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무노동 국회' 처방전 ①] 국민 비판 임계점…제 머리 못 깎는 여의도
입력: 2019.07.31 05:00 / 수정: 2019.07.31 06:56
일하지 않는 국회라는 비판 여론에도 국회의 직무유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속되는 정쟁에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에 의원들의 좌석 곳곳에 빈자리가 넘쳐났다. /국회=남윤호 기자
'일하지 않는 국회'라는 비판 여론에도 국회의 직무유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속되는 정쟁에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에 의원들의 좌석 곳곳에 빈자리가 넘쳐났다. /국회=남윤호 기자

국회가 일하지 않고 있다. 여야 정쟁이 지속되며 시급한 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어렵게 열린 6월 임시국회는 성과 없이 종료됐고, 7월 임시국회는 뒤늦은 7월 30일부터 정상가동에 들어갔다. 올 1월 1일부터 7월 30일까지 가결된 법안은 395건으로 전년 동기(918건) 대비 43% 수준에 그쳤다. 입법부가 제 역할을 못 하며 '국회 무용론'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일부 의원들이 국회 파행을 막기 위한 법을 발의했지만,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입법부인 국회 역시 법안만 발의할 뿐 흐지부지 면피만 하고 있다. <더팩트>는 국회 파행을 막기 위한 법안들을 살피고, 해외 사례와 함께 일하는 국회가 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나아가 정치권 원로를 만나 일하는 국회를 위한 고견도 들었다. <편집자 주>

국민소환 등 '일하는 국회법' 봇물…소위 통과 요원하지만 논의 계속돼야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동물국회' '식물국회'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그야말로 정쟁으로 허송세월만 보내며 세비만 꼬박꼬박 받고 있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라고 했지만, 국회의원들에게는 무의미한 말이 된 지 오래다.

국회법에는 2·4·6·8월 임시국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선 모두 개의한 적이 단 한 해도 없다. 특히 올 2월 임시국회는 처음으로 열리지 않았고, 뒤늦게 열린 6월 임시국회는 단 한 건의 법안 처리도 못 하고 종료됐다. 정당 간 극단적 대립으로 국회가 파행되며 본연의 업무인 법안심사·의결, 예산심의, 행정부 견제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회는 2014년부터 5년째 국가기관 중 국민 신뢰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들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회의원에게 최저시급을 지급해야 한다', '국회의원도 무노동무임금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청원 글이 30건이나 올라왔다. 제 역할을 못 하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다. 이는 국회의원들이 일하는 것에 비해 고액연봉을 받고 있다는 국민적 평가이자, '식물국회'라는 비판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되는 이른바 '세비', 즉 보수는 월 1264만 6648원으로 연봉 1억5176만 원을 받는다. 이는 지난해 국민 1인당 실질소득 3493만 원의 4.34배, 올해 1분기 전국 평균 가구소득(가구원 3.05명, 월 482만 원)의 2.62배에 해당한다. 국회의원들의 월 보수는 일반수당 675만1300원, 관리업무수당 60만7610원, 정액급식비 13만 원, 정근수당 56만2608원(월평균), 명절휴가비 67만5130원(월평균) 등 총 872만6648만 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입법활동 지원 명목으로 월 313만 6000원, 회기 중 본회의나 상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면 받는 특별활동비 월 78만4000원이 지급된다. 뿐만 아니라 가족수당과 자녀학비보조수당도 신청할 수 있다. 고액연봉자인 국회의원들이지만, 본연의 업무인 입법활동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사실상 무노동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이런 국회의원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며, 위기감을 느낀 일부 국회의원들은 의원들이 일하게 종용하는 법안들을 내놓기도 했다. 출석하지 않는 의원들의 급여를 깎고, 임시회를 의무화하는 한편, 일하지 않는 의원을 퇴출하는 국민소환제 도입안 등이 발의된 것이다.

최근 일하는 국회법을 발의한 (왼쪽부터) 최재성·정성호·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남윤호·배정한·문병희 기자
최근 일하는 국회법을 발의한 (왼쪽부터) 최재성·정성호·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남윤호·배정한·문병희 기자

◆위기감 느낀 의원들, 부랴부랴 '일하는 국회법' 발의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국회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의원이 국회의장의 허가나 승인 없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은 경우 기존에 규정된 특별활동비뿐 아니라 수당, 일법활동비, 월정액 지원경비 등도 감액하고, 상임위원회의 경우 폐회 여부와 관계없이 2월부터 6월까지 매월 한 주간 개회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다.

같은 당 정성호 의원은 지난달 19일 정치자금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국회법에 따른 임시회 및 정기회 집회일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 교섭단체 정당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경상보조금 일부를 감액(10~25%)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국회 파행을 방지하고,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취지다.

이처럼 의원들의 무노동무임금제 적용을 강화하는 법안 외에도 교섭단체 대표 간 협의를 통해 국회 개회와 의사일정을 조율하는 것을 개선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7일 대표발의한 국회법 일부개정안에는 매년 2월 1일, 4월 1일, 6월 1일, 8월 16일 임시회를 정기회와 마찬가지로 개회를 의무화 하는 내용이 담겼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4일 대표발의한 국회법 일부개정안에는 위에서 언급한 두 요소가 모두 담겨있다. 이 법안에는 짝수 달 임시국회 집회일을 규정해 상시국회 운영체제를 마련하고 회기 중 불출석한 의원에게 수당,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 입법 및 정책개발비, 여비를 지급하지 않게 하고, 상임위, 청문회 등 국회법상 규정된 위원회 회기 중 의사일정도 간사 간 협의로 작성해 공표하도록 해 예측 가능한 국회운영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이 들어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국회 파행으로 고통 받는 것은 결국 국민이며, 입법과 예산의 공백이 장기화될수록 국가 전체의 이익과 민생경제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정치의 의무를 다하고 일하는 국회를 실현할 제도적 장치를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자 부랴부랴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민들의 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여론은 더 위중하다. 지난 6월 10일 리얼미터는 '일을 하지 않는 국회의원에게 월급을 주지 말자'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론조사 결과 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80.8%에 달했다(조사기간 6월 7일, 조사대상 전국 성인남녀 501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

일하지 않는 국회, 놀먹국회(놀고 먹는 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의사당 전경. /더팩트DB
일하지 않는 국회, 놀먹국회(놀고 먹는 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의사당 전경. /더팩트DB

◆발의는 됐는데…논의는 안 되는 법안들

일하지 않는 의원을 퇴출하기 위한 국민소환제도 이미 발의된 상태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2016년 12월 12일),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2017년 2월 3일), 박주민 민주당 의원(2017년 2월 13일)이 각각 발의한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에는 국민이 투표로 의원을 소환하는 법률을 제정해 위법·부당한 행위 등을 한 의원을 임기 중 해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의원들의 성실한 의정활동을 유도하고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민주적 통제권을 확보해 정치에 대한 국민 불만과 불신을 해소시키기 위한 취지다. 다만 헌법 제42조에 '국회의원 임기는 4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국민소환제 도입을 위해선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17일 제71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국민소환제 도입은 개헌 사안"이라며 "정치권이 국민소환제 도입 주장에 진정성을 담으려면 개헌 논의가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개헌을 논의하지 않고 국민소환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공허한 주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 수장인 문희상 국회의장과 주요 구성원인 여야 5당 대표들(왼쪽부터). /남윤호 기자
국회의 수장인 문희상 국회의장과 주요 구성원인 여야 5당 대표들(왼쪽부터). /남윤호 기자

선진국 중에서 국가단위에서 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도입한 나라는 영국이 유일하다. 영국에선 2009년 하원의원들의 지출 스캔들을 계기로 오랜 논의 끝에 2015년 국민소환법을 제정해 심각한 비리나 범죄혐의가 입증된 하원의원을 해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실 국민소환제의 개헌, 의원 입법 사안 논란은 큰 문제가 아니다.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진짜 문제다. 이 외 다른 일하는 국회법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도 국회 파행 때마다 비슷한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정상화 이후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폐기되는 수순을 밟았다. 비판 여론을 의식해 법안만 내놓고, 시간을 끌다 슬그머니 없던 일로 만들어 왔다.

가까운 사례만 봐도 20대 국회 초인 2016년 6월 14일 원혜영 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원 급여를 본인들이 아닌 외부 전문가들이 객관적으로 산정하게 하고, 전체 회기의 4분의1 이상 무단결석 시 해당 회기의 특별활동비 전액을 삭감하도록 한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아직 상임위 소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본인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법안은 의도적으로 논의 자체를 회피하고 있는 셈이다.

일하는 국회를 위한 법안들이 모두 통과되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국회가 만들어지겠지만 지금처럼 국회에만 모든 것을 맡겨 놓은 채 중이 제 머리 깎기를 기대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더 논의의 시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고조되고 있다. '무노동 국회'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지금이 딱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 마련의 최적기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지금 국회 모습을 보면 내년 총선 전까지 특별한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심지어 싸우는 국회를 막자고 국회선진화법을 했는데, 어긴 사람들이 조사도 안 받고있다. (의원들과 관련한) 무슨 법을 발의하든, 통과시키든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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