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LA=황덕준 재미 언론인] 배우 조진웅이 청소년기 비행 논란이 제기된 직후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선택은 한국 사회가 오래도록 붙들고 있던 질문, '과거는 어디까지 용서될 수 있는가'를 다시 공론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조진웅이 영화에서 맡아온 역할들이 '정의'와 '법'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은 단순한 과거 폭로가 아니라 '이미지 충돌'로 이어졌다. 조진웅이 빠르게 은퇴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지난 6일 소속사를 통해 "모든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고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중단, 배우의 길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며 "앞으로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성찰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고교 시절 범죄를 저질러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온 지 하룻만이었다.
책임을 지는 방식이었을 수 있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이 "너무 성급한 자기 말살"이라고 안타까워 한다. 논란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군가의 과거를 어디까지 끌어올 권리가 있는가?"
이 질문은 세계적으로 수많은 '재활과 재기의 서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 가운데서도 할리우드 스타 마크 월버그의 사례는 조진웅처럼 연기자라는 측면에서 직접 비교해볼 만하다.

월버그는 10대 시절 흑인을 폭행하고 흑인 여학생에게 돌을 던지는 등 인종차별적인 악행을 저질렀다. 13살 때 코카인에 중독됐고 16살 때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베트남계 미국인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돼 3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45일간 복역했다.
월버그는 청소년기의 단순한 '말썽꾸러기'가 아니라 20여 차례가 넘게 경찰에 체포되고 인종차별적인 폭행에 따른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돼 소년원에 수감된 ‘범죄자’였다. 미국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전력이다.
특히 베트남계 폭행 사건은 오랫동안 논란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할리우드에서 손 꼽히는 다작배우겸 최고소득 연예인 톱10에 오를 만큼 자리잡은 그의 성공은 과거의 범죄가 미숙한 성장기에 저지른 것이라서가 아니라, 미국사회가 어떤 조건에서 '재기를 허락하는가'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에서 '두 번째 기회'를 인정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변화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월버그에게도 그같은 변신의 장면들이 있었다. 감옥에서 "이 길로 가면 인생이 끝난다"는 자각으로 가톨릭 신앙에 기반한 참회를 하고 금주·금연·약물극복훈련 등 자기를 관리하는 삶으로 전환했다.
영화를 통해서는 악을 징벌하는 '정의'의 집행관 배역을 주로 맡았고, '패밀리플랜' 등 가족 영화에서 다정한 아빠 노릇도 여러차례 해냈다. 청소년 폭력 예방 기금을 만들고 지역 사회 봉사 활동 참여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단순히 "운 좋게 과거가 잊혀졌다"가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했고 이를 사회가 검증하고 (연예)산업이 기회를 제공하는 흐름을 거쳤다.
미국 문화는 전통적으로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스스로 만든다"는 개인주의적 성공 신화를 중시하는 편이다. 게다가 할리우드는 '재기 이야기(Come-back narrative)'라면 두팔 벌려 환영한다. 글로벌 의류브랜드 캘빈클라인(Calvin Klein)은 월버그를 광고 모델로 기용, 과거의 폭력적 이미지보다 신체적 훈련과 규율 있는 삶을 대중에게 보여주며 그의 변화된 현재를 상품성 있는 이미지로 재가공하기까지 했다.
월버그 스스로 명확한 반성과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 지속적인 사회적 공헌, 재발 위험이 없다는 증거, 현재의 모습이 과거와 극명하게 다르다는 점 등 사회가 인정할 만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미국 사회는 그에게 완전히 관대한 것같지 않다. 종종 과거 폭행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여전히 일부 커뮤니티, 특히 아시안계는 그에 대한 비판을 거두지 않고 있다.
2016년 월버그가 자신의 범죄기록 말소를 신청했을 때는 '진정한 반성인가, 이미지 세탁인가'라는 논란이 일어났다. 2023년 제29회 배우조합상 시상식 당시 아시안 가족을 소재로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 월버그가 시상자로 무대에 섰을 때도 부적절하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월버그가 성공한 배경에는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과거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다" "스스로 바뀌려는 사람에게 기회는 제공해야 한다"라는 미국사회의 도덕률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기회를 줬지만 비판도 계속 병존하는 구조인 셈이다.
"과거의 죄는 지울 수 없지만, 인생의 진로까지 결정해선 안 된다"는 미국식 사회 원리가 작동한 대표적인 장면이 월버그로부터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 월버그는 이미지 충돌을 서사로 바꿔냈지만 한국에서 조진웅은 활동 중단 발표로써 사실상 스스로 '연예계 사망선고'를 내려버렸다.
이미지가 무너진 이상 돌아오기 어렵다는 한국 사회와 연예산업계의 구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과거가 서사의 출발이 됐지만 한국에서는 과거가 사라져야할 흠집이다. 그 차이가 두 사람의 운명을 갈랐다.
확실한 건, 조진웅이 오늘날까지 이뤄온 성취가 단 하루 만에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사실'과 '감정'을 얼마나 구분했는지, 그리고 그에게 돌아갈 기회는 애초에 존재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청소년 비행을 둘러싼 인식은 여전히 이중적이다. 처벌하자니 가혹해 보이고, 용서하자니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따른다.
이번 논란은 그 모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조진웅의 은퇴는 그의 몫이지만, 그가 남기고 간 질문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과거의 잘못이 현재의 삶을 무한대로 규정해야 하는가.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가. 유명인이기 때문에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가. 우리는 흠결 있는 과거를 지닌 사람이 '이미 달라진 현재'를 살아갈 권리를 인정할 수는 없는가.
조진웅이 무대를 떠난 순간, 대중은 한 사람의 과거를 심판했는지, 혹은 변화의 가능성을 걷어찼는지 판단해봐야 한다. 공은 이제 우리에게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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