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목장갑 인생⑥] 사고 나야 움직이는 정부…사망도 벌금형인 법원
입력: 2023.04.04 00:00 / 수정: 2023.04.04 00:00

감독 기업수 제자리 그나마 사후조치
사망 사건도 피해자 과실 이유로 감형
402건 중 실형 12건 대부분 벌금·집유


정부의 해명은 군색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회적 이슈가 불거져 조사할 필요가 있으면 철저히 감독하지만, 감독 횟수는 해마다 많든 적든 편차가 발생한다고 했다./더팩트 DB
정부의 해명은 군색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회적 이슈가 불거져 조사할 필요가 있으면 철저히 감독하지만, 감독 횟수는 해마다 많든 적든 편차가 발생한다"고 했다./더팩트 DB

대한민국 일터가 위험하다. 한국의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고 사망자 수)은 8년째 0.4~0.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다. 평균치(0.29)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산업재해율 역시 2018년 0.54%, 2019년 0.58%, 2020년 0.57%, 2021년 0.63%로 감소하기는커녕 상승 추세다.

정부는 현행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사후 규제·처벌 중심에서 자율 예방체계로 전환한다. 변화가 없는 산업재해 실태를 두고 자율성을 강조한 ‘노동개혁’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뀌지 않는다는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노동자들은 왜 다치고, 기업은 어떻게 대처하며, 정부는 무슨 노력을 해왔을까. <더팩트>는 근본적인 이유를 현장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산업재해가 빈발한다는 현장으로 직접 갔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관련 400여건의 판결문도 분석했다. 왜 ‘목장갑 인생’들은 오늘도 다치고 죽을 수밖에 없는지 7회에 걸쳐 그 잠정적인 결론을 공개한다. 6회는 '재해공화국'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부와 사법부를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주현웅·김이현 기자] <더팩트>가 직접 취재한 3개 산업 현장에서 안전교육은 전무했다. 건설 현장엔 '무늬만 교육'이 있을 뿐이었다. 첫 시작인 교육부터 부실하니 안전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더팩트>가 확보한 '2018~2022년 고용노동부 산업안전 감독관 인원 및 점검·감독 사업장 수' 자료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감독관 및 점검·감독 사업장 수는 대체로 비슷했다. 수치로 따지면 감독관 수는 2018년 438명, 2019년 539명, 2020년 569명, 2021년 741명, 2022년 794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중대재해법이 제정된 2021년을 기점으로 급증한 듯 보이지만, 2020~2021년 증원된 인원 172명 중 약 120명은 현장 감독을 하지 않는 지방노동청 광역근로감독과 직원들이다. 사건이 발생해야 수사에 들어가는 부서다.

결국 점검·감독한 기업의 수는 제자리였다. 2018년 2만3879곳, 2019년 2만1779곳, 2020년 2만478곳, 2021년 2만7648곳, 2022년 2만3544곳이다. 2021년 한해 소폭 증가한 뒤 지난해 다시 2018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이마저도 예방이 아닌 '사후감독'이 대부분이다.

지난 5년 동안 감독관 및 점검·감독 사업장 수는 대체로 비슷했다. 수치로 따지면 감독관 수는 2018년 438명, 2019년 539명, 2020년 569명, 2021년 741명, 2022년 794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정용무 그래픽 기자
지난 5년 동안 감독관 및 점검·감독 사업장 수는 대체로 비슷했다. 수치로 따지면 감독관 수는 2018년 438명, 2019년 539명, 2020년 569명, 2021년 741명, 2022년 794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정용무 그래픽 기자

정부의 해명은 군색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회적 이슈가 불거져 조사할 필요가 있으면 철저히 감독하지만, 감독 횟수는 해마다 많든 적든 편차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독의 기본 원칙은 작년 SPC 사태 때처럼 '예방 목적'으로 진행한다"고 강조했다.

'SPC 끼임 사망 후 진행한 근로감독이 예방 목적인지' 묻자 "추가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그 외 감독 기업을 정할 때도 '위험 사업장' 위주로 정한다"고 답했다. '위험 사업장의 기준' 물음에는 "정확한 기준은 없으나 위험 설비 여부 등으로 추정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법부의 대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판결문에 적시된 형량은 산재를 바라보는 법원의 인식을 보여준다.

대부분 재판부는 안전조치 등 의무 위반으로 피해자가 사망하는 중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사후 현장감식 결과보고서와 재해조사 의견서 등을 통해 당시 사고 현장의 또 다른 안전조치 위반 사항도 나열한다. 총체적 관리부실에 따른 재해 책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더팩트>가 노동자 사고‧사망 관련 산안법 및 업무상과실치사상 위반 혐의 사건 1심 판결문(2021년 1월~2023년 1월) 402건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의 과실'을 언급하며 양형을 깎아준 판결만 48건이었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피해 발생 및 확대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는 점', '피해자 본인의 과실도 사고의 한 원인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지적했다. 주로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았다거나, 위험 장소에 스스로 들어갔다는 이유였다.

현장 안전책임자는 추락‧전도‧협착 등 위험 예방 대책을 포함해 사전 작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위험물 안전교육은 의무다. 작업 시에도 현장 전반을 관리감독해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

산재 사망사고 현장 대부분은 이런 조치가 없었다. 담당 안전관리자의 과실은 뚜렷했다. 그런데도 사망한 피해자 역시 잘못이 있다는 취지의 '양비론적' 판결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상규 법률사무소 시대 변호사는 "산안법의 취지는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형벌로서 제재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법원은 산재사고 자체가 '노동자의 과실'에 따른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초 산안법을 준수해 안전한 작업환경이 만들어졌더라면, 산재도 발생하지 않았을 상황이 상당수"라며 "민사 판결도 아니고 피해자의 과실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기능과 부합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사망자의 과실'이 없더라도, 형량은 매우 경미한 수준이다. 앞서 살펴본 판결문 402건 중 실형 선고 사건은 12건에 불과했다. 대부분 500만원 이하 벌금형이거나 징역형의 집행유예였다.

그나마 사법부의 양형기준이 강화된 결과다. 대법원은 2021년 1월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숨졌을 때 권고 형량 범위를 기존 징역 10월~3년 6개월에서 2~5년으로 상향했다. 안전 의무 방기에 따른 노동자의 사망에는 '엄벌'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나마 사법부의 양형기준이 상향된 결과다. 대법원은 2021년 1월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숨진 경우 권고 형량 범위를 기존 징역 10월~3년 6개월에서 2~5년으로 상향했다./정용무 그래픽 기자
그나마 사법부의 양형기준이 상향된 결과다. 대법원은 2021년 1월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숨진 경우 권고 형량 범위를 기존 징역 10월~3년 6개월에서 2~5년으로 상향했다./정용무 그래픽 기자

이보다 앞선 판결도 마찬가지다. 2020년 1월~2021년 8월 '산안법 위반 범죄에 대한 판례 분석'(이진국, 양승국)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산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723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전체 2.1%인 15명에 불과했다. 평균 벌금액은 2021년 기준 488만원에 그쳤다.

권오산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산안법상 처벌이 너무 경미해 사업주들 사이에서는 사고 예방 비용보다 벌금이 적게 나온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노동자를 비용으로만 보는 기업의 인식에 법원도 동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 1월~2021년 8월 산안법 위반 범죄에 대한 판례 분석(이진국, 양승국)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산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723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전체 2.1%인 15명에 불과했다./정용무 그래픽 기자
2020년 1월~2021년 8월 '산안법 위반 범죄에 대한 판례 분석'(이진국, 양승국)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산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723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전체 2.1%인 15명에 불과했다./정용무 그래픽 기자

판결문에 나타난 사건을 봐도 법원의 판단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A씨는 2019년 12월 서울 한 공사현장에서 접합 유리를 부착하다 추락해 사망했다. A씨가 떨어진 높이는 23m, 유리 무게는 105kg에 달했다. 2m 이상의 장소에서는 안전대를 걸어 사용할 수 있는 설비도 설치해야 한다. 사전 작업계획서는 물론 이뤄진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사현장 29층에는 설치된 환기 배관의 관통 개구부, 낙하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방호망, 이동식비계에 안전난간 모두 설치되지 않았다. 화재예방 조치, 누전에 따른 감전의 위험 방지조치도 없었다. 이같은 적발 사항은 판결문에 명시됐다.

그 결과 재판부가 내린 판결은 각 500만원의 벌금형. 대상은 당시 현장소장이자 안전보건총괄책임자, 재하도급을 받은 A씨 회사의 대표였다. '사고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없었다'는 회사측 변호인의 주장이 탄핵됐고, 사업주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벌금형에 그쳤다.

2020년 11월 울산 한 레미콘 생산공장에선 30대 노동자가 사망했다. 피해자가 컨베이어벨트 롤러 교체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비 업무를 담당하는 B과장이 컨베이어 가동 버튼을 눌렀다. 이에 피해자는 컨베이어 하부 철제 구조물과 컨베이어벨트 부분 사이에 협착돼 숨졌다.

당시 현장에는 컨베이어 기계 운전 정지 이후 다른 사람의 작동을 방지하기 위한 잠금장치나 표지판이 없었다. 비상 시 컨베이어 운전 정지 장치도 설치되지 않았다. 공장 내 다른 컨베이어에도 덮개·울·슬리브 및 건널다리 등 근로자의 위험을 막는 안전조치는 전무했다.

재판부는 사업주이자 업무총괄관리자에게 벌금 1000만원, B과장에게 벌금 700만원, 회사에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피고인 B의 과실과, 불완전하게 설치된 비상정지 장치를 방치하고 안전교육과 관리감독을 충분히 실시하지 않은 피고인 A의 과실이 더해져 노동자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판시했다.

동종 범죄 전력이 있어도 '집행유예'면 무거운 편이다. 2021년 2월 강원도 원주에서 60대 노동자가 4.8m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다. 지붕 선라이트 교체 작업을 하던 피해자는 안전모와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았다. 현장에는 작업 발판이나 추락방호망도 없었다.

시공사 대표이자 현장소장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피고인은 2020년에도 노동자에게 약 12주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혀 형사처벌을 받은 바 있다. 재판부는 "엄중한 처벌을 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면서도 피고인이 향후 관계 법령과 절차를 모두 준수하겠다고 다짐한 점 등을 참작했다.

법원은 아파트 외부 유리청소 중 사망한 29세 노동자 사건에서 안전관리자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많은 사례에서 이 사건과 같은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해 아주 가벼운 집행유예형이나 벌금형이 선고되고 있다.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산업현장에서 많은 근로자들이 죽어 나가는 사고를 방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판시했다./더팩트 DB
법원은 아파트 외부 유리청소 중 사망한 29세 노동자 사건에서 안전관리자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많은 사례에서 이 사건과 같은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해 아주 가벼운 집행유예형이나 벌금형이 선고되고 있다.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산업현장에서 많은 근로자들이 죽어 나가는 사고를 방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판시했다./더팩트 DB

정상규 변호사는 "산재사고에 형량을 가볍게 하는 사법부의 판단이 되레 '외주화의 위험'을 정당화시키고 조장하는 역할을 한다"며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율은 가장 높은데, 형량은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진국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연인이든 회사(법인)든 전체적으로 형량이 낮다는 건 이미 여러번 지적됐다"며 "특히 사망사건에 벌금형 선고는 너무 심했다. 최소한 집행유예는 나와야한다"고 주장했다.

소수지만, 안전관리자의 역할을 강조하며 실형을 선고한 판례도 있다. 2021년 5월 경북 경산 한 자동화창고에서 외벽 도색공사를 하던 50대 일용직 노동자가 20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재판부는 양형 사유에 '피해자의 과실이 중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다만 피해자가 바람이 불 때 로프가 꼬일 수 있다는 이유로 안전장치를 사용하지 않았고, 사고 원인 중 하나였던 흡연에 대한 사전 관리감독이 없었던 점 등을 종합해 안전관리 부재의 책임이 무겁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공장 대표이자 안전관리자에게 징역 1년, 회사에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또 2021년 9월 인천 한 아파트 외부 유리청소를 하다 45m 높이에서 추락해 29세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재판부는 안전관리자에게 징역 1년, 회사에 벌금 8500만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생명줄, 절단방지를 위한 받침대를 설치하지 않은데다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판결문의 한 대목은 산업재해의 본질과 법원의 역할을 말해준다.

"많은 사례에서 이 사건과 같은 산업안전보건범죄에 아주 가벼운 집행유예형이나 벌금형이 선고되고 있다.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업현장에서 많은 근로자들이 죽어 나가는 사고를 방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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