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로리 맥길로이가 참으로 극적이고 감동적인 모습으로 마침내 PGA투어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여섯 번째 주인공이 됐다. 맥길로이는 지난 14일 미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내셔널CC에서 끝난 2025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연장 접전 끝에 저스틴 로즈를 꺾고 꿈에 그리던 그린 재킷을 입는데 성공했다.
역사상 단 5명에게만 허락되었던 커리어 그랜드슬램 ‘클럽’의 새로운 멤버가 되기까지 2015년 부터 11번의 도전이 필요했던 힘겨운 여정이었고, 그 만큼 본인이나 현장의 패트론, 그리고 TV로 시청한 전세계 골프 팬들 모두에게 길이 기억될 역사적 순간이었다.
앞서 같은 업적을 달성한 5명의 그랜드슬래머들은 맥길로이에 비해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아래 표 참조) 진 사라센, 벤 호건, 게리 플레이어, 잭 니클러스 등 4명은 세번째 메이저 타이틀 획득 후 3년을 넘기지 않은 시점에 그랜드 슬램을 마무리했고 타이거 우즈의 경우는 세번째, 네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같은 해에 잇달아 거머쥐며 다소 싱겁게 완성한 케이스다.
더욱이 우즈는 프로 전향 이후 첫 출전한 1997년 마스터스에서 18언더파 270타라는 역대 최저타수이자 2위와 12타 차라는 역사상 가장 큰 차이로 우승했고, 1999년 PGA챔피언십 우승 이듬해인 2000년 시즌에 US오픈에서는 무려 15타 차, 디 오픈에서는 8타 차라는 압도적 기량으로 거푸 정상에 오르면서 간단히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바 있다. 맥길로이의 힘겨웠던 과정과 비교할 때 너무 압도적이라 경이로울 정도다.
맥길로이 이후 7번째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까. 현재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는 선수는 조던 스피스와 필 미켈슨이다. 스피스는 2012년 19살의 어린 나이에 PGA투어에 데뷔해 이제껏 13승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 중 메이저 우승은 3회. 2015년에 마스터스와 US오픈을 연속 우승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2017년에 디 오픈마저 석권, 이제 PGA챔피언십 하나 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이후 8차례에 걸쳐 PGA챔피언십 도전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예전 만큼의 기량이 올라 오지 않고 있긴 하나 아직 32살의 창창한 나이라 7번째 그랜드슬래머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한명의 도전자는 타이거 우즈와 한 동안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던 필 미켈슨이다. 메이저 6승 포함, 투어 통산 45승을 기록 중인 미켈슨은 US오픈만을 남겨 놓고 있는데 2013년 디 오픈 우승으로 세번째 메이저를 획득한 이후 올해 까지 12년째 감감무소식이다. 현재는 LIV골프로 이적해 활동하고 있고 전성기는 훌쩍 지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 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 역대 PGA투어 커리어 그랜드슬래머(15일 현재)
1. 진 사라센(메이저 7승)
US오픈(1922), PGA챔피언십(1922), 디 오픈(1932), 마스터스(1935)
2. 벤 호건(메이저 9승)
PGA챔피언십(1946), US오픈(1948), 마스터스(1951), 디 오픈(1953)
3. 게리 플레이어(메이저 9승)
디 오픈(1959), 마스터스(1961), PGA챔피언십(1962), US오픈(1965)
4. 잭 니클러스(메이저 18승)
US오픈(1962), 마스터스(1963), PGA챔피언십(1963), 디 오픈(1966)
5. 타이거 우즈(메이저 15승)
마스터스(1997), PGA챔피언십(1999), US오픈(2000), 디 오픈(2000)
6. 로리 맥길로이(메이저 5승)
US오픈(2011), PGA챔피언십(2012), 디 오픈(2014) 마스터스(2025)
*조던 스피스(메이저 3승)
마스터스(2015), US오픈(2015), 디 오픈(2017), PGA챔피언십(?)
*필 미켈슨(메이저 6승)
마스터스(2004), PGA챔피언십(2005) 디 오픈(2013), US오픈(?)
LPGA투어의 경우는 어떤가. PGA투어가 4대 메이저대회 우승을 그랜드슬램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반면 LPGA투어는 메이저 대회가 5개다. 이 중 서로 다른 4개를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 5개를 모두 우승할 경우 슈퍼 커리어 그랜드슬램으로 명명하고 있다.
LPGA투어는 1982년 이전에는 메이저대회가 시기에 따라 2~4개로 진행돼 오다 1983년부터 비로소 4대 메이저타이틀 체제가 공고히 된 바 있으며 2013년 부터는 에비앙챔피언십이 메이저에 합류, 현재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LPGA투어 메이저 대회는 US여자오픈, KPMG위민스PGA챔피언십, AIG위민스오픈, 쉐브론챔피언십, 에비앙챔피언십 등이다.
이제껏 LPGA투어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한 선수는 모두 7명으로 투어 출범 초기 루이스 석스와 미키 라이트가 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팻 브래들리, 줄리 잉스터, 카리 웹, 아니카 소렌스탐 등이 잇달아 고지에 등정했고 가장 최근인 2015년에 박인비가 역대 7번째로 그랜드슬래머가 됐다.
특히 박인비는 2013년 한시즌 동안 US여자오픈, KPMG위민스PGA챔피언십, 쉐브론챔피언십 등 3개의 메이저 왕관을 쓴 뒤 2015년 AIG위민스오픈 우승으로 대업을 완성했다. 또한 박인비는 그랜드슬래머 중에서는 유일하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2016년 리우)이기도 하다.
향후 8번째 LPGA투어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될 것을 기대되고 있는 선수는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와 한국의 전인지가 꼽히고 있다. 리디아는 투어 데뷔 초반인 2015년과 16년 에비앙챔피언십과 ANA인스퍼레이션을 우승한 뒤 지난해 파리 올림픽 금메달 직후 참가한 AIG위민스오픈 마저 석권, 이제 US여자오픈이나 KPMG위민스PGA챔피언십 중 하나를 우승하면 대망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전인지는 쉐브론챔피언십과 AIG위민스오픈 중 하나를 남겨 놓고 있다.
◆ LPGA투어 커리어 그랜드슬래머(15일 현재)
1. 루이스 석스(1957) 2. 미키 라이트(1962) 3. 팻 브래들리(1986)
4. 줄리 잉스터(1999) 5. 카리 웹(2001) 6. 아니카 소렌스탐(2003)
7. 박인비(2015)
*리디아 고
에비앙챔피언십(2015), ANA인스퍼레이션(2016), AIG위민스오픈(2024)
*전인지
US오픈(2015), 에비앙챔피언십(2016), KPMG위민스PGA챔피언십(2022)
이제 시선을 국내 남녀투어로 돌려 보자.
KLPGA투어는 지난해까지는 5대 메이저 체제를 유지하다 한화금융그룹챔피언십이 올해부터 대회를 열지 않아 KLPGA선수권, 한국여자오픈, 하이트진로챔피언십, KB금융챔피언십 등 4개로 진행된다. 국내외 투어에서 현역으로 뛰는 선수 중 4대(또는 5대) 메이저 타이틀 중 서로 다른 3개의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선수는 모두 6명이다.
신지애는 KLPGA선수권과 한국여자오픈에서 각 2승씩 그리고 KB금융챔피언십에서 한차례 우승해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에 하이트진로챔피언십 만을 남겨 놓고 있다. 김효주는 메이저 4승 중 KLPGA챔피언십 타이틀이 없고 장하나도 메이저 4승인데 한국여자오픈 우승이 없다. 순수 국내파 선수 중에는 박민지가 한국여자오픈, 하이트진로챔피언십, KB금융챔피언십에서 각각 한차례씩 우승한 바 있어 다음달 초 열리는 크리스에프앤씨 제47회KLPGA선수권에서 최초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KPGA투어는 공식적으로 메이저 대회를 지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전통과 권위, 상금 규모 등을 고려해 우승자 시드 연한과 대상 포인트를 통해 일반 대회와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일반 대회는 우승자 시드를 2년, 우승 포인트를 1,000점 부여하는 반면, KPGA선수권과 한국오픈은 시드 5년에 포인트 1,300점, 신한동해오픈과 매경오픈은 시드 5년에 1,200점, 그리고 SK텔레콤오픈은 시드 4년과 1,200점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메이저 대회를 공식화하고 있지는 않으나 이 5개 대회를 사실상의 메이저급 타이틀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외 현역 선수 중 메이저급 대회 3개 이상 우승 경험자는 최경주, 배상문, 박상현, 이상희 등 4명이다. 최경주는 매경오픈 우승이 없고 배상문은 KPGA선수권 트로피가 부족한 4관왕들이다. 박상현(신한동해, 매경, SK텔레콤)과 이상희(KPGA선수권, 매경, SK텔레콤)는 각각 메이저 3관왕이다.
여러가지 조건 등을 감안할 때 최경주의 매경오픈 출전 가능성은 거의 없는 반면 올시즌 KPGA투어 시드(해외투어 시드권자 규정)를 회복한 배상문은 오는 6월 하순에 열리는 제68회KPGA선수권대회 출전이 확정적이라 사상 최초의 5대 메이저급 대회 우승의 가능성을 부풀리고 있다. 배상문은 지난해 이 대회에 출전해 전가람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로리 맥길로이의 사상 6번째 PGA투어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으로 이 부문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와 맞비교하긴 어렵지만 국내 남녀 투어에서도 최초의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