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그간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처하며 자유무역주의를 퍼뜨리던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후 자국중심주의를 외치며 '관세 전쟁'을 선언했다. 북한은 러시아, 중국 손을 잡고 외교력을 확장하고 있다. 중동에선 여전히 전쟁의 불꽃이 타오른다. <더팩트>는 세 편에 걸쳐 역사 속 오늘 벌어졌던 사건을 통해 국제 정세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송호영 기자] 2006년 10월 9일 오전 10시 35분,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실시됐다. 이후로 북한 핵 문제는 동북아 정세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북한의 핵 연구는 1962년 11월 2일 평안북도 영변군에 핵 시설을 조성한 것을 바탕으로 본격화한다. 이후 북한은 197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1985년에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차례로 가입했다. 그러나 IAEA가 1992년 영변 핵시설을 사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북한의 보고서와 IAEA의 사찰 결과가 달랐던 것이다. IAEA가 미신고 시설에 대한 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은 '주권 침해'라고 반발하며 1993년 NPT 탈퇴를 선언해 '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1994년에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동결을 대가로 혜택을 부여하는 북미 제네바 합의가 체결됐다. 이 합의는 △종전 및 평화협정 체결 후 북미 간 통상 수교 △통상 거래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 금지 △경수로 설치 등이 골자였지만 2002년 파기됐다. 합의가 파기된 이듬해 1월 북한은 NPT를 공식 탈퇴를 선언한다.
같은 해 8월 27일 북한, 대한민국,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개국은 이른바 '6자 회담'을 통해 북한 핵 개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당시 회담은 결렬됐고, 2005년 9월 19일 4차 회담이 돼서야 진전을 보인다. 당시 채택된 9.19 공동성명은 △검증할 수 있는 북의 비핵화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 △비핵화 공동선언 준수 △경수로 제공 △북미·북일관계 정상화 △상호 주권 존중 △경제 지원 등 북미 제네바 합의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재무부가 방코델타아시아은행에 대한 금융 제재의 일환으로 2500만달러의 북한 계좌를 동결한 것이 새로운 문제가 됐다. 미국의 조치를 우려한 다른 지역의 은행들도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중단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동결 해제를, 미국은 그 대가로 핵무기 포기를 요구했으나 협상은 결렬됐다.

이후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실시한다. 당시 북한 대외매체 조선중앙통신은 "핵시험(핵실험)은 100% 우리 지혜와 기술에 의거하여 진행된 것으로서 강력한 사회적 국방력을 갈망해 온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준 역사적 사변"이라며 핵시험은 조선반도(한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핵폭발의 출력은 대략 1~2㏏(킬로톤·1kt은 TNT 1000t)으로, 중국에 사전 통보한 예상 규모인 4㏏에 모자라는 수치였다. 다만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에선 출력이 3~5㏏으로 증가했다.
북한의 핵실험은 2011년 12월 1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속도를 내게 된다. 2013년 2월 12일 실시한 3차 핵실험에서는 출력이 6~7㏏까지 증가했다. 이후 북한은 2016년에만 1월과 9월 두 차례 핵실험을 진행했다.
북한은 이듬해인 2017년 9월 3일 오후 12시 29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다. 당시 출력은 약 100~300kt 규모였다. 수소폭탄 개발은 1951년 미국을 시작으로 소련(현 러시아), 영국, 중국, 프랑스 등 국제연합(UN·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만이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와 이스라엘은 개발에 성공했는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첫 핵실험을 한지 약 10년 만에 수소폭탄 실험까지 성공한 북한은 이후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걷게 된다. 김 위원장은 2018년 6월과 2019년 2월 첫 번째 재임 시기를 보내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미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같은 해 6월 30일에는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3자 정상 회동까지 했지만 끝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북한은 최근에도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은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일반 토의 연설에서 "우리는 핵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비핵화 불가 입장을 다시금 밝혔다. "우리에게 비핵화하라는 것은 곧 주권을 포기하고 생존권을 포기하며 헌법을 어기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더팩트>에 "김정은의 최대 업적이 핵과 미사일 개발인데, 포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정 부소장은 그러면서 "보다 현실적인 목표로는 북한 핵에 대한 억제를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 부소장은 아울러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고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생각"이라며 "김정은은 기본적으로 군사 강국, 핵 강국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