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무노동 국회' 처방전 ④] 정치원로의 호소 "여야 적대적 투쟁, 국가 망친다"
입력: 2019.08.03 00:01 / 수정: 2019.08.05 09:15
큰 것을 얻으려면 큰 것을 먼저 던져야 하는데, 먼저 얻을 것을 중심으로 대화를 해 소득이 없다. 유경현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헌정회 회장실에서 가진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극심한 정쟁 이유를 이 같이 진단했다. /헌정회=남용희 기자
"큰 것을 얻으려면 큰 것을 먼저 던져야 하는데, 먼저 얻을 것을 중심으로 대화를 해 소득이 없다." 유경현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헌정회 회장실에서 가진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극심한 정쟁 이유를 이 같이 진단했다. /헌정회=남용희 기자

☞③편에서 계속

국회가 일하지 않고 있다. 여야 정쟁이 지속되며 시급한 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어렵게 열린 6월 임시국회는 성과 없이 종료됐고, 7월 임시국회는 뒤늦은 7월 30일부터 정상가동에 들어갔다. 올 1월 1일부터 7월 30일까지 가결된 법안은 395건으로 전년 동기(918건) 대비 43% 수준에 그쳤다. 입법부가 제 역할을 못 하며 '국회 무용론'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일부 의원들이 국회 파행을 막기 위한 법을 발의했지만,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입법부인 국회 역시 법안만 발의할 뿐 흐지부지 면피만 하고 있다. <더팩트>는 국회 파행을 막기 위한 법안들을 살피고, 해외 사례와 함께 일하는 국회가 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나아가 정치권 원로를 만나 일하는 국회를 위한 고견도 들었다. <편집자 주>

유경현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과감하게 양보해 내분 줄여야"

[더팩트ㅣ헌정회=허주열 기자] "정치나 외교에서 큰 것을 얻으려면 큰 것을 먼저 던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여야도 먼저 던져야 하는데, 먼저 얻을 것을 중심으로 (대화를) 진행해 소득이 없다.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 법인데,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다."

유경현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은 작금의 극심한 정쟁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 거대양당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양보 없는 정쟁을 지속하며 국회 파행을 주도해 왔다. 정쟁이라고 하지만, 국민이 보기엔 '무노동'에 지나지 않는다. 정당 정치의 당연하면서도 꼭 필요한 정쟁이 국민의 눈에 '무노동'으로 보인다. 정치권이 직면한 현실이자 개선해야 할 과제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시급한 민생법안들이 국회에 산적하고, 국민을 위해 필요한 정부 정책도 국회라는 벽에 가로막혀 시행되지 못한 게 수두룩하다. '국회 무용론', 나아가 '국회 해산론'까지 나오는 게 현실이다. 정치권 원로는 현 정치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일하는 국회, 국민을 위한 국회가 되기 위한 묘안은 없을까. <더팩트>가 지난달 29일 유 회장을 여의도 국회 내 헌정회 회장실에서 만나 그 답을 물었다.

유경현 헌정회 회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내에 위치한 헌정회 회장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유경현 헌정회 회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내에 위치한 헌정회 회장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국회, 큰 인물도 작아지는 무대"

"1등 국회의원은 넘쳐나는데, 1등 국회가 안 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아쉬움이 쌓여가고 있다. 국회가 작은 인물도 크게 키우는 무대가 돼야 하는데, 큰 인물이 작아지는 아쉬운 무대가 되고 있다."

유 회장은 현 국회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정당들은 정권 유지와 정권 확보라는 대과제를 두고 경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당의 이익보다 더 큰 가치인 국익을 위해 적과 적의 투쟁이 아니라 동지와 동지의 경쟁이라는 공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국회의원 대다수는 국내외 명문대를 나와 각 영역에서 훌륭한 커리어를 쌓은 뒤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대다수가 정당의 주요 구성원으로(무소속 의원은 8명에 불과) 당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소신보다 당론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지도부가 다른 당을 비판하며 정쟁을 시작하면 다음 총선 공천을 위해 앞장서서 공격수로 나서거나 침묵한다.

국민이 정치인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좋은 정치를 통해 좋은 나라는 만들기를 소망한다. 유 회장은 "여야가 정권과 함께 더 큰 국권도 함께 헤아리고 내년 총선과 함께 다음 세대도 같이 배려하는 그런 큰 정치를 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는 일본의 경제보복,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도발, 중국·러시아의 영공 침범, 미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요청 등 외부 난제 속에서 거대양당이 추경안 및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 처리를 놓고 국회를 마비시켰던 일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돌이켜보면 우리 정치권은 민족분단, 동족상잔, 절대빈곤을 이겨내고 오늘을 이룩한 현대사의 주역이다. 큰 틀에서 보면 눈물겨운 파란만장한 세월을 더불어 함께해온 동시대인으로 시대적 공감대가 있다.

유 회장은 "동시대를 살면서 (여야는) 미운정, 고운정, 공감대, 편견이 섞여 있다"며 "정치인들은 시대를 짊어지고 가는 역할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말로서 말이 많아지는 프로파간다(선전선동)를 줄이고 일로서 겨루는 프로그램, 프로젝트의 세계를 열어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경현 헌정회 회장은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여야가 정당의 이익과 함께 더 큰 국익도 함께 헤어리고, 다음 세대도 같이 배려하는 큰 정치를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남용희 기자
유경현 헌정회 회장은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여야가 정당의 이익과 함께 더 큰 국익도 함께 헤어리고, 다음 세대도 같이 배려하는 큰 정치를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남용희 기자

◆"역대 대통령 기념관, '한국정치 대화해'의 장"

앞서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열린 제헌절 71주년 경축식에서 유 회장은 '한국정치 대화해'를 위해 역대 대통령들의 업적과 생애를 총망라한 기념관이나 박물관을 짓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 같은 공간이 갖는 효과가 궁금했다.

유 회장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정치권의 아픔, 아쉬움은 인물 평가에 대한 종합적인 통찰이 미흡하다는 점"이라며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한 생애를 관통하는 총체적 평가를 해야 한다. 현행 헌법체제에서 7명의 대통령이 탄생했는데 돌이켜 보면 어느 대통령이 완벽했으며, 어느 정부가 만족을 줬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균해서 이들의 공 7, 과 3의 헌신이 있어 오늘의 성취가 가능했다"며 "나라 곳곳이 집단이기주의의 치열한 싸움터가 된 상황에서 국민들은 정치권의 대화해를 목말라하고 있다. 이를 위해 화해의 상징적 장소로 초대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망라한 종합기념관이나 박물관을 지어 다음 세대에 물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한국정치의 구조적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대선에서 당선된 후보가 50% 득표율을 넘기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 권력은 집중돼 있다"며 "나머지 50% 세력이 계속 도전할 경우 정계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독일의 경우 권력구조가 내각책임제이기는 하지만 아데나워 총리가 14년, 콜 총리가 16년, 메르켈 총리가 14년 등 50여 년간 다당제 속 연립정권이 지속된 정치 시스템으로 정부가 안정돼 경제발전, 동서독 통일을 이룬 게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유경현 헌정회 회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헌정회 회장실에서 <더팩트>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유경현 헌정회 회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헌정회 회장실에서 <더팩트>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여야 안배적 연대와 공존의 정치 필요"

독일과 한국의 권력구조가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도 여야 안배적 연대, 공존의 정치를 생각해 볼 때가 됐다는 주장이다. 실제 정치권 안팎에서 다양한 담론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말로만 그치는 형국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6월 19일 관훈토론회에서 "지금의 정치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밀어내기에만 급급하고 있다"며 "공존의 정치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과제처럼 보이지만 우리 사회가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이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여야 공존의 정치는 없었다. 거대 양당은 당 지도부 회의, 공식 논평을 통해 거의 매일 상대 당을 비판하며 국회 파행을 주도했다.

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역설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부터 나온 공존의 정치 담론은 현실화되지 못했고,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해 유 회장은 "문 대통령의 취임사 내용이 진심이라고 믿고, 그 목표에 박차를 가해서 통합, 공존, 포용의 큰 정치적 행보를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끝으로 유 회장은 나라 안팎에 산적한 위기 극복을 위해 내분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길게 보면 늘 국가가 어려워지는 것은 외침 때문도 있지만, 내분 때문인 경우도 많다"며 "지금의 정치적 내분을 줄이기 위해 여야가 과감하게 양보해야 한다. 청나라 군대가 포위한 남한산성에서 척화파와 주화파가 싸우다 인조가 무릎을 꿇었고, 조선 말기에는 명성황후와 대원군이 투쟁하다 나라가 무너졌다. 역사의 참담한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실패의 역사를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역사의 교훈을 새길 것을 당부했다.

한편 대한민국헌정회(大韓民國憲政會)는 전직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로 이루어졌으며, 지난 1991년에 제정된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에 따라 사단법인으로 등록됐다. 현재는 국회 건물 내에 위치하고 있다.

☞유경현 헌정회 회장은 누구?

▲1939년 전남 순천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 졸업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차장 ▲제10대 민주공화당, 11·12대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국회 경제과학위원회 위원장, 국회 대통령직선제 개헌특위 위원 ▲대한민국 헌정회 부회장, 정책위의장 ▲대한민국 헌정회 제21대 회장(현)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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