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마크 맥과이어와 배리 본즈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메이저리그 홈런 판도를 양분했던 상징적인 선수다.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즌 70홈런을 돌파하며 메이저리그 150년 역사를 차례로 뒤바꿔 놓았다. 또 한 가지 둘의 공통점은 ‘스테로이드 복용’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있다는 사실이다.
맥과이어는 1998년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시즌 70홈런을 기록했다. 그의 점잖은 표정과 신사다운 행동은 미국인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됐고, ‘빅맥(Big Mac)’이라는 과분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맥과이어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미국 국민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맥과이어가 홈런 신기록을 세운 지 불과 3년 뒤인 2001년. 배리 본즈가 시즌 73개의 홈런을 날려 메이저리그 역사를 다시 썼다. 본즈는 시즌 홈런뿐 아니라 통산 홈런에서도 762개로 행크 애런의 메이저리그 기록인 755개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러나 본즈 역시 2003년 스테로이드 복용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미국인들에게 존경 대신 배신감을 안겼다.
중요한 점은 그 뒤 두 선수의 자세였다. 맥과이어는 2010년 약물 복용 사실을 시인했다. 비록 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뒤늦게나마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맥과이어는 지금도 각종 봉사활동을 다니며 속죄의 길을 걷고 있다. 본즈는 2011년 12월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으로부터 가택연금 1개월과 2년간의 보호관찰, 사회봉사 250시간 그리고 4000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본즈는 끝까지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을 부인했다.
미국인들이 메이저리그 최다안타(4256개) 기록 보유자인 피트 로즈(2024년 사망)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그가 자기 팀의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이유보다 사건 이후 줄기차게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오재원이 필로폰 수수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오재원은 이미 2022년 11월부터 1년간 11회에 걸친 필로폰 투약과 두산 베어스 후배 선수들을 시켜 수면제 2242개를 수수한 혐의 등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독립야구단 용인 드래곤즈는 미성년자 성범죄로 무기 실격된 전 롯데 자이언츠 투수 서준원을 선수로 받아들이려 했다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결국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입단을 취소했지만 ‘도덕 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에 있음을 드러냈다.
야구계는 고등학교 시절 학폭 가해자 안우진의 내년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 선발을 놓고 벌써 시끄럽다.
오재원은 오랫동안 공황장애를 앓아왔다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서준원은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니 선수로 뛸 수 있게 해달라고 읍소한다. 오재원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수면제 대리 처방을 강요하고 협박한 후배 선수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다. 이들은 오재원 때문에 1년간 선수 생활을 못했다. 서준원은 야구를 다시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속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안우진은 국가대표 이전에 가혹행위를 당한 후배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죄하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주인공 양미자는 성범죄를 저지른 손자를 대신해 죄를 갚아 나간다. 사람들은 이런 양미자를 비웃고 손가락질한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도덕이 마비된 우리에게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당부한다. 스포츠 세계에서도 ‘우등생’보다 ‘모범생’이 대접받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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