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663일 만의 감격승 서재응, '서재앙 아닌 서축복'
  • 김광연 기자
  • 입력: 2015.06.03 06:00 / 수정: 2015.06.03 10:58

서재응 663일 만에 승리 투수 KIA 서재응이 2일 열린 두산전에서 7이닝 1실점 하며 승리 투수가 됐다. 서재응이 지난해 4월 5일 열린 두산전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 더팩트 DB
서재응 663일 만에 승리 투수 KIA 서재응이 2일 열린 두산전에서 7이닝 1실점 하며 승리 투수가 됐다. 서재응이 지난해 4월 5일 열린 두산전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 더팩트 DB

돌아온 서재응

"서재응! 서재응!."

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두산 베어스와 원정 경기를 9-1 승리로 장식한 KIA 타이거즈 응원석에서 들린 소리입니다. '분위기 메이커' 서재응(38·KIA 타이거즈)이 지난 2013년 8월 9일 NC와 원정 경기 이후 무려 663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되는 기쁨을 맛봤습니다. 본인으로서도 팀으로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승리입니다. '응원단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지만 이번엔 더그아웃뿐만 아니라 그라운드에서도 힘을 냈습니다. 팀의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한 동시에 메이저리그를 누비던 전성기 포스를 그대로 내뿜었습니다.

후끈후끈 무더웠던 오후 시간이 지나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서재응은 이날 1군 무대에 등록돼 곧바로 선발로 나섰습니다. 기복을 보이는 팀 내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하기 위해서 말이죠. 지난달 16일 2군으로 내려간 뒤 16일 만에 마운드에 올라 왼손 타자가 즐비한 두산 타선을 상대로 7이닝 3피안타(1피홈런) 1볼넷 2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며 펄펄 날았습니다. 서재응은 이 경기 전까지 올 시즌 3경기 선발 등판해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3.65를 기록했습니다. 지난달 9일 넥센전에서 1.2이닝 6피안타(1홈런) 1사구 1탈삼진 2실점 한 게 마지막 등판이었죠.

잘했다 서재응 서재응이 2일 열린 두산전에서 7회말을 막아내자 KIA 팬들이 기뻐하고 있다. / 잠실구장 = 김광연 기자
'잘했다 서재응' 서재응이 2일 열린 두산전에서 7회말을 막아내자 KIA 팬들이 기뻐하고 있다. / 잠실구장 = 김광연 기자

이날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3-0으로 앞선 1회부터 정진호에게 솔로 홈런을 얻어맞긴 했으나 특유의 '칼날' 제구력을 무기로 두산 타선을 잠재웠습니다. 전성기였던 지난 2005년 뉴욕 메츠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메이저리그를 누비던 때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이때 서재응은 2005년 당시 서재응은 메츠 유니폼을 입고 8승 2패 평균자책점 2.59의 성적을 올리며 이름을 날렸습니다. 이날 투구도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지난해부터 초반 위기를 자초하며 쉽게 무너지던 플레이는 없었습니다.

혼자만이 아닌 동료의 결정적인 도움도 있었습니다. 서재응은 4-1로 앞선 3회 김재호와 정진호에게 안타를 맞으며 2사 1, 2루 위기를 맞았습니다. 김현수에게 좌중간으로 떠오르는 타구를 맞았습니다. 2타점 적시타가 될 것으로 보였으나 중견수 김호령이 엄청난 스피드로 공을 낚으며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공이 빠졌다면 4-3이 되는 상황입니다. 크게 울려 퍼지던 두산 팬들의 환호 소리가 순간 탄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초조하게 지켜보던 서재응도 주먹을 불끈 쥡니다. 이닝을 마친 뒤엔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김호령을 격려하며 고마워했습니다.

이후에도 서재응은 힘을 냈습니다. 8-1로 앞선 6회 1사 후 정진호를 풀카운트 접전 끝에 루킹 삼진으로 처리하며 기세를 올렸습니다. 7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서재응은 경기 후 KIA 팬들의 뜨거운 환호 소리를 들으며 마운드를 내려왔습니다. 제 몫을 톡톡히 한 '에이스'의 귀환입니다. 하위권에 머무는 팀의 활력 임무를 소화했습니다. 경기 후 서재응은 "16개 던진 포크볼 제구가 잘됐다. 전체적으로 경기가 잘 풀렸다. 경기 초반에 변화구를 많이 던졌는데 두산 타자들이 이를 노리더라. 그래서 빠른 볼을 섞으며 맞섰다"면서 "앞으로 선발이든 중간이든 열심히 던지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김기태 KIA 감독도 "서재응이 노장답게 잘 던졌다. 시즌 첫 승 축하한다"고 칭찬했습니다.

고맙다 호령아 서재응(왼쪽에서 두 번째)이 3회 호수비를 펼친 김호령(오른쪽에서 두 번째)에게 글러브 터치를 제안하며 고마워하고 있다. / 잠실구장 = 김광연 기자
'고맙다 호령아' 서재응(왼쪽에서 두 번째)이 3회 호수비를 펼친 김호령(오른쪽에서 두 번째)에게 글러브 터치를 제안하며 고마워하고 있다. / 잠실구장 = 김광연 기자

2008년 국내 무대 복귀한 서재응은 2012년 9승 8패 평균자책점 2.59의 성적을 올린 이후 지난 2013년부터 두 시즌 넘게 부진에 빠졌습니다. 2013년엔 5승 9패 평균자책점 6.54에 그쳤고 지난해엔 2패 평균자책점 6.40을 기록하며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2년간 겨우 44.2이닝을 소화하며 팀 내 구심점 임무를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연봉도 2억 원에서 40% 삭감된 1억 2000만 원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실망한 팬들은 서재응을 보며 '서재앙(서재응+재앙)'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서재앙'은 없었습니다. 특유의 활기 넘치는 동작으로 동료를 격려하며 호투를 거듭한 '서축복'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선발'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며 앞으로 더 기대하게 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어렵게 잡은 승리인 만큼 다음 경기가 더 중요합니다. 꾸준한 성적이 뒷받침된다면 노장의 찬가는 힘차게 울려 퍼질 겁니다. 서재응이 이날처럼만 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는 KIA입니다.

[더팩트|잠실구장 = 김광연 기자 fun350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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