다'는 '인지위덕(忍之爲德)이란 말이 있다. 손흥민은 참았다. 그리고 이겨냈다. 그는 이제, 진정한 챔피언이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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