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자네는 정신력이 참으로 대단하네. 그런 정신력이면 분명히 큰 선수가 될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히딩크 감독의 이 한 마디는 다른 사람들이 열 번 스무 번 "축구의 천재다. 신동이다"하는 찬사보다 훨씬 더 내 기분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월드컵 내내 그 날 감독님이 던진 칭찬 한 마디를 생각하며 경기에 나갔다. 그리고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다. 이상은 박지성의 자전적 에세이집 ‘멈추지 않는 도전’에 나오는 대목이다.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준 일화다.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2025시즌 초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공-수-주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완벽에 가까운 짜임새를 보이고 있다. 다른 팀들과 차원이 다른 야구를 펼치고 있다. 벌써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얘기가 나온다.
자연스럽게 염경엽 감독의 ‘리더십’이 주목을 받고 있다. 요즘 LG 더그아웃 분위기는 여유가 넘친다. 염경엽 감독은 시종일관 웃음 띤 얼굴로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없던 모습이다. 사람들은 염경엽 감독이 달라졌다고 한다. 지난해는 뭔가 쫓기는 표정이었다. 작전을 급하게 시도하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타났다. 선수 기용에 인색했다. 결국 시즌 막판에 주전 선수들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3위로 마쳤다. 2023년에 이어 한국시리즈 2연패와 ‘왕조 건설’을 장담했지만 고개를 숙였다.
염경엽 감독의 지휘 방식을 ‘신 관리 야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감독이 경기에 깊숙이 관여하고, 소통보다는 주입식으로 전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과감한 도루 시도로 대변되는 작전 야구를 즐겨 ‘염갈량’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반대로 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주장이 강해 ‘독불 장군’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염경엽 감독은 선수-감독-단장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유일한 인물이다. 프런트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 프런트와 현장(감독)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쓰라린 시행착오를 겪은 염경엽 감독은 처절한 ‘내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프런트의 요구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즉, 선수 기용폭을 넓히고 무모한 도루 시도를 자제해 성공률를 높이라는 주문이었다.
지난해까지 염경엽 감독은 상대 투수의 유형에 상관없이 주전 라인업을 고정했다. 그러나 올 시즌들어 좌우놀이를 즐긴다. 신민재 구본혁 송찬의 등을 적재적소에 투입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투수진 운영에서도 큰 틀을 그리고 결단력 있게 추진한다. 지난해 선발로 전격 발탁한 손주영(27)을 LG는 물론이고 한국을 대표하는 좌완 투수로 성장시켰다. 올 시즌엔 송승기(23)라는 원석을 발굴해 선발 투수로 키우고 있다.
염경엽 감독의 지도력 중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선수 발굴과 분명한 동기부여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거나 핑계를 대는 선수를 매우 싫어한다. 지난해까진 경기 운영이 다소 경직됐다면 올해는 매우 유연해졌다. 켄 블랜차드는 그의 책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에서 리더십의 유형을 ‘지시형’, ‘지도형’, ‘지원형’, ‘위임형’ 등 네 가지로 나눴다. 핵심은 리더가 조직을 이끌 때 어느 편에 서느냐다. 독단적으로 결정하는지, 공동의 힘으로 해결점을 찾느냐 차이다. 염경엽 감독의 ‘리더십’은 지난해까지 ‘지시형’이었다면 올해는 ‘지원형’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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