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준의 크로스오버] '격변의 KOREA', 왜 부끄러움은 늘 우리 몫인가
입력: 2024.12.15 00:00 / 수정: 2024.12.15 00:00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탄핵 범국민 촛불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여의도=장윤석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탄핵 범국민 촛불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여의도=장윤석 기자

[더팩트 | 황덕준 재미 언론인] 현직 대통령이 뜬금없이 발동했던 비상계엄령과 그로 인한 상황 전개가 이곳 미국내 각종 매체에서 날마다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온라인 검색창에서 키워드로 '사우스 코리아'만 입력해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그야말로 우르르 쏟아진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CNN, ABC, NBC, CBS, 폭스뉴스 등 메이저 언론사 뿐 아니라 '공공방송'(내셔널 퍼블릭 라디오·NPR),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등 비영리 방송네트워크조차 자체 특파원을 파견해 한국 소식을 전하고 있다. AP 통신 등의 기사를 전재하는 지방 언론사와 무수한 인터넷 매체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 '코리아'란 낱말이 넘친다.

국가적 위기가 알려지는 것조차 이른바 케이(K)를 붙이는 한류의 한 축으로 여기며 어깨를 으쓱 거리고자 하는 말은 결단코 아니다. 정신줄을 놓은 듯한 대통령이 저지르고 있는 망발이 뭐 좋은 일이라고 널리 널리 퍼지는 게 마땅하겠는가. 한마디로 민망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미국 동포의 일상을 말하고 싶은 게다.

8천여 km나 떨어진 서울 용산에서 싸지른 오물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처럼 태평양을 휘돌아 미국땅 곳곳에 악취를 퍼뜨리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코로나 팬데믹 때 쌓아뒀던 마스크를 다시 찾아내 얼굴을 감싸고 고개는 하염없이 땅바닥만 내려다보며 걸을 수밖에 없다. 부끄러움은 늘 우리들 국민의 몫이라니…

그저 그런 억울함 뿐이다. 미국 언론에 등장하는 한국 관련 뉴스의 문구 몇 개만 추려보자. '갑작스럽고 극적인 리더십의 변화, 정치적 예측 불가능성'워싱턴 포스트) '정치적 양극화 더욱 심화'(뉴욕 타임스) '깊은 정치적, 사회적, 세대적 분열'(ABC) '민주주의를 위한 오랜 피의 싸움...군부 독재 기간 계엄령의 잔혹함으로 깊은 상처 간직'(CNN)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정치적 불확실성'(NBC) '불확실한 정치적 미래'(미국의 소리)

최근 정치적 불안이 두드러진 프랑스나 일본, 심지어 두 번째 임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조차 이같은 워딩의 주어가 돼도 잘 어울리는 문구들이다. 다만 이번엔 한국일 뿐이라고 위안삼기엔 작금의 사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아는 일이다. 언론의 관심은 곧 대중의 관심이라는 전제가 맞다면 미국에서 한국 관련 뉴스가 비중 있게 다뤄지는 상황은 '오징어게임'이나 방탄소년단(BTS), 김치와 김밥 등 한류의 확산에 따른 영향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런 말랑말랑한 해석보다는 미국이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국가적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할 것이다. 이번 계엄령 사태처럼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은 미국 언론의 주목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참으로 드라마틱하게 이뤄져 아시아 지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성공사례로 꼽혀왔던 터다.

윤석열의 비상계엄과 그 여파는 국가체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관점에서 미국 언론이 헤드라인급으로 다루고 있는 셈이다. 선진 7개국 그룹 G7을 G10으로 확대하자는 논의를 촉발한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 한국에서 비상계엄 형태의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믿을 수 없는 비현실성이 뉴스의 극적인 효과를 높였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그런 성공적인 나라에서 10년도 안되는 사이 두 차례나 대통령 탄핵을 부르짖을 만큼 체제가 허술한 가에 있다. 미국 언론의 관심도 초점은 거기에 있는 듯하지만 아직 대놓고 한국 민주주의 시스템이 엉터리라는 지적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한류 덕분에 시선이 너그러워졌기 때문일까. 미국 언론들의 서울발 기사에서 실마리를 찾을 듯싶다.

거의 모든 미국 매체가 서울특파원을 한국계로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욕 타임스만 해도 5명의 기자가 모두 한국인이거나 한국계 미국인이며 CNN, 월스트리트 저널 등도 상주 특파원을 한국계로 파견하고 있다. 미국 서부의 지역신문인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까지 한국계를 상주시키고 있다.

한국을 잘 아는 미국 언론사 한국계 특파원들의 보도내용은 한국 내 언론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한국의 정치상황이나 문화 등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인지 부자연스러운 분석이나 무리한 비판은 찾아보기 힘들다. 10여년 전만해도 미국 메이저 언론사의 서울특파원이 한국계라면 뉴스거리가 됐지만 어느 새 자연스러운 현상이 돼버렸다.

이 또한 K의 한 분야로 삼을 수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게 아니다. 자고 일어나니 선진국이 돼있더라던 나라에서 어쩌자고 후진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블로그 수준의 모임에서 출발한 한국계 혼혈단체가 있다.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청년이 90년대 후반에 '하프코리안닷컴'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든 데서 비롯된 곳이다.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갑자기 회원수가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한국인이니 피가 절반은 커녕 10분의 1 뿐이지만 회원이 되고 싶다고 찾아드는 라틴계 소년도 있었다. 삼성의 전자제품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현대차가 미국의 도로 여기저기를 달리는 등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자 생긴 현상이었다.

개발도상국 단계에 머물러 있을 때만해도 굳이 드러내지 않았던 '한국계'라는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후손들의 뿌리가 한국이 된 것이다. 설마 그들이 다시 한국인의 피를 숨기기야 할까마는 적어도 부끄러운 마음은 감추기 어려울 것이다. TV만 틀면 불쑥 나오는 이상한 대통령을 더 이상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이를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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