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장종훈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김태균. 한화 이글스가 배출한 레전드급 선수들이다. 여기에 류현진이 24일 한미 통산 200승(KBO 122승, MLB 78승)을 달성하면서 명실상부한 전설에 이름을 올렸다. 통산 12회 우승의 KIA 타이거즈나 8회 우승의 삼성 라이온즈와 비교해도 전혀 뒤질 게 없는 멤버다. 류현진은 200승 뒤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 목표를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이맘때 류현진은 "한국시리즈 우승"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1년 만에 목표가 소박해졌다.
1985년 팀을 창단해 1986년부터 리그에 참여한 한화는 1999년 딱 한 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27년 전이다. 1992년 이후 34년 동안 우승이 없는 롯데 자이언츠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기간이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계보에 오를 만한 스타 플레이어가 즐비한데 왜 우승을 못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선 1999년 우승 멤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운드엔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한용덕 이상목이 있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최강이었다. 포수는 조경택 김충민 신경현 강인권 심광호가 지켰다. 화려하진 않지만 내실 있는 구성이었다. 1루수 댄 로마이어, 2루수 임수민, 3루수 강석천, 유격수 백재호의 내야 수비진도 탄탄했다. 좌익수 이영우, 중견수 제이 데이비스, 우익수 송지만의 외야 라인은 공-수 조화가 잘 이뤄져 있었다. 지명타자는 장종훈이 주로 맡았다. 어디 한 군데 약한 구석이 없었다. 1999년 우승 기세를 더 이어가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한화는 전통적으로 투수진과 타선은 약하지 않았다. 문제는 내-외야 수비, 특히 포수-유격수-2루수-중견수의 센터 라인이 취약했다. 지금까지 한화 출신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는 1988년과 1990년 장종훈, 2011년 이대수 뿐이다. 2루수는 2013년 정근우, 2021년 정은원 등 2명이고, 포수는 1989년 유승안이 유일하다. 외야수는 2002년 송지만, 2005년 제이 데이비스가 받았다. 정리하면 유격수 골든글러브는 2012년 이후 14년째 맥이 끊겼고, 중견수는 20년 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내세울 만한 포수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화는 2006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이때 내야진은 1루수 김태균, 2루수 한상훈, 3루수 이범호, 유격수 김민재였다. 알찬 구성이었다. 그러나 김태균과 이범호는 일본으로 이적했고, 김민재는 은퇴, 한상훈은 공익으로 입대하면서 금세 와해 됐다. 구단은 세대교체에 실패했다. 이후 한화는 최근까지 수비 붕괴, 내야 구멍이란 오명을 듣고 있다.
한화는 지난 몇 년간 투수력 보강에 전력을 쏟았다. 첫 번째 지명으로 문동주 김서현 황준서 정우주 등 투수를 뽑았다. 실패로 단정하긴 이르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지난해 중견수 자원인 오재원을 1번 지명했지만 즉시 전력감으론 시기 상조임이 드러났다. 허인서란 대형 포수를 발굴한 것이 그나마 수확이다.
KIA가 우승을 밥 먹듯 하던 해태 시절 한대화 이종범 같은 걸출한 내야수가 있었다. 삼성이 4연패를 하던 2010년대 초반 유격수 김상수와 포수 진갑용이 있었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2연패를 한 LA 다저스엔 오타니 쇼헤이와 야마모토 요시노부만 있었던 게 아니다. 162경기를 꾸준히 지킨 유격수 무키 베츠의 힘이 절대적이었다.류현진은 현재 한화의 전력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팬들에게 미안한 줄 알면서도 이번 시즌 목표를 ‘우승’이 아닌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고 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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