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일본여자프로골프투어(JLPGA)를 화들짝 놀라게 한 일대사건이 있었다. 16살도 채 안된 한국의 고1 소녀 이효송(하나금융그룹)이 J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월드레이디스챔피언십 살롱파스컵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대한민국 아마추어 국가대표 신분의 이효송은 선두에 무려 7타나 뒤진 채 최종 라운드에 들어갔으나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두 번 만에 볼을 그린에 올린 뒤 극적인 3미터 이글을 성공시키는 등 무서운 뒷심으로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함께 참가한 한국의 톱랭커 이예원(3위)도, 올해 같은 대회를 우승한 레전드 신지애와 현 LPGA투어 신인왕 레이스 2위인 야마시타 미유(공동 4위)도 이날 만큼은 조연일 수밖에 없었다. 이날이 태어난 지 15년 176일째 였던 이효송은 10년 묵은 일본 최연소 우승기록(15세 293일, 가츠 미나미)을 갈아 치웠다.
이효송의 우승은 어쩌다 얻어 걸린 게 아니다. 중학생 신분으로 국내 최고 권위의 강민구배 한국여자아마선수권을 2년 연속 우승한 바 있는 예비 슈퍼스타다. 한국여자아마선수권은 신지애, 김세영, 고진영, 김효주, 유해란, 윤이나 등이 역대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 슈퍼스타의 산실이지만 2000년 이후 이 대회를 2연패한 선수는 이효송이 유일하다. 뿐만 아니라 2023월드아마추어팀선수권 한국팀 우승의 주역이고 지난해에는 디 오픈을 앞두고 열린 더주니어오픈에서 개인전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초대형 유망주가 크게 한 건 한 셈이다.
이효송은 우승 후 깊은 고심 끝에 프로 전향을 결심하고 JLPGA투어에 의향서를 제출하자 일본 협회도 이사회를 열고 난상토론 끝에 이효송의 투어 데뷔를 특별 허가했다. 일본의 최연소 프로전향 기록(17세 271일, 하타오카 나사) 마저 경신한 15세 255일만의 일이다. 현지에서 이효송의 후견인이자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KPS 김애숙 대표는 "협회 이사회도 그들의 결정이 선수를 위해 과연 옳은 결정인지 많은 고심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선수의 의지가 워낙 크다 보니 정말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 듯하다"고 회상했다.
5월 갑작스런 우승, 7월 프로 입회, 그리고 9월의 데뷔전. 이렇게 고1 어린 학생의 각본에 없었던 느닷없는 행보는 봄~가을에 걸쳐 숨가쁘게 진행됐다. 대망의 데뷔전은 메이저대회인 소니JLPGA챔피언십이었다. 매스컴의 집중 관심을 받으며 프로로 변신한 이효송은 예선도 통과하고 공동 45위를 마크, 그런대로 무난한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이어 벌어진 스미토모생명 레이디스와 미야기TV 던롭여자오픈에서 잇달아 예선탈락의 수모를 맛봤고 2개 대회를 건너 뛰며 숨을 고른 뒤 참가한 후지쯔 레이디스와 마스터스GC 레이디스에서는 간신히 컷은 통과했으나 연속 최하위에 머무르기도 했다. 이후 3개 대회 연속 컷오프를 당했고 40명만 출전한 시즌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에서는 40등을 하기도 했다. 프로 신분으로 치른 9개 대회 중 5개에서 컷오프됐고 주말 경기에 나가더라도 최하위권에 맴도는 등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 이효송의 2024년 대회별 성적
1. 소니JLPGA선수권 T45
2. 스미토모생명 레이디스 예선탈락
3. 미야기TV 던롭여자오픈 예선탈락
4. 후지쯔 레이디스 52
5. 마스터스GC 레이디스 60
6. 미쓰비시전기 레이디스 예선탈락
7. 이토엔 레이디스 예선탈락
8. 대왕제지 엘르에어 예선탈락
9. JLPGA투어챔피언십 40
아마 시절, 코치의 지도에 따라 성실히 훈련하고 경기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과는 판이한 세계. 투어 무대는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과 같았고 골프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수많은 미디어를 만나야 했고 프로암에서 어른들을 상대해야 했다. 또 갤러리들과의 소통 등도 프로가 해야 할 기본 소양이었다. 이 모든 것이 15살 고교 1년생에게는 너무나도 힘에 부치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김애숙 대표는 "이효송 프로는 그 동안의 성과와 능력, 행동거지, 넘치는 자신감 등으로 볼 때 장차 무조건 최고의 골퍼가 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고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다. 한참 다듬고 성장해야 할 시기에 프로에 뛰어 들었다. 골프 말고도 해야 할 것이 많은 곳이다. 더욱이 한국도 아니고 일본"이라며 현재의 상황을 잘 받아 들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만족스럽지 못한 성과에도 이효송은 일본 협회가 수여하는 신인왕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철저하기로 소문난 협회 주관의 신인교육도 받았다. 투어 프로가 갖춰야 할 예의와 매스컴 응대 방법 등등.
지난 시즌의 부진(?)을 거울 삼아 새로운 티칭코치(이시우 프로)와 함께 동계훈련을 착실히 한 이효송이지만 올시즌 역시 그리 녹록치 않다. 개막전에서 예선탈락했고 두번째 대회서는 손목 부상으로 1라운드 직후 기권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어느 정도 안정감을 되찾고 있긴 하다. 자신이 디펜딩 챔피언으로 참가한 지난 11일의 살롱파스컵에서 일본 진출 후 처음으로 20위권(공동 29위)에 들기도 했다. 김애숙 대표는 "아마에서 프로로 변신해 하나씩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인데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하고 "일본 골프계에서도 이효송의 성장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이효송의 2025년 대회별 성적
1. 다이킨오키드 레이디스 예선탈락
2. V포인트XSMBC 2R 기권
3. 후지필름스튜디오앨리스 T55
4. KKT배 반데린 레이디스 예선탈락
5. 파나소닉오픈 T31
6. 월드레이디스 살롱파스컵 T29
이효송은 이번 살롱파스컵 마지막 날 LPGA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하타오카 나사와 같은 조로 경기를 한 바 있다. 하타오카는 위에 언급한 것 처럼 아마 시절 일본 메이저대회를 우승하고 어린 나이에 프로로 전향해 막바로 미국 무대로 진출한 선수다. 2016년 17세 263일에 일본여자오픈을 제패, 이효송 이전 메이저 최연소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며 프로 전향 기록 역시 이효송 이전에 최연소였다. 같은 해 LPGA Q스쿨을 통해 2017년 투어에 진출한 하타오카였지만 그 역시 첫 해는 수없이 눈물을 흘려야만 했었다. 19개 대회에 출전했으나 7차례만 예선을 통과했고 상금 순위 140위로 다시 Q스쿨을 가야했다.
하지만 미야자토 아이 이후 최고의 천재적인 선수로 평가받았던 하타오카는 Q스쿨을 수석으로 거뜬히 통과한 뒤 2018년 월마트 NW아칸소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올리는 등 이제까지 투어 6승을 기록하는 정상급 선수로 활동 중이다.
김애숙 대표는 "이효송 프로가 하타오카 나사와 우연히 같은 조로 편성돼 경기를 치른 뒤 너무 훌륭한 선수와 함께 해 영광스러웠다.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얻은 것이 많은 라운드였다고 말했다"고 전하고 "아마도 앞서 자신과 비슷한 길을 간 뒤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하타오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부연했다.
이효송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단 올시즌까지다. 규정상 아마 신분으로 우승한 선수에게는 1년 시드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시즌 상금랭킹 50위 이내에 들지 못할 경우 올해 Q스쿨 최종전을 가야할 수도 있다.
16살의 나이에 ‘심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미래의 슈퍼스타’ 이효송이 자신 앞에 넘실거리고 있는 험난한 파도를 어떻게 헤쳐 나갈 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