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상고제도 개혁①] 대법관 1명당 3900건 심리...대수술 불가피
입력: 2019.08.07 05:00 / 수정: 2019.08.10 00:45
대법관 1인당 심리건수가 연 4000건에 육박하는 등 상고제도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서초동 대법원 전경/ 사진=대법원 제공
대법관 1인당 심리건수가 연 4000건에 육박하는 등 상고제도 개혁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서초동 대법원 전경/ 사진=대법원 제공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심 재판이 지난 5월 29일 첫 공판 이후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는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 도입과 법관 해외파견을 얻어내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입맛에 맞는 재판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급증하는 상고사건 해소와 상고심 기능 정상화를 위해 별도의 '상고법원' 신설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상고법원' 설치 입법을 법원 안팎의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밟지 않은채 불리한 여건 속에서 밀어부쳤고, 결국 71년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판거래' 의혹으로 기소된 전직 대법원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양 전 대법원장 후임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지 2년이 다 됐지만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은 여전히 매년 늘어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26일 취임사를 통해 현행 상고심 문제를 인정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상고제도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으나 취임 2주년을 한달 앞둔 최근에야 '상고심' 제도 해법찾기에 나섰다. 이에 <더팩트>는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2년을 맞아 왜 다시 상고제가 논의되고 있는지, 다른 나라의 사례는 어떠한지, 해결책은 뭐가 있는지 등을 3편의 기획보도로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76%는 '재판없이' 기각...법관 획기적 증원 시급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우리나라 대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총 14명이다.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만 주재하고, 법원행정처장은 사법행정 업무를 위해 제외돼 이중 12명만이 일상 재판 업무를 맡는다. 이들 12명의 대법관이 각 4명씩 3개 소부(小部)로 나뉘어 상고심을 맡아 처리한다.

그런데 연간 접수되는 상고심 건수만 2015년 이후부터 4만 건이 넘어섰다. 그것도 소송 요건을 갖춘 본안 사건만 집계했을 때 이야기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8년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심 본안 사건은 4만 7979건으로 기존 최대치였던 2017년 4만 6412건에 비해 1567건이 더 늘었다. 5년 전인 2014년 3만 7652건과 비교하면 무려 1만 327건이 급증했다.

대법관 1명당 연간 약 3998건을 심리하는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형사사건을 제외한 민사, 가사, 행정 관련 대법원 판결 10건 가운데 8건이 심리 불속행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심리불속행은 대법원이 주요 사건을 충분히 심리하기 위해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쉽게 설명하자면 기각하면서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는다고 이해하면 된다.

법원행정처 등에 따르면 2018년 대법원이 처리한 본안사건 중 76.7%가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마무리 됐다. 5년 전인 2014년과 비교하면 20%p가 증가했다. 심리불속행 기각률은 2017년까지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나타냈다. 2014년 56.5%였던 심리불속행 기각률은 2015년 62.2%, 2016년 71.3%, 2017년 77.4%를 기록했다. 2015년에서 2016년에 9.1%p로 가장 크게 증가했고, 2017년에서 2018년에는 0.7%p 감소했다.

이 통계에서 한 사람이 무차별 소송을 내 소권남용으로 상고장이 각하된 민사 5380건은 제외됐다. 부당 소송으로 인한 통계 왜곡 우려에 따른 조치다.

심리불속행 기각률이 해마다 증가하는 이유로는 '남상소' 등에 따른 상고사건 폭주가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남상소는 상소를 남용한다는 뜻으로, 상소하더라도 패소할 가능성이 높은 사건인데도 상소를 해서 확정판결까지 받아보려는 경우를 의미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미 오랜기간 상고제도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대법관 수를 늘리든, 상고허가제를 도입하든 관련 대책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건데,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신설을 위해 전방위 로비를 펼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면서 다수가 이 사안에 대한 적극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앞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3월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업무보고에서 △대법관 증원 △상고허가제 △고등법원 상고부 △상고법원 등 관련 대안들을 제시하며 '상고제도 개선'에 대한 국회 차원의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후 국회의 관심이 검·경 수사권 조정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등에 쏠리면서 상고심 적체 문제는 다시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7월 26일 대법원을 찾은 윤석열 검찰총장과 환담을 하고 있다./뉴시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7월 26일 대법원을 찾은 윤석열 검찰총장과 환담을 하고 있다./뉴시스

왜 국민들은 하급심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도 결국 3심, 대법원의 판단을 받으려 할까? 스스로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각 사건 당사자들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은 이들에게 일생 일대의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남상소로 간주해 이들의 권리를 제한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인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왜 불복이 많은지에 대한 문제를 원점에서 검토하고, 분석해 각 사건 당사자들이 공평한 재판으로 여길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판사들의 과중한 사건 부담이 대법관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국 지방법원 판사들 모두의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성은 더 크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 판사 1인당 사건 처리 건수는 2008년 1263건에서 2011년 888.2건으로 줄었다가 2012년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10년 전과 같은 수준인 1233.9건으로 증가했다. 2014년 개정된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에 따라 판사 정원이 기존 2844명에서 2015년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각각 50~80명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업무에 대한 부담이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은 실제로 재판을 하는 '가동법관' 수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육아휴직이나 해외연수를 떠나는 판사들이 늘면서 현원이 정원보다 모자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육아휴직 대상자 범위를 축소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획기적인 판사 증원 등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한 당분간 이 문제를 해결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고등법원 이승윤 판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40대였던 이 판사는 과중한 업무량으로 야근과 휴일근무를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생전 동료 판사들과 운영하던 한 인터넷 게시판에 "이러다가 내가 쓰러지면 누가 날 발견할까라는 생각이 든다"라는 글을 남겨 안타까움을 더했다. 더 늦기 전에 상고심제도 개혁방안 논의를 본격화해, 이같은 불상사를 막고 국민에게도 양질의 사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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