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 올해만 43개 단독 공개 일정
영부인 지원 법적 근거 마련 필요성 지적도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공약이었던 제2부속실을 폐지했다. 김건희 여사도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지만, 현재의 행보는 그때와 크게 달라지면서 야권으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지난해 5월 10일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취임식. /남윤호 기자 |
"저는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10일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같이 약속했다. 대통령 집무실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였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인사, 외교, 대북관계, 야당과의 협치는 물론 대통령 부인의 역할도 조용한 내조로 바꾸겠다며 제2부속실도 폐지했다. 그로부터 1년, 윤 대통령의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또, 청와대는 과연 국민의 품으로 들어왔을까. <더팩트>는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윤 대통령의 국민과 약속을 총 9회에 걸쳐 짚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설상미 기자]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십시오."
2021년 12월 26일 김건희 여사는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공언했다. 대선을 3개월가량 앞두고 '허위 이력' 등 배우자 리스크가 불거지자, 그림자 내조 약속으로 위기 돌파에 나선 것이다. 윤 대통령도 대선 후보 당시 언론과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가족에 불과하다. 법 외적인 지위를 관행화하는 건 맞지 않다"며 제2부소식 폐지를 공약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일 년이 지난 시점, 공언과 달리 김 여사 단독 일정은 대폭 늘어났다. 9일 <더팩트> 취재 결과 대통령실 뉴스룸에 올라온 총 720개의 사진 모음집 중 김 여사 단독 사진 모음집은 63개로 집계됐다. 지난해에는 20개에 그쳤지만, 올해만 43개의 단독 사진 모음집이 올라왔다. 김 여사 공개 일정이 지난해에 비해 두 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야당에서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던 김 여사가 요란한 내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역대 영부인들은 대통령의 정치 '여백'을 채워주며 저마다의 내조를 해왔다. 육영수 여사는 '육영재단', '양지회' 등 독자적 사업영역을 구축해 소외된 약자에 집중했고, 이희호 여사는 여성 운동에 앞장섰다. 김정숙 여사의 '요리 내조'로 인한 일화들도 유명하다. 각자의 개성을 살려 대통령들이 챙기지 못한 면면을 살폈던 점이 공통적이다.
지난달 24일 김건희 여사가 워싱턴DC에 위치한 미국 영빈관 '블레어하우스'에서 벨라 바자리아 넷플릭스 최고콘텐츠책임자(CCO)를 만나 대화를 나누던 당시. /뉴시스 |
김 여사 역시 문화·예술·동물권 등 본인의 관심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문화예술전문가 이력을 내조에 적극 활용 중이다. 질 바이든 여사, 기시다 유코 여사 등 정상 배우자를 만날 때마다 전시회 관람을 빼놓지 않는 이유다. 넷플릭스 3조 투자 유치 성공에도 김 여사 영향력이 있었다고 한다.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는 "'영부인은 철저하게 넘버2다, 소위 와이프다 배우자다, 왜 설치냐'하는 건 조선시대 생각"이라며 김 여사 행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문제는 제2부속실 폐지로 영부인 행보에 따른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영부인 역할은 따로 규정돼 있지 않다. 당연히 이와 관련해 업무지침이나 메뉴얼도 없다. 영부인 보좌에 인력과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공적인 검증이 필요한데, 제2부속실이 폐지되면서 더욱이 검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6월 17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 앞서 국군 전사비 명비(고 조응성 하사)를 찾아 참배한 뒤 오찬장으로 향하는 모습(위). 아래는 김 여사가 이순자 여사를 예방(왼쪽)한 모습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하던 당시. /대통령실 제공 |
앞서 제2부속실은 영부인 일정 및 행사 기획, 수행, 메시지 관리 등을 도맡았다. 대통령과 영부인의 업무를 구분 짓겠다는 의도로 1972년 박정희 정부에서 설치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대통령실 슬림화' 공약에 따라 제2부속실은 통폐합됐고, 현재 제1부속실 행정관 3~4명이 김 여사 일정을 담당하고 있다. 대통령과 영부인의 업무가 분리되지 않아 영부인이 대통령 업무에 관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김수민 평론가는 "영부인이 어디까지 대통령 업무에 관여하는지 국민들의 의혹이 가중될 수 있다"며 "제2부속실은 영부인의 국가 기밀 접근차단과 대통령 업무에 직접 관여·행사하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지금은 구분이 없어졌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임기 초 김 여사에게는 '사적 수행'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김 여사는 지난해 6월 첫 단독 공식 일정으로 경북 봉하마을을 찾을 당시 지인 3명을 수행원으로 썼다. 이들은 모두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 출신으로 1명은 민간인, 나머지 2명은 대통령실에 채용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순방 당시엔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부인이 현지에서 일정을 수행하고 귀국길에는 공군 1호기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영부인이 공식 일정에 사적 친분을 활용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올해 1월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상인들을 향해 인사하는 김건희 여사. /대통령실 제공 |
논란이 계속되자 정치권에서는 제2부속실을 다시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됐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제2부속실장을 지낸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영부인과 관련된 일정을) 제1부속실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1부속실은 대통령 일정만 총괄해서 보좌하게끔 돼 있다"며 "영부인 보좌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 의원은 "그렇게 되면 온갖 뒷말은 물론, (제1부속실이) 위임받은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무슨 일까지 해야 하는지 전부 문제가 되고, 공적인 검토가 불가하다"라며 "공식적인 인력과 예산 편성을 통해 활동도 공식화시켜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재로서는 영부인에 법적 지위 제도 마련이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공약 파기 부담을 감수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에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지금 같은 불안정한 체제 갖고서는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다"며 "영부인을 지원할 수 있는 사업비가 없어 최순실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채 교수는 "윤 대통령의 공약이기 때문에 제2부속실 부활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처럼 영부인에게 필요한 경비나 예산을 지원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어 주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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